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운 우리말 쓰기] ⑦ 대통령의 ‘도어스테핑’에 유감
[쉬운 우리말 쓰기] ⑦ 대통령의 ‘도어스테핑’에 유감
  • 곽민정 방송사 보도본부 어문위원
  • 승인 2022.07.08 08:39
  • 수정 2022-07-22 10: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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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6월 2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하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6월 2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하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새 정부가 시작된 지 두 달여가 되어갑니다. 그동안 여러 변화가 있었는데요, 국민이 체감하는 큰 변화 중 하나는 활짝 열린 청와대가 아닐까 싶습니다. 대통령 집무실이 청와대에서 용산으로 옮겨지며 국민에게 개방되었지요. 어려운 민생과 국방, 예산 등을 이유로 반대가 만만찮았지만, 결국엔 실현되었고 벌써 많은 국민이 청와대의 뜰을 밟았습니다. 대통령실이 용산으로 이전되며 국민이 겪는 낯선 풍경이 또 있습니다. 용산 청사로 ‘출근’하는 대통령을 볼 수 있다는 건데요, 매일 아침 기자들이 진을 치고 있다가 대통령이 청사로 걸어 들어오면 질문을 쏟아냅니다. 5분도 채 안 되지만 그때그때 현안을 질문하고 대통령의 답변을 즉석에서 들을 수 있는 시간이지요. 대통령의 새로운 시도에 환영과 우려의 목소리가 교차하는데요, 지난 5월 11일 즉흥적으로 시작된 이러한 대통령의 출근길 모습과 함께 느닷없이 등장한 용어가 있습니다. 바로 ‘도어스테핑(doorstepping)’입니다.

도어스테핑이 뭐지?

도어스테핑이란 낯선 단어를 처음 보았을 때는 방송을 코앞에 둔 시간이었습니다. 깊이 있게 고민하고 찾아볼 겨를이 없어 간단히 검색만 해보았지요. 당연히 우리말 사전엔 없고, 영어사전에 한 단어로 올라 있더군요. ‘호별 방문’ ‘(기자 등의) 남의 집 문 앞에서 대기하기’라고 뜻풀이가 돼 있었습니다. 기대했던 의미와 딱 들어맞지는 않았습니다. 두 달여가 지난 현재는 포털에서 꽤 많은 양의 자료가 검색됩니다. 언론이 너도나도 도어스테핑의 뜻과 역사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주요 인사가 문을 드나들 때 취재진과 문답을 나누는 것’으로 소개하고, 미국의 오랜 역사와 도어스테핑을 즐겼던 트럼프 전 대통령의 일화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일본은 영어를 그대로 가져다 쓰지 않고 ‘부라사가리’(ぶら下がり·매달리기)라는 단어를 사용하더군요. 영국에서는 의미가 조금 다릅니다. ‘기습과 괴롭힘’ 등 부정적 의미가 강해서 BBC에서는 취재원이나 가족 등에게 폭력을 당할 수 있으므로 주의하라는 안전 가이드도 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이번 정부에서 처음 시도했으니 당연히 해당 용어가 없고, 영어를 대체할 만한 용어도 자리잡은 게 없습니다.

도어스테핑 대신 ‘약식 기자회견’

언론들은 앞다퉈 도어스테핑과 관련된 기사를 쏟아내고 있지만 정작 용어 자체에 문제를 제기하거나 대안을 제시하는 경우는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말 표기를 앞세우는 언론조차도 ‘도어스테핑’을 시리즈 기사의 제목으로 달았더군요. 그나마 두어 달이 지나며 영어 단어와 함께 ‘대통령의 출근길 약식 기자회견’ ‘약식회견’ 정도로 괄호 안에 병기하는 언론이 늘기는 했습니다. 순화어 또는 대체어가 제시된 게 있는지 궁금해 국립국어원 순화어 담당자와 직접 통화를 했는데요, 아직은 없고 곧 열리는 순화어 위원회에서 다룰 예정이라고 합니다. 이달 셋째 주 정도에 결과가 나온다고 하는데요, 기대가 되면서도 한편으론 ‘뒷북 심의’에 마음이 편치만은 않습니다. 한번 대중에게 각인된 말과 글은 쉽게 바뀌지 않기 때문이지요. 대체어가 나온들 언론도 쉽게 용어를 바꿀지도 알 수 없고요. 따라서 ‘뒷북 심의’보다는 애초에 최초 사용자가 올바로 쓰는 게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영어 ‘도어스테핑’ 과감히 버려야

대통령의 출근길 모습을 두고 누가 처음 ‘도어스테핑’이란 용어를 썼는지 참 아쉬운 마음이 큽니다. 처음부터 영어가 아닌 우리말의 적절한 표현을 찾아 썼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게다가 특정 직업군(기자)이 특정 환경에서 사용하는 용어를 버젓이 대중에게 반복적으로 노출하는 건 언론의 책무에도 어긋나 보입니다. 뉴스는 모든 이들이 어떠한 ‘문턱’도 없이 이해할 수 있어야 하니까요. 지금이라도 영어 ‘도어스테핑’을 버리고 과감하게 ‘약식 기자회견’으로만 표기하는 건 어떨까요. 미심쩍어 영어에 한글 병기까지 하며 괜한 수고를 하는 대신 말이죠. 아침마다 뉴스가 생산되는 현장인 용산 청사발 기사들에서 먼저 변화가 일어났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곽민정 방송사 보도본부 어문위원<br>
곽민정 방송사 보도본부 어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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