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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숙

공주대 교수

탄핵정국을 자초한 노대통령이 집권 2기를 시작한다. “정치는 당에, 내치는 '4인 시스템'의 '네트워크형 협치(協治)'내각에 상당부분 위임하고 대통령은 노사 대타협, 일자리 창출, 공직부패 청산 등 국가적 관리에 집중”할 것이라는 정국 구상도 발표되었다.

그러나 한편 국민들은 “뒷문으로 조용히 들어가고 싶다”는 대통령의 심경 토로에 마음 한 구석이 짜안 하면서도 첫걸음부터 여의치 않을 것으로 보여 걱정이 앞선다. 17대 국회가 개원되는 대로 임명하겠다는 총리 내정자에 대한 야당의 반발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사문화되다시피 한 탄핵규정을 끄집어낸 의회와 지지세력의 촛불집회로 맞대결한 대통령과의 관계는 대통령제의 구조적 특징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대통령제는 국민에 의해 선출된 대통령과 역시 국민에 의해 선출된 의회가 각각 정통성을 갖는 이원적 구조다. 따라서 서로 국민적 정통성을 주장할 수 있는 이들 두 기구의 갈등을 어떻게 최소화해 협력을 이루어내느냐가 성패의 관건이 된다.

대통령제의 이러한 문제점을 해소하는 방안으로 이원정부제가 논의되기도 한다. 이원정부제는 대통령제와 마찬가지로 국민대표의 기능은 이원화되어 있으나 대통령제와 같이 행정부가 대통령에 의해 단독으로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과 의회의 신임을 동시에 받아야 한다. 대신 대통령에게는 의회해산권을 부여한다. 그러나 이원정부제 역시 대통령제의 이원적 정통성 문제는 해결할 수 있으나 의회해산권을 통한 대통령의 독재 가능성과 의회의 행정부 불신임권을 통한 정국 불안정 문제가 제기된다.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책임총리제의 필요성이 강조돼온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다. 책임총리제는 대통령제에서 권력구조의 근간을 바꾸지 않으면서도 이원정부제의 이점을 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17대 총선에서 국민들은 탄핵을 심판하면서도 야당에게 개헌 저지가 가능한 힘을 주었다. 대통령과 대등한 정통성을 지닌 의회에서 양당제에 가까운 정립형(鼎立型) 정당구조의 한 축을 이룬 야당이 총리 내정자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때 대통령은 그 사유를 냉철하게 되짚어볼 의무가 있다. 그것도 당적 변경이 이유라면 더욱 그렇다. 국민들은 열린우리당이 개혁공천 과정에 잦은 당적 변경자라는 이유로 적지 않은 수의 후보를 탈락시켰음을 기억한다. 그리고 노대통령이 집권 1기에 비해 강한 대통령이 될 수 있게 되었다고는 하지만, 열린우리당이 과반수 의석을 겨우 2석 더 넘겼을 뿐이라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헌정사상 최초의 여성총리 탄생의 꿈이 무산된 후 대통령도 바뀌고 의원들도 교체되었다. 그 과정에 우리나라의 정치지형도 크게 바뀌었다. 이제 우리나라의 여성정치도 바뀐 정치지형에 걸맞게 여성정치인의 수적 증대라는 하드웨어뿐 아니라 질적 제고라는 소프트웨어도 본격적으로 심화할 때다. 탄핵대통령 꼬리표를 단 노대통령이 정당성과 도덕성 문제가 제기된 인사를 총리로 임명하고 재·보선에 올인한다면 이는 또다시 물의 흐름을 거꾸로 돌리려는 일이다. 새롭게 시작하는 집권 2기에 이원정부제에서와 같이 대통령과 의회의 신임을 동시에 받은 수 있는 새로운 이미지의 여성을 책임총리로 임명함으로써 시대와 세계의 물 흐름을 따라가는 것이 순리다. 그리고 당적 변경으로 물의를 빚은 인사로는 책임총리제를 구현할 수 없다. 구태정치에 발을 담그지 않았던, 그러면서 정당과 내각 및 의회의 경력을 모두 갖춘 여성이야말로 대통령과 의회간의 갈등을 조정하면서 '네트워크형 협치' 내각의 책임총리제를 이끌 수 있는 적임자다. 율사 출신 노대통령의 집권 2기에는 법이라는 글자의 의미처럼 물 흐르듯 순리의 정치가 펼쳐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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