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대법원, ‘여성 임신중지권 인정’ 로 대 웨이드 판례 번복
텍사스 등 약 13개 주서 임신중지 금지돼
바이든 대통령 “슬픈 날...임신중지권 법제화해야”

23일(현지시간) 미 워싱턴 연방대법원 앞에서 임신중지권 옹호 시위대와 반대 시위대가 함께 시위하고 있다.  ⓒAP/뉴시스
23일(현지시간) 미 워싱턴 연방대법원 앞에서 임신중지권 옹호 시위대와 반대 시위대가 함께 시위하고 있다. ⓒAP/뉴시스

미국에서 ‘낙태죄’가 부활했다. 1973년 여성의 임신중지권을 인정한 미 연방대법원이 50여 년 만에 결정을 뒤집었다. 미국 50개 주 가운데 약 13곳에서 즉시 임신중지가 금지됐다. 이외에도 여러 주에서 임신중지를 원하는 여성들이 권리를 제한당하거나 범죄자로 몰릴 전망이다. 

임신중지권을 옹호해온 조 바이든 대통령은 “오늘은 슬픈 날”이라고 했다. “임신중지권을 법제화해야 한다”며 의회의 역할을 강조했다.

폴리티코, 워싱턴포스트, 뉴욕타임스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연방대법원은 24일(현지시간) 여성의 임신중지를 헌법상 권리로 인정한 ‘로 대 웨이드’(Roe v. Wade) 판례를 찬성 5명 대 반대 4명으로 번복했다. 미시시피주가 임신 15주 이후 임신중지를 금지하는 주 법률 위헌 소송을 제기해 대법원까지 올라간 결과다. 

이제 각 주의 법에 따라 임신중지권 보장 범위가 달라진다. 아칸소, 미시시피, 텍사스 등 13개 주에서는 즉각적으로 임신중지가 금지됐다. 앨라배마, 오하이오, 조지아 등 5개 주에서도 몇 주에서 몇 달 사이에 임신중지가 금지될 전망이다.

【오스틴=AP/뉴시스】미 텍사스주 오스틴의 의사당 앞에서 낙태 금지 반대 시위대가 시위하고 있다
【오스틴=AP/뉴시스】미 텍사스주 오스틴의 의사당 앞에서 낙태 금지 반대 시위대가 시위하고 있다

‘로 대 웨이드’ 판결은 1971년 성폭행으로 원치 않는 임신을 한 여성 ‘로’(가명)가 텍사스주 정부에 임신중지를 허용해달라는 소송을 제기해 끌어냈다. 이후 미 여성들은 임신 약 24주까지 임신중지를 선택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난 5월 미 연방대법원이 이를 뒤집는 의견을 다수 의견으로 채택한 초안이 공개돼 파문이 일었다. 미국 전역에서 임신중지 찬반 진영이 시위를 열고 대립하며 정치적 쟁점으로 떠올랐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입김이 작용한 결정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임기 중 임신중지권에 반대하는 보수 성향 대법관 3명(닐 고서치, 브렛 캐버노, 에이미 코니 배럿)을 임명해, 연방대법원이 보수 성향 대법관 6명, 진보 성향 3명으로 편향성을 띠게 됐기 때문이다. 이날 보수 성향 대법관 5명이 로 대 웨이드 판례 철회를 지지했고, 진보 성향 대법관 3명은 반대했다. 남은 1명은 보수 성향의 존 로버트 대법관으로, 이번 미시시피주의 임신중지 금지는 합헌이라는 부분만 언급했다.

뉴요커 기자 지아 톨렌티노는 이날 ‘우리는 로 대 웨이드 전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상황이 더 나빠질 것이다’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임신한 여성과 의료인, 조력자 등에 대한 국가의 감시와 범죄화가 만연한 시대가 도래했다”고 한탄했다.

5월 3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연방대법원 밖에서 임신중지권 보장을 요구하는 시위가 열렸다. 시위대가 임신중지권이 보장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여성들이 위험한 선택을 할 수밖에 없음을 뜻하는 옷걸이를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AP/뉴시스
5월 3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연방대법원 밖에서 임신중지권 보장을 요구하는 시위가 열렸다. 시위대가 임신중지권이 보장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여성들이 위험한 선택을 할 수밖에 없음을 뜻하는 옷걸이를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AP/뉴시스

미국 내 파장이 거세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트위터를 통해 “오늘 연방대법원은 약 50년간의 선례에 거스르는 결정을 내렸을 뿐 아니라 개인이 내릴 수 있는 가장 사적인 결정을 정치인들과 사상가들의 변덕에 맡겼다. 미국인 수백만명의 자유를 공격했다”고 비판했다.

부인 미셸 오바마 여사는 “오늘 내 가슴이 무너진다. 자신의 몸에 관한 결정을 내릴 기본권을 잃어버린 이 나라의 사람들 때문에 가슴이 무너진다”며 “오늘은 우리의 가슴이 무너져도, 내일은 일어나 정의로운 미국을 만들기 위해 계속해서 일하려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며 시민들에게 대응을 촉구했다.

“여성의 선택권이 기본권”이라며 옹호해온 조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 연설에서 “오늘은 우리 나라에 슬픈 날이지만 이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우리는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법제화해야 한다”며 미국인들에게 임신중지권을 지지하는 의원들을 선출해 달라고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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