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 수출국’이 남긴 분노, 더 나은 미래 위한 힘이 됐다
‘아동 수출국’이 남긴 분노, 더 나은 미래 위한 힘이 됐다
  • 이세아 기자
  • 승인 2022.07.10 22:03
  • 수정 2022-07-11 13: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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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자는 화가 난다』 국내 출간
한국계 덴마크 작가 마야 리 랑그바드
한국계 입양인이 겪은 차별·고통
독창적 글쓰기로 승화해
“해외입양은 페미니스트 이슈”

이 책은 고분고분하지 않다. 까만 바탕에 불꽃처럼 붉은색으로 제목을 강조한 표지부터 그렇다. 첫 문장부터 분노로 이글거린다.

“여자는 자신이 수입품이었기에 화가 난다. 여자는 자신이 수출품이었기에 화가 난다....”

앨리슨, 앤드류, 비외른, 현주.... 화자인 “여자”까지 등장인물 27명은 한국에서 태어나 외국에 입양됐다. 피부색과 이목구비가 다른 가족과 이웃 사이에서 나는 누구인지 묻지 않을 수 없었던 사람들이다. 혼돈과 슬픔, 아주 개인적이고 정치적인 이야기가 모여 독창적인 분노의 시(詩)가 됐다.

가엾은 아이는 구출됐다. 아이를 원하는 부부에겐 가족이 생겼다. 친생모는 ‘미혼모’라는 불명예와 생활고를 피했다. 고로 입양은 모두에게 좋다는 신화는 해외입양 산업 내 폭력과 착취를 말하지 않는다. 제국주의, 군국주의, 인종차별, 가부장제와 얽힌 문제도 외면한다. 이런 일들에 눈을 감고 ‘포용’, ‘사랑’의 이름으로 입양을 옹호하는 게 온당하냐며 ‘돌직구’를 날리는 책이다. 불편하지만 외면할 수 없다.

『그 여자는 화가 난다 : 국가 간 입양에 관한 고백』 (마야 리 랑그바드 지음, 손화수 옮김/난다) ⓒ난다 제공
『그 여자는 화가 난다 : 국가 간 입양에 관한 고백』 (마야 리 랑그바드 지음, 손화수 옮김/난다) ⓒ난다 제공

저자는 덴마크 작가·번역가 마야 리 랑그바드. 한국 이름 이춘복. 1980년 한국에서 태어나 덴마크에 입양됐다. 2007∼2010년 서울에 와 한국계 입양인들을 만났고, ‘한국의 해외입양 산업’ 구조를 취재하며 문제의식을 날카롭게 벼렸다. 이 책은 그 결실이다.

한국 독자들과 만나기까지 8년이 걸렸다. 2014년 덴마크에서 처음 출간됐을 당시 한국어판 출간 제안을 받았지만, 레즈비언인 저자의 삶과 연애, 비혼모 이야기, 한국 사회 비판 등 내용이 “너무 도발적(provocative)”이라는 생각에 출간을 주저했다.

랑그바드는 지난 7일 서울 마포구 한 카페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한국에서 ‘미투’(#MeToo) 운동 같은 거대한 변화의 흐름이 있었기에 이 책이 나올 수 있었다”며 해외입양은 “페미니스트 이슈”라고 했다.

마야 리 랑그바드 작가가 7일 서울 마포구 한 카페에서 열린 『그 여자는 화가 난다』 한국어판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난다 제공
마야 리 랑그바드 작가가 7일 서울 마포구 한 카페에서 열린 『그 여자는 화가 난다』 한국어판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난다 제공

한국 정부는 1950년대부터 조직적·체계적으로 해외입양 사업에 개입했다. 처음엔 미군과 한국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아, 법적·사회적으로 배척당한 사생아들을 한국에서 치울 목적이었다. 1960년대부터 불안한 국내 경제·정치 상황 속 인구 과잉, 빈곤 등 문제를 해소하고자 더 많은 아이를 바다 너머로 보냈다. 전두환 정권 들어서는 서방 국가와의 외교 사절로 입양아동을 활용하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결혼하지 않은 여성이 홀로 아이를 낳아 기른다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엄청난 각오가 필요한 일이다. 사회적·경제적·법적 지원이 지금보다 적었던 시대에 수많은 여성이 친권을 포기했다. 실적을 채우기 위한 입양기관과 고아원의 서류 조작, 회유와 사기도 빈번했다.

입양은 한 사람의 정체성 형성의 근본 조건을 뒤흔드는 일이다. 그러나 아동에겐 선택권이 없다. 외모부터 다른 한국계 입양인들은 제1세계의 다양성·포용성을 입증하는 존재가 됐다. 백인 중심 사회에 ‘위협을 끼치지 않는 모범적 소수자’가 되기를 요구받았다. 랑그바드는 “동양 여자아이가 동양 남자아이보다 귀엽다는 생각 때문에” 입양된 아이들도 많다면서 해외입양은 “젠더화된 실천(gendered practice)”으로도 볼 수 있다고 했다.

마야 리 랑그바드 작가가 7일 서울 마포구 한 카페에서 열린 『그 여자는 화가 난다』 한국어판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난다 제공
마야 리 랑그바드 작가가 7일 서울 마포구 한 카페에서 열린 『그 여자는 화가 난다』 한국어판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난다 제공

랑그바드처럼 목소리를 낸 입양인들 덕에 사회는 변화하는 중이다. 랑그바드의 책이 나온 후 북유럽에선 해외입양 산업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이들이 늘었다. 한국에서도 여러 입양인과 관련 단체의 문제제기 후 여성·아동 권리를 위해 법제도를 개선하고,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인정하려는 노력이 지속되고 있다. 

다만 입양인의 ‘알 권리’는 제대로 보장되지 않고 있다. 한국은 친부모에 대해 알 권리를 명시하는 유엔아동권리협약에 1991년 가입했다. 입양특례법은 입양인이 자신의 입양 관련 정보를 청구할 권리를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친부모가 원치 않으면 정보를 얻기 어렵다. 랑그바드는 이를 방관하는 정부도 문제라고 지적한다.

그는 한국에서 살며 느낀 이질감과 고통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특히 친부모와는 2006년 처음 만났지만 늘 통역이 필요했고 문화나 가치관 차이도 극심했다. 성소수자임을 밝히는 것도 쉽지 않았다.

랑그바드는 “나는 입양인 이전에 쓰는 사람”이라며 “시인, 엄마, 레즈비언 등 다양한 정체성을 포용하는 글쓰기를 하는 게 목표”라고 했다. “한국은 저출생 국가, 부유한 국가인데도 여전히 아이들을 외국으로 입양 보내고 있다. 비혼한부모를 위한 정책적 지원도 부족하다”고도 했다. 뼈아픈 일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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