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소녀상 철거하라고? 더 배워!… 베를린 시민이 지킨다”
“베를린 소녀상 철거하라고? 더 배워!… 베를린 시민이 지킨다”
  • 이가람 자유기고가
  • 승인 2022.06.29 11:10
  • 수정 2022-06-29 19: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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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한정화 코리아협의회 대표
27일 베를린 미테구 평화의 소녀상 영구 존치를 위해 모인 시민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Sanhah Lee, Korea Verband
지난 6월 27일 베를린 미테구 평화의 소녀상 영구 존치를 위해 모인 시민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Sanhah Lee, 코리아협의회

“뜨악했어요.”

재독 시민단체 코리아협의회 한정화 대표는 지난 5월 18일 정의기억연대로부터 믿을 수 없는 소식을 접했다. 한국의 ‘위안부사기청산연대(이하 위사연)’라는 단체가 베를린 ‘평화의 소녀상’ 철거를 요구하기 위해 독일에 온다는 이야기였다.

“그 다음날 나치 강제 노동자 관련 전시 오프닝 행사에서 미테구청 공무원을 만났어요. 한국의 한 단체에서 면담 신청이 왔는데, 그곳을 아느냐고 물어보더라고요. 그래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왜곡하는 극우단체라고 말했어요. 그 단체가 수요집회에서 어떤 행동을 했는지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자세히 설명해 줬죠.”

주옥순 엄마부대 대표와 김병헌 국사교과서연구소장, 이우연 낙성대경제연구소 연구위원, 요시다 켄지씨 등 위사연 소속 4명은 지난 6월 26일(현지시간) 베를린 소녀상 앞에서 “위안부 사기는 이제 그만”이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이에 항의하는 코리아협의회와 독일 여성단체와 시민단체, 노동단체, 베를린 일본여성연합 등 100여명도 “집에 가” “더 배워”라는 구호를 외치며 맞불 집회를 열었다.

일본 정부와 극우 세력의 소녀상 철거 요청은 과거에도 계속됐다. 소녀상은 지난 2020년 9월 25일 미테구 비르켄가에 1년 기한으로 설치됐다. 제막식 이후 일본 정부는 강제동원 등의 역사를 부정하며 소녀상 철거를 요청했고 미테구는 설치 2주 만에 철거 명령을 내렸다. 코리아협의회도 효력 집행정지를 신청하며 법적 투쟁에 나섰다.

싸움의 기간은 길지 않았다. 독일 시민사회와 언론의 비판이 이어지자 미테구는 철거명령을 철회했다. 이듬해에도 시민들의 소녀상 설치 연장 요구 목소리가 높아지자 2022년 9월 28일까지 설치 연장을 승인한 상태다.

코리아협의회가 위사연과의 만남을 거절한 이유는?

한정화 대표는 지난 6월 9일과 13일 위사연으로부터 영문 이메일을 받았다. 만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답하지 않자 전화 연락이 왔다. 정중하고도 단호하게 거절했다. 일본 극우 세력과 똑같이 말하는 단체를 굳이 만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즈음 한 대표는 할 일이 많았다. 지난 5월 미테구 소녀상 설치 연장 신청서를 제출한 상태였기 때문에 정치인들을 만나 이를 알리는 데 집중해야 했다. 그들의 방문 때문에 소녀상 설치 연장이 어려워지지 않을까 염려됐다. 그래서 직접 충돌은 더욱 피했다. 이런 단체가 언론에서 다뤄져 유명해지면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어서 조심스럽게 관련 대응을 준비하던 중에 관련 뉴스가 대서특필됐다.

“언론 보도가 나가고 정말 많은 응원과 메시지를 받았어요. 위사연은 ‘보수’가 아닌 ‘극우’나 ‘친일파’인데 언론에서 잘못 다루고 있다는 의견이 대부분이었어요. 제 생각도 같아요. 적어도 그들이 보수라면, 일본 정부가 고노담화를 통해 인정한 위안부 존재 사실과 강제동원 부분은 인정해야죠.”

분노할 땐 하더라도 이럴수록 냉정하고 이성적 대처가 필요하다는 사람도 많았다. 한 대표도 같은 생각이었다. 독일에선 극우주의자들에 대한 처벌이 엄격하다. 한 대표는 “홀로코스트에 대한 역사 왜곡과 이를 부인하는 세력을 봐 온 독일인들이 많기 때문에 위사연 방문 소식을 듣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고 말했다.

“독일에선 베를린 홀로코스트 추념비 앞에서 나치 부정론자들의 집회나 시위가 허용되지 않아요. 독일 형법 제130조 국민선동 3항과 4항에 분명하게 명시돼 있거든요. 이를 위반하면 3~5년 이하의 자유형 또는 벌금형에 처하게 돼요. 그래서 독일에서는 극우주의자들이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거나 후원 계좌를 열 수 없어요. 한국도 이러한 법안 제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한정화 코리아협의회 대표가 2020년 9월 28일 제막식을 앞두고 베를린 시민들에게 평화의 소녀상 건립 취지에 대해 설명을 하고 있다. Ⓒ코리아협의회
한정화 코리아협의회 대표가 2020년 9월 28일 제막식을 앞두고 베를린 시민들에게 평화의 소녀상 건립 취지에 대해 설명을 하고 있다. Ⓒ코리아협의회

일본 기시다 총리의 집요한 철거 요청에도
미테구의회, 소녀상 영구 존치 결의안 통과

위사연 방문으로 어수선한 시간을 보내던 중 좋은 소식이 전해졌다. 6월 21일 미테구의회가 소녀상 영구 존치를 위한 긴급 결의안을 통과시킨 것. 좌파당과 녹색당이 함께 낸 결의안으로 소녀상 영구 존치를 먼저 한 뒤, 독일 연방과 베를린시 차원에서 소녀상을 주제로 공식적인 예술 공모를 진행해 차후 독일의 공식적인 기념비가 되게 한다는 결의안이었다.

“미테구에서 이를 실천해 줄 지는 모르지만, 그렇게 된다면 정말 역사적인 결정이 되는 거예요. 소녀상을 한국-일본 갈등의 상징이 아니라 전세계 전시 여성 성폭력에 반대하는 평화의 상징으로 인정한 거거든요. 이미 많은 독일 시민이 그렇게 인식하고 있어요. 저희 역시 그렇고요.”

계속되는 소녀상 설치 연장에 일본의 반격도 거세다. 올해 4월 일본 기시다 총리가 독일 숄츠 총리에게 평화의 소녀상 철거를 요청한 상태다. 한 대표는 “아직 독일 정부나 미테구 측의 반응이 공식적으로 나오진 않았지만 몇몇 구의원들은 일본 측의 요청이 정상회담 자리에서 나왔다는 건 부적절하다며 황당하다는 반응이었다”고 한다.

일본 총리의 압력에도 독일 사회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 결과 미테구의회의 소녀상 영구 존치 결의안이 나올 수 있었다. 한 대표는 “일본의 압력과 상관없이 소녀상이 독일 사회에 어떤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결정”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독일 시민과 인권단체가 함께 지켜온
베를린 ‘평화의 소녀상’

위사연 이전엔 일본 극우 중심으로 소녀상 철거에 대한 압력이 이어져 왔다. 하지만 역사를 부정하는 일본의 대응은 오히려 소녀상에 대한 독일 시민사회의 관심을 높이는 결과로 이어졌다.

“소녀상은 차별과 폭력에 반대하는 시민들의 활동 거점이 됐어요. 세계여성의날 집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반전 집회, 여성 성폭력 철폐 촉구 집회, 독일 하나우 총기 난사 추모 시위, 미국 애틀랜타 인종차별 총기 테러 추모 시위 같은 행사들이 미테구 소녀상 앞에서 진행되고 있어요.”

‘극우에 반대하는 할머니들 모임(OmasgegenRechts)’은 전시 여성 성폭력에 반대하는 침묵시위를 2021년 2월 이후 계속해오고 있다. ‘일본군위안부행동’ 활동가와 한국인, 일본인, 독일인으로 구성된 자원봉사자들이 일주일에 세 번 정도 소녀상 주변을 관리하며 지킴이 활동도 이어가고 있다. 

독일 베를린 미테구에 설치된 일본군 위안부를 상징하는 '평화의 소녀상'에 꽃 장식이 놓여져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독일 베를린 미테구에 설치된 일본군 위안부를 상징하는 '평화의 소녀상'에 꽃 장식이 놓여져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위안부 역사 알고 행동하기 시작한 사람들
“소녀상은 탈식민주의와 페미니즘의 긍정적 사례”

한정화 대표가 각별하게 신경 쓰는 분야는 청소년 교육이다. 코리아협의회는 소녀상을 중심으로 한 평화인권교육 프로그램을 꾸준히 진행해 왔다. 일본군 위안부 관련 역사 수업부터 소녀상 옆 의자에 앉아보는 체험수업까지 내용도 다양하다. 교육에 참여한 학생들은 소녀상을 주제로 음악, 시, 영상을 제작했고, 최근 ‘키라메’ 지역 청소년들은 재활용 가능한 재료로 만든 악기로 소녀상 앞에서 작은 공연을 펼쳤다.

지역주민의 관심도도 높다. 소녀상이 위치한 모아비트 주민들 사이에선 “소녀상도 모아비트 주민”이라는 이야기가 돈다. 한 대표는 이에 대해 “독일의 시민사회가 소녀상을 탈식민주의와 페미니즘의 긍정적인 사례로 평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위사연 대응 집회 역시 독일 시민의 참여로 이어졌다. “라이프치히대 연극학과 학생들의 퍼포먼스, 사물놀이와 디제잉 공연, 평화 종이접기 같은 행사는 이 집회 중심에 시민이 있다는 걸 의미하는 거예요. 26일 열린 침묵시위에는 한국어와 독일어, 영어, 일본어, 아랍어로 번역된 전단을 배포했는데, 이것 역시 다양한 언어권의 사람들이 함께 참여한다는 의미가 있죠.”

청소년 교재 제작, 기획전시 등  
전시 성폭력 반대 활동 지속할 것 

코리아협의회에선 1명의 상근활동가와 2명의 반상근 활동가가 함께 일한다. 공간을 마련해 <일본군위안부박물관>을 운영하고, 청소년 교육을 진행하면서 소녀상까지 지킬 수 있는 건 많은 자원봉사자가 함께하기 때문이다. 인력에 비해 많은 일을 하지만, 일본 극우의 방해가 계속되기 때문에 하나라도 손을 놓을 수 없다는 게 한정화 대표의 설명이다.

올해만 해도 굵직한 사업이 꽤 남았다. ▲소녀상과 박물관 QR코드 작업 ▲독일 청소년 대상 <일본군 위안부 문제 교재> 제작 ▲1990년대 한국과 일본 여성들이 시작한 독일 내 일본군 위안부 운동사 연구 ▲11월 국제일본군위안부기림일 및 세계여성폭력 추방의 날 집회 ▲소녀상 영구 존치를 위한 서명운동(참여 링크) 등이다. 

대표와 상근활동가 1명, 파트타임 활동가 2명으로 진행하기에 무리는 없을까. 한 대표는 “지금껏 그래왔듯이 독일의 인권단체와 여성단체, 그리고 수많은 시민과 연대해 일할 것”이라며 환하게 웃었다. 

한편, 베를린자유대학과 훔볼트대학에서 일본학과 한국학을 전공한 한정화 대표는 2008년 통역봉사에 참여하면서 코리아협의회와 인연을 맺었다. 그 후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관심을 두고, 전시 성폭력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꾸준히 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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