곽배희

한국가정법률상담소 소장

얼마 전 이혼율 통계를 둘러싼 논란이 잠시 있었지만 이혼이 급증하는 것만은 상담 현장에서 매일 피부로 느끼는 것이 사실이고 가족해체 등 이혼으로 야기되는 사회문제들에 대해 국가적 차원의 대응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점은 부언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세계에 유래가 없는 협의이혼 제도의 간이성과 신속성으로 말미암아 이혼에 대해 숙고하지 못한 채 혹은 이혼에 따른 법적 관계에 대한 상세한 지식 없이 이혼을 한 후 후회하거나 권리침해가 발생하는 경우가 많이 발생하고, 재판상 이혼시 역시 당사자가 청구하지 않은 내용은 다루게 되지 않게 됨으로써 같은 피해가 발생하는 실정이다. 지난 수 십 년간 본 상담소의 상담창구에는 급한 마음에 이혼한 후 후회하거나 권리를 확보하지 못했다는 호소가 끊이지 않았으며, 특히 이혼과정에서 자녀양육비 문제가 충분히 논의되지 못함으로써 미성년자녀의 복리가 위태롭게 되는 사례가 집적되어 왔다. 또한 이혼이라는 현실을 앞두고 절망 가운데 어떤 결정을 내려야 현명한 선택이 되는가에 대한 적절한 조언과 상담을 원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이혼으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현행 이혼제도를 보완할 수 있는 이혼숙려기간과 이혼 전 상담제도 도입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혼숙려기간은 이혼에 앞서 당사자가 자녀의 양육문제 등을 비롯한, 이혼 후에 다가올 문제들에 대해서 진지하게 숙고하고 협의할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일정한 기간을 두는 것이다. 다만 가정폭력처럼 이혼의 원인이 급박한 경우에는 법원의 허가를 얻어 숙려기간 의무에서 제외시키는 예외를 둘 수 있을 것이다.

본 상담소의 이혼숙려기간의 제도화에 관한 의식조사에 따르면 조사대상자(1210명)의 74.1%가 찬성해 이혼숙려기간 제도화의 필요성에 관한 공감대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미 영국, 독일, 스웨덴, 프랑스, 미국의 대부분의 주 등에서는 당사자간의 협의에 의한 이혼신청의 경우에도 3개월에서 18개월 사이의 이혼숙려기간을 법제화하고, 숙려기간 경과 후 친권, 자녀의 부양 등 자녀에 관련된 문제와 재산분할, 배우자 부양과 같은 배우자 사이의 문제에 관한 합의서 제출을 의무화하고 있다. 한편 숙려기간 동안 당사자가 이혼 후 생길 문제들에 대해 숙고하고 이혼 관련법을 숙지하며 자녀양육문제에 대해서 협의하도록 하기 위해 법원의 명령에 따라 전문상담기관에서 상담을 받도록 할 필요가 있다. 전문상담기관의 상담과 화해조정을 통해 이혼에 관련된 법적 문제들에 대한 정확한 지식 습득과 함께 갈등을 최소화시키고 합리적인 협의과정을 통해 권리 침해의 소지를 줄이고 자녀보호가 최우선이 되는 방향으로 화해조정을 유도할 수 있다.

이혼숙려기간과 이혼 전 상담은 일부에서 오해하고 있는 것처럼 이혼할 자유를 박탈하거나 국민의 행복추구권에 반하는 것이 아니라 가정이 해체되기 전에 막을 수 있는 이혼은 예방하는 한편, 이혼을 하더라도 준비된 이혼, 그리고 후회 없는 이혼을 하도록 현명한 결정을 유도함과 아울러 결과에 대한 원만한 조정과 합의가 가능하도록 함으로써 가족의 복리를 기하고 국민 개개인의 행복추구권이 제대로 행사되도록 하기 위한 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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