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토론, 상식, 타협 3C가 어울린 협주곡

우리 부부가 평등부부상을 받았다고 하니까 사람들은 모두 남편인 나에게 잘했다고, 축하한다고 인사들을 한다.

평등하게 될 때까지 부부가 같이 노력을 했기 때문일텐데, 으레 부부간의 평등이란 말이 적용될 때는 평등하지 않아도 될 남편이 크게 양보해서 평등하게 된 것처럼 느끼는 것 같다. 우리사회의 지난 세월의 역사요, 관행 때문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정의하는 평등부부는 심사기준과 똑같지는 않다. 우선 평등부부는 민주적인 가족분위기에서 자연발생적으로 태동한다고 생각한다.그리고 민주적 가정은 가족 구성원들이 민주적으로 가정 일에 참여하고 책임을 지는 가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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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성원의 인격이 존중되고 개인의 재주와 취미가 인정되며 가족 공동체 의식을 갖는 가정은 민주가정이라고 말할 수 있으며, 그와 같은 가정의 핵인 부부는 평등부부의 자격을 갖게 된다고 생각한다.

◀여성신문사 제2회 평등부부상 수상자 유재건·김성수 부부.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충분하다고는 할 수 없겠다. 민주적 가정 안에서 평등부부는 몇 가지 충분한 조건을 더 갖춰야 한다. 이웃공동체나 소속된 조직에 한가지 기여도 없이 둘이만 고고한 부부는 비록 평등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우리가 평등부부로 존경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결국 평등부부가 되려면, 그 옛날 미국의 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이 <사랑의 기술>(The Art of loving)에서 갈파했던 '책임감을 갖고 상대방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며 그의 신을 신고 그를 이해 한다'는 기초적인 삶의 윤곽만큼은 잡힌 사랑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섯 여자에 둘러싸인 청일점??? 가정평화유지론으로 첫 단추

어느날 서른을 넘긴 노총각인 나는 결혼을 해 가정을 이루게 되었다. 할머님, 어머님, 열세 살 된 시골의 먼 친척아이등과 생활하다가 새 식구가 들어왔고, 후배가 결혼선물로 가지고 온 치와와 종의 예쁜 개 꽃님이도 암캐였다. 1년 뒤에 첫딸을 합치니 여자 여섯에 남자 하나의 가정이 된 것이다. 여자 여섯이 저녁때만 되면 모두 귀를 쫑긋하고 나 돌아오기만 기다린다. 꽃님이는 집앞 구멍가게를 돌아설 때부터 내 발소리를 알아차린다.

우리는 오랜 세월을 홀어머님을 모시고 한 집에서 셋이 같이 생활했다. 문화적 배경과 성격이 뚜렷하게 다른 세 사람의 개인이 한 지붕 아래서 같이 지냈지만 한 번도 큰소리 내거나 다투어 본 적이 없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나는 자랑스럽다.

우리 가정의 평등부부의 기초는 '가족 평화유지론'에서 시작된다. 우리 가정의 평화 유지 비결은 두 가지가 있는데 그 중 하나는 각자의 역할분담이고, 두 번째는 서로 측은히 여기는 마음가지기이다. 그러면 우리 집에서 역할 분담의 모습은 어떠한가?

우리 어머님은 부엌을 완전 장악하신다. 새벽부터 하루 종일 요리하면서 우리들의 끼니를 챙기시는 것이 최고의 낙이다. 전깃불 고장 난 것 수도꼭지가 고장 난 것 등 뭐 돌아보다가 멈추거나 잘못된 것이 생기면 연장을 들고 나서는 것이 내 아내다. 자동차의 오일 가는 일, 간단한 튠업 이라고 해서 스파크 플러그 나가는 것 등은 자동차 밑에 기어 들어가서 잘 고친다. 나는? 못한다. 나는 그 대신 화초에 물주고, 사진틀 걸고 실내 장식하는 일등을 맡는다. 가족들의 사진첩을 정리하고 신문 스크랩을 하고 아이들 어렸을 때는 방 정리를 같이 도와주는 일을 해왔다. 셋이서 서로 하는 일이 뚜렷하게 분담되어 하루 종일 바쁘게 살다 보면 부딪칠 필요가 없고 부딪칠 시간이 없어 좋다.

측은지심과 평등역할 밖의 일은 아내, 안의 일은 남편

두 번째, 서로 측은히 여기는 마음을 갖는다는 것은 처음부터 계획한 것은 아니었다. 결혼 후 어머님을 모시고 살면서 모두가 공감해 계속 실행하고 있는 우리 삶의 한 단면이다. 우리 부부는 일생을 혼자서 외아들의 성공을 위해 희생해 오신 어머님을 존경한다. 한번도 누구를 원망하지 않고 늘 감사하면서 웃고 사시는 넓은 마음의 소유자인 어머님. 그리고 우리보다 넉넉한 가정에서 귀염 받고 살다가 넉넉지 못한 우리 가정에서 시집와서 고생하는 아내. 이렇듯 나는 늘 어머니와 아내의 희생적인 노력에 감사하면서 측은히 여기는 마음을 갖는다. 반면 어머니와 아내는 나를 불쌍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혼자 고학하며 공부하느라고 나이40이 되어서야 학위를 받게 된 나를 염려하고 격려하는 두 여인의 마음을 나는 늘 느끼며 살아왔다.

나는 아내의 장점을 주로 두둔하고 개발해 칭찬하는 일을 주로 한다. 또한 아내는 나의 단점을 지적해 주고 개선책을 많이 제시해준다. 평등한 부부가 되기 위해선 고정관념적인 생각을 버리고 가정에서나 사회에서 평등하게 역할을 감당해야 할 것이다. 나는 집에서 가끔 다림질을 한다. 아내만이 하는 일이라는 관념을 깨고 싶다. 설거지도 한다. 청소도 가끔한다. 아내 성수는 자동차 오일 가는 일과 화장실 물안 내려가는 것들을 몸소 고친다. 둘이 다 재미있게 일하지, 억지로 하는 일이 아니다.

나는 가정이나 사회나 국가나 민주주의가 자리 잡아 그 토대가 확립되려면 3C가 있어야 된다고 믿는다.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 즉 대화, 토론이다. 그리고 커먼센스(Common Sense),상식을 벗어나지 말아야 한다. 또한 컴프로마이즈(Compromise), 타협이 필요하다. 타협하고 절충하는 노력은 우리 가정과 사회에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오늘도 우리 부부는 상식을 벗어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가족의 계획을 서로 의논한다. 토론도 한다. 그리고 절충한다. 타협을 하기 위해서 자기의 주장을 양보도 한다. 평등한 부부 관계가 유지되도록 노력한다. 바로 이렇게 서로 노력하는 것이 우리 부부가 평등부부상을 받게 한 이유인 것이다.

유재건| 국회의원

여성신문사 주최 제2회 평등부부상 수상자

<양성평등 알고 보면 쉬워요>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중 '우리 부부의 평등 이야기'에서 발췌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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