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이여 특허로 말하라]
레시피 같은 형상 없는 지식재산도
특허 출원 가능하지만
20년 뒤 특허권 소멸

37년 전통의 평양냉면 맛집인 서울 중구 을지면옥 영업 마지막 날인 25일 영업종료 한시간을 남겨둔 오후 2시께 손님들이 줄서 기다리고 있다. 세운재정비촉진지구 3-2구역 재개발 시행사가 을지면옥을 상대로 낸 '부동산명도단행가처분'에서 법원은 1심을 뒤집고 시행사의 손을 들어줬다. 을지면옥은 새로운 장소를 찾아 이전할 계획이다. 2022.06.25.  ⓒ뉴시스·여성신문
37년 전통의 평양냉면 맛집인 서울 중구 을지면옥 영업 마지막 날인 25일 영업종료 한시간을 남겨둔 오후 2시께 손님들이 줄서 기다리고 있다. 세운재정비촉진지구 3-2구역 재개발 시행사가 을지면옥을 상대로 낸 '부동산명도단행가처분'에서 법원은 1심을 뒤집고 시행사의 손을 들어줬다. 을지면옥은 새로운 장소를 찾아 이전할 계획이다. 2022.06.25. ⓒ뉴시스·여성신문

37년간 을지로 골목에서 영업해 온 평양냉면 음식점 을지면옥이 영업을 종료하고 철거됐다. 아쉬운 마음에 비슷한 맛을 내는 업체는 없을까 생각하다가, 혹시 많은 사람의 입맛을 사로잡은 냉면 레시피에 대한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 특허등록을 해놓았을지 호기심이 생겨 검색해봤다.

검색 결과는 없었다. 냉면, 면 제법, 육수 제조 등등 여러 키워드로 검색해봤고, 관련 분야에서는 정말 많은 검색 결과가 쏟아져 나왔다. “육수”와 “냉면” 두 검색어로만 한국에서 125건의 특허문헌이 검색됐고, “냉면”과 “제면”으로 72건이 검색됐다. 하지만 을지면옥과 연관성이 있는 문헌을 찾을 수 없었다. 을지면옥에 관한 기사 사진 속 제면기의 제조사명 ㈜삼보냉면기계의 특허사항도 살펴보았지만 이것이 맛의 비법이구나 싶은 문헌을 찾을 수 없었다.

을지면옥은 국내 평양냉면집 중 가장 번창한 곳으로 알려졌다. 냉면 제조 노하우를 대를 이어 전수해온 곳이다. 홍정숙 을지면옥 대표의 어머니인 김경필 할머니는 1·4후퇴 때 월남해 1969년에 의정부 평양면옥을 개업했다. 현재 김 할머니의 맏아들이 맡아 경영하고 있고, 을지면옥 외에도 평양냉면으로 유명한 필동면옥(중구 필동) 및 본가 평양면옥(서초구 잠원동) 역시 김 할머니의 자녀들이 운영 중이다. 이렇게 대대로 내려온 냉면 맛의 노하우는 무엇일까.

냉면 맛을 결정짓는 요소는 생각보다 다양한데, 면 반죽의 종류와 육수의 제법은 물론이고, 반죽에 들어가는 메밀의 도정 정도, 면이 식당에서 직접 만들어지는지, 메밀의 거친 성분을 중화시켜주기 위한 무, 첨가되는 양념장의 재료와 양, 심지어 면 길이까지 수없이 많은 요소가 맛에 영향을 준다고 한다. 이 모든 것을 조합해 사람들이 다시 찾는 맛을 내기 위한 비법이 되고, 노하우가 된다.

지식재산은 형상이 없기 때문에 누군가가 내 것을 도용했을 때 법적으로 소유권을 주장하기가 상당히 까다롭다. 부정경쟁방지 및 비밀보호법으로 노하우에 대해 법적 보호를 꾀하고 있지만, 실제로 노하우를 나만의 비밀로 유지하려는 충분한 노력이 입증돼야만 보호를 받을 수 있다. 이를테면 평소 식당 내부의 관리계획, 보안규정에 상세한 관리 규정을 뒀거나, 직원들에게 영업비밀보호각서를 받는 등 평상시 관리가 중요하다. 반면 노하우를 기술문서화해서 특허법에 의해 보호를 꾀한다면 등록에 의해 그 소유 주체가 명확히 정해지고, 도용에 대해 침해금지를 주장하기가 용이하다.

그런데 문제는 특허 출원된 내용은 일정 시점이 지나면 모두에게 공개되는데, 냉면 레시피 같은 요리 레시피는 공개된 내용을 보고 제3자가 살짝 바꿔서 법적인 문제만 안 생길 정도로 모방하는 것이 매우 쉽다. 이 때문에 레시피를 다 특정하지 않고 재료의 양의 범위를 정해서 출원하기도 하는 등 여러 방안이 강구되기도 한다. 어쨌든 요리 레시피라는 특성과 업종을 고려할 때 쉽게 모방이 가능하니, 고유의 맛을 지키고자 하는 입장에서는 특허 출원의 효용이 매우 뛰어나다고 보기가 조금 어렵다. 결정적으로 특허권은 출원일로부터 20년이 되는 시점에 소멸한다. 노하우가 외부로 새어 나가지만 않는다면 을지면옥의 냉면 레시피처럼 대대손손 물려줄 수 있다.

모든 레시피가 공개돼 식음료 분야 산업이 발전하는 것도 좋지만, 특정 음식점에서만 맛볼 수 있는 맛과 감성이 모방업체에 의해 희석되는 것을 원치 않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냉면 레시피를 비밀로 유지하기 위한 구체적인 노력은 알 수 없다. 분명한 건 을지면옥의 노하우가 잘 관리돼 인기 있지만 쉽게 모방할 수 없는 고유의 맛으로 자리 잡았다는 사실이다. 수단이야 어떻든, 우리 모두는 무형의 지식재산에 대한 가치를 인정하고 영향을 받으며 살고 있다. 특허로 보호받지 않은 냉면 맛이 고유의 맛으로 인식되는 것이 특허업계에 몸담은 필자에게도 반가운 이유다.

김지우 다선특허법률사무소 대표변리사/기업기술가치평가사
김지우 다선특허법률사무소 대표변리사/기업기술가치평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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