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아동·청소년 ‘잊힐 권리’ 시범사업
부모 대상 교육으로 인식전환 중요

셰어런팅 사례(예시) 사진=세이브더칠드런(2021년)
셰어런팅 사례(예시) 사진=세이브더칠드런 

정부가 오는 2024년까지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본인 혹은 제3자가 온라인에 올린 자신의 글과 사진, 영상 등을 삭제할 수 있는 ‘디지털 잊힐 권리’를 법제화한다. 국내도 해외처럼 SNS에 자녀 사진을 공개하는 행동인 이른바 ‘셰어런팅’(share와 parenting의 합성어)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시작된 것이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교육부·보건복지부·여성가족부 등 관계부처등과 함께 정부서울청사에서 합동 브리핑을 개최하고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하는 ‘아동·청소년 개인정보 보호 기본계획’을 지난 11일 발표했다.

기본계획은 크게 △아동·청소년 중심 개인정보 보호 원칙 및 체계 확립, △아동·청소년 권리 실질화, △역량 강화 지원, △개인정보 보호 환경 조성 등 4개 분야다.

본인·친구·부모가 올린 개인정보 삭제할 수 있도록 법제화

정부는 우선 2024년까지 아동·청소년 시기에 본인뿐 아니라 친구·부모 등 제3자가 올린 개인정보까지 삭제할 수 있도록 개인정보 보호 법제를 마련할 계획이다. 내년부턴 아동·청소년 당사자가 올린 온라인 게시물을 삭제 혹은 블라인드(숨김처리) 해주는 시범 사업을 시행한다.

잊힐 권리는 현재 개별 법률을 근거로 성인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에게 제한적으로 인정되고 있다. 다만 판단능력이 미숙한 아동·청소년에 대해선 특별법으로 이 권리를 포괄적으로 규정하겠다는 방침이다.

세이브더칠드런의 지난해 조사를 보면 11살 이하의 자녀를 둔 부모 86.1%가 자녀 의사를 묻지 않고 사진·이름 등 개인정보를 SNS에 공유하는 ‘셰어런팅’ 행위를 한 적 있다고 답했다.

일찍이 해외에서는 셰어런팅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진행됐다. 부모가 자녀 사진을 본인 동의 없이 SNS에 게재할 경우 부모에게 법적 제재를 가하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부모가 자녀 사진을 본인 동의 없이 SNS에 게재할 경우 사생활을 침해한 혐의로 3만 5천 파운드의 벌금이나 1년 이하의 징역에 처해질 수 있다는 법리해석이 나왔다. 베트남은 지난 2018년 부모가 자녀의 사진이나 동영상 등을 본인 허락 없이 SNS에 올리면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법 개정을 추진했다.

“아동·청소년의 잊힐 권리 법제화는 셰어런팅 사회적 논의의 시작”

강미정 세이브더칠드런 국제아동권리 NGO 아동권리정책팀 팀장은 이번 정부 발표가 개인정보에 있어 아동청소년을 권리의 주체로 보고 있어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강 팀장은 “아동의 동의 없는 셰어런팅을 보호자에 의한 개인정보 침해로 보았다”면서 “아동·청소년에게 잊힐 권리도 줬다. 개인정보에 대한 통제권을 아동·청소년에게 줬다는 점에서 보호적 관점을 전환했다고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강 팀장은 특히 셰어런팅의 위험성에 주목했다. 그는 “부모는 아이의 정보에 대한 온라인 공유가 실제로 아동의 삶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생각할 필요가 있다”며 “아이는 부모의 소유가 아닌 독립적인 개체로서 아동의 삶은 온전히 그의 것으로 존중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SNS가 일상화된 요즘 양육 보호자가 아니더라도 아동을 접하는 사회 구성원 누구나 아동의 개인정보를 노출할 수 있는 환경이기에 일반시민 대상의 인식제고 활동도 필요함을 생각해야 한다”며 “아동·청소년의 잊힐 권리 법제화는 셰어런팅이 그들의 현재와 미래의 삶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사회적 논의를 시작하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청소년의 동의서 확인 여부 및 미확인 이유. 2021 개인정보 보호 실태조사 발췌
청소년의 동의서 확인 여부 및 미확인 이유. 2021 개인정보 보호 실태조사 발췌

획일적으로 운영하던 법정대리인 동의제도도 개선한다. 현재 만 14세 미만 아동의 개인정보 수집·이용 시 법정대리인 동의를 받도록 되어 있어 법정대리인이 없는 아동의 경우 도서관 도서 대출, 교육방송(EBS) 회원가입 등 일상생활이 제한되는 사례가 있다. 이 경우 학교·지자체·위탁부모·아동복지시설장 등 실질적 보호자가 동의를 대신할 수 있도록 개선한다.

또 아동·청소년이 자신의 개인정보 처리와 관련된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한다. 만 14세 미만 아동의 개인정보 수집 시 아동이 이해하기 쉬운 언어를 사용한 아동용 처리방침 공개를 의무화해 자신의 개인정보가 어떻게 수집·이용·제공되었는지 쉽게 알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아동·청소년 개인정보 보호 대상, 만14세 미만→만 18세 미만 확대

아동·청소년 개인정보 보호 대상은 현행 만 14세 미만에서 만 18세(또는 만 19세) 미만 청소년까지 확대하고 연령대별로 보호 내용을 차등화한다.

셰어런팅 관련 부모 대상 교육 확대

아동·청소년이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을 제대로 행사할 수 있는 역량을 기를 수 있도록 교육을 강화하고 인식을 제고한다. 2022 개정 교육과정과 연계해 ‘개인정보 보호’ 교육내용을 확대하고, 찾아가는 개인정보 이해력(리터러시) 교육을 추진하는 한편, 게임,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등 아동·청소년들의 흥미를 유발할 수 있는 연령대별 교육 자료를 개발할 계획이다.

특히 보호자가 자녀의 의사를 묻지 않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 사진·영상 등을 공유하는 ‘셰어런팅’의 위험성, 자녀 연령대별 개인정보 교육 방법 등 보호자 대상 교육도 확대한다.

게임·SNS 등 분야별 보호 조치도 넓혀

아동·청소년이 개인정보를 많이 제공하는 3대 분야(게임·사회관계망서비스(SNS)·교육)를 중심으로 분야별 특성에 맞는 보호 조치도 확대한다. 만 14세 미만 아동임을 알고 있는 경우 상업용 맞춤형 광고를 제공할 목적으로 개인정보를 수집·활용하는 것을 제한하고, 인터넷 상 사회관계망서비스, 게임 등의 계정 판매 등 불법거래 게시물은 신속하게 탐지·삭제해 아동·청소년의 접근을 방지한다. 특히 정부와 민간 기업, 전문가가 함께하는 범국가적 ‘아동·청소년 개인정보 보호 협의회’를 구성하고 협의회를 주기적으로 개최(반기별 1회)해 정책의 일관성과 추진력을 확보할 계획이다.

최영진 개인정보위 부위원장은 “개인정보보호법에 개인정보 삭제권이 명시돼 있지만 시행령이나 고시 등에 구체적으로 나와 있지 않다”며 “표현의 자유나 알 권리 같은 다른 법리와의 충돌을 어떻게 줄이고, 잊힐 권리 행사 요건과 방법을 어떻게 정할지 등을 시범사업을 통해 정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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