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중에 아홉은 여성이 주인인 동네 가게 전멸

두부, 콩나물 사러 드나들던 생활 냄새 그리워

사진을 맡기러 동네 상가에 들렀다. 우리 집에서 1분도 안 걸리는, 그야말로 코앞에 있는 상가였다. 그런데 왠지 사진 현상소 앞이 훵했다. 둘러보니 앞에 있던 가게들이 두 집이나 사라진 채 잔해만 남아 있었다. 바로 앞은 액세서리 가게였고 그 옆집은 아마 옷가게였던 걸로 기억된다.

상가 전체가 폐허처럼 보여 공연히 마음이 불편해졌다. 평소 같으면 용건 이외엔 대화 한 마디 나누지 않았던 주인에게 말을 걸었다. 아니, 저 집들 언제 나갔어요? 별로 싹싹한 인상이 아닌 주인도 오늘 따라 친근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벌써 한참 되었단다. 뻔한 질문일 터이지만 왜 나갔느냐고 물어 보았다. 장사가 안 돼서라는 말 대신에 주인은 경기가 워낙 안 좋아서라고 돌려 말했다. 그는 경기가 안 좋기 때문에 새로 들어오는 사람도 없다고 덧붙였다.

나는 인사치레로 '아저씨네는 괜찮죠?' 라고 물었다. 그 가게는 아주 오랫동안 그 자리에 변함없이 잘 있었다. 주인은 약간 미안한 듯한 표정으로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우리 가게도 내놨는데 아직 안 나가네요.'

경기가 너무 나쁘다고 했다. 자신의 업종이 가장 타격을 받는다는 것이다. 나처럼 둔한 머리로도 금방 이해가 갔다. 요즘 디카 열풍이 불면서 사진을 종이로 뽑는 일 자체가 사라지고 있지 않은가. 주인은 자신이 할 줄 아는 건 이것밖에 없는데 정말 걱정이라면서 표정이 어두워졌다.

동네 가게가 또 하나 사라지는구나. 이 자리에도 부동산이 들어오려나. 어쩌다 한 번씩 들르긴 했지만 익숙하게 드나들던 가게가 사라진다니 기분이 착잡했다.

이 동네로 이사온 지 꼭 20년이다. 시간과 더불어 내 삶도 변했지만 동네 가게들도 모습이 많이 바뀌었다. 작은 서점이나 음반가게가 사라져 가는 현상처럼 단지 업종의 변화무쌍함을 말하려는 게 아니다. 어떤 업종이든 대부분의 가게가 활기를 잃고 시들시들해져 간다는 뜻이다. 동네에 있는 작은 가게들을 동네 주민들이 외면하기 때문이다.

상가마다 하나씩 들어찬 수퍼마켓들만 해도 그렇다. 저녁 무렵이면 반찬거리를 사러 나온 주부들로 버글거리던 점포들이 요즘은 종업원보다 손님이 적을 정도로 한산하기 짝이 없다. 저마다 차를 몰면서 웬만한 쇼핑은 백화점이나 할인매장에서 한꺼번에 사들이는 탓이다.

수퍼마켓의 손님이 줄어드니 그 앞의 작은 매대에서 떡을 파는 아주머니의 매상도 함께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 아주머니는 내가 이사오던 무렵에는 아파트 출입구 옆에서 아이를 업은 채 큰 양푼에 떡을 이고 와 하루 종일 팔았던 억척어멈이다. 노상에서 떡을 판 돈으로 아이들을 키우면서 드디어 상가에 들어와 방앗간까지 차린 입지전적인 여성인데 얼마 지나지 않으면서부터 매상이 영 시원치 않아 보인다. 같은 층에 들어 있던 수리센터니 분식집이니 그릇가게들도 모조리 철수했다. 동네 가게 전멸시대가 온 것이다. 동네 가게의 주인들은 열 중에 아홉은 여성들이었다.

우리 집 앞의 상가는 가게가 나갔다 하면 부동산이 들어와서 부동산 왕국으로 바뀌었다. 그 덕에 상가의 외모는 깔끔해졌지만 생활의 냄새는 실종되어 버렸다. 두부나 콩나물을 사러 종종거리고 드나드는 발걸음 소리는 아무 데서도 들을 수 없다.

동네 가게들의 쇠락에는 내게도 책임이 있다. 한 푼이라도 싸게 사겠다고 한때는 큰 시장을 휘젓고 다녔으니까. 살림의 의욕도 힘도 없어질 때가 되니 이제야 동네 가게가 눈에 들어오고 힘겹게 가게를 꾸려가는 여성들의 심정이 헤아려지는 거다.

그런데 참, 요즘도 '우리 동네'라는 게 있긴 있는 건가?

박혜란

여성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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