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처벌법 개정안 통과
피해자 진술 공개로
피의자 증거 훼손·회유 가능성

미성년 성폭력 피해자의 법정 진술을 막기 위해 재판 전 영상을 통해 진술을 녹화하는 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그러나 재판 전 영상 진술로 인해 피해자가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불리해질 수 있고 재판장에 피해자 소환이 가능해 2차 피해의 위험성은 여전히 존재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헌법재판소는 2021년 12월 23일 19세 미만 성폭력 피해자의 영상녹화 진술을 증거로 인정하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30조6항’에 대해 “피고인의 반대신문권을 보장하지 못한다”며 위헌 결정했다. ⓒ헌법재판소
헌법재판소는 2021년 12월 23일 19세 미만 성폭력 피해자의 영상녹화 진술을 증거로 인정하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30조6항’에 대해 “피고인의 반대신문권을 보장하지 못한다”며 위헌 결정했다. ⓒ헌법재판소

6월 29일 법무부는 미성년 성폭력 피해자를 위한 맞춤형 증거보전절차를 도입하는 내용의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성폭력 처벌법)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했다고 밝혔다. 

이번 개정안은 지난해 12월 영상물에 수록된 19세 미만 성폭력 피해자의 진술을 증거로 인정한 ‘성폭력 처벌법’ 조항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위헌 판결을 내린 데 따른 것이다. 당시 헌법재판소는 피고인의 반대신문권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취지로 위헌 결정을 했다. 이로 인해 미성년 피해자는 성폭력 범죄 입증을 위해 직접 법정에 출석해야만 했다. 이에 법무부는 피고인의 반대신문권을 보장하면서도 미성년 피해자를 2차 피해로부터 보호할 수 있도록 개정안을 마련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수사 과정에서 미성년 또는 장애로 심신미약인 성폭력범죄 피해자의 진술을 영상녹화 한 뒤 증거보전절차를 통하도록 하고, 이러한 경우 공판절차에서 피해자 증언 없이도 영상녹화물을 증거로 사용할 수 있게 했다. 증거보전절차란 공판 전 미리 증인신문 등을 실시해 증거를 조사하고 그 결과를 보전하는 절차를 의미한다.

한국성폭력상담소 등 28개 여성·시민사회단체는 2021년 12월 24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성폭력 피해자들의 용기 있는 고발로 한 걸음 더 나아간 역사를 퇴행시키는 결정”이라며 헌법재판소 판결을 규탄했다. ⓒ여성신문
한국성폭력상담소 등 28개 여성·시민사회단체는 2021년 12월 24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성폭력 피해자들의 용기 있는 고발로 한 걸음 더 나아간 역사를 퇴행시키는 결정”이라며 헌법재판소 판결을 규탄했다. ⓒ여성신문

그러나 현재 피의자 또는 피의자의 변호인이 반대신문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영상녹화물 및 녹취서 등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성폭력 피해자를 불리한 위치에 놓는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성폭력상담소가 지난 5월 개정안 입법예고 당시 내놓은 의견서에 따르면 “수사기관이 수사 초기부터 피의자 등에게 피해자 진술의 상세 내용을 제공한다면 피의자 등은 이를 악용할 것”이라며 “피해자에 대한 회유, 협박 등 우려가 있고 피의자가 증거를 인멸하거나 미리 진술을 맞추어 기소가 어려워질 수 있다”고 밝혔다.

피해자의 2차 피해 가능성도 여전히 존재한다. 신수경 한국여성변호사회 변호사는 “가해자가 반대신문권을 행사하면 아이들을 재판장에 소환하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며 “거듭된 진술로 인해 2차 피해가 생길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현숙 탁틴내일 대표는 “증거보전절차가 없는 게 차라리 나을 수도 있다”며 “사전 질문지를 받고 아동 전문가가 적절하다고 판단한 질문에 대해서만 답변하는 방식을 채택하는 등의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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