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 위해 싸우는 변호사들
관련 법 문제점 쉽게 설명한
『동물에게 다정한 법』 펴내
김도희·김소리·송시현·한주현 변호사 인터뷰

한국사회 동물권 인식 진보하는데
뒤떨어진 법제도와 사법기관
동물은 물건 아닌 동등한 생명체
인간도 위협하는 동물학대 엄벌해야

책 『동물에게 다정한 법』을 펴낸 동변(동물의 권리를 옹호하는 변호사들 모임) 소속 변호사들이 20일 여성신문과 만났다. 왼쪽부터 김소리 변호사, 김도희 변호사, 송시현 변호사, 한주현 변호사. ⓒ홍수형 기자
책 『동물에게 다정한 법』을 펴낸 동변(동물의 권리를 옹호하는 변호사들 모임) 소속 변호사들이 20일 여성신문과 만났다. 왼쪽부터 김소리 변호사, 김도희 변호사, 송시현 변호사, 한주현 변호사. ⓒ홍수형 기자

서울 도봉구 방학천의 ‘마스코트’ 청둥오리 가족이 최근 몰살당했다. 범인인 10대 형제는 지난 23일 경찰 조사에서 “호기심에” 그랬다고 했다. 2019년 방송 중 반려견을 학대한 20대 남성 유튜버는 경찰에게 “내가 내 개 때리겠다는데”라고 응수했다.

궁금하니까, 내 소유물이니까 때렸다. 뻔뻔한 항변은 동물의 권리가 보장되지 않는 현실과 맞닿아 있다. 동물보호법이 만들어진 지 30년이 넘었지만 집행도 처벌 수위도 미약하다. 이제 겨우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라는 명제가 법에 쓰일 준비를 하는 상황이다. 실존하는 법과 제도가 왜 동물을 지키지 못할까.

“동물학대 처벌 근거가 되는 법 조항이 그리 촘촘하지 않아요. 길고양이 600여 마리를 잔인하게 도살해 건강원에 팔았다가 동물학대 혐의로 기소된 남성이 집행유예에 그치는 식이죠. 같은 법을 적용해도 판사의 성향에 따라 양형이 달라요.” (한주현 변호사)

“동물학대를 범죄로 보지 않는 검사도 많아요. ‘뭐 이런 걸 고발하냐’는 식이죠. 어렵게 수사·기소해도 법원이 중하게 다루지 않아요. 실형이 나온 사례가 손에 꼽을 정도죠. 동물학대 가해자의 다음 범행 대상은 인간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더 심각하게 다뤄야 합니다.” (송시현 변호사)

동물의 권리를 위해 싸우는 변호사들이 책 『동물에게 다정한 법』을 펴냈다. 동물의 현실을 고발한 르포는 많지만, 나아가 동물 관련 법의 문제를 조명한 책은 처음이다. 변호사들이 썼지만 딱딱하지 않다. 일반인 눈높이에서 쉽고 친절하게 이야기를 건넨다.

저자는 동변(동물의 권리를 옹호하는 변호사들 모임) 소속 변호사 10명. 동변은 2014년 만들어진 느슨한 모임이다. 소속, 경력, 직위는 다 다르나 동물에 대한 애정으로 모였다. 유기묘·유기견 등을 입양한 변호사도 많다. 본업을 하는 틈틈이 동물단체, 제보자 등과 함께 학대 현장을 살피고 고소·고발을 지원한다. 급박한 사건이 많아 새벽에도 단톡방이 수시로 울린다. 정부의 개 식용 문제 태스크포스(TF)에도 참여해왔다.

그간 경영난을 이유로 동물들을 방치·학대한 대구의 한 동물원을 고발해 수사받게 했고, 반려견에게 고양이를 물어 죽이게 하곤 그 영상을 온라인에 올린 학대자를 고소해 처벌받게 했다. 수의과대학 실습 과정에서 학대당하는 개들을 대신해 수사를 끌어내고, 유튜브 등 소셜미디어에 올라온 동물 학대 콘텐츠도 살폈다. 관련 법 제·개정에도 힘썼다. 책에서는 이를 포함해 동변이 다룬 대표적 사건 11가지를 다룬다.

동변(동물의 권리를 옹호하는 변호사들 모임) 소속 변호사들이 펴낸 책 『동물에게 다정한 법』(태학사). ⓒ태학사
동변(동물의 권리를 옹호하는 변호사들 모임) 소속 변호사들이 펴낸 책 『동물에게 다정한 법』(태학사). ⓒ태학사

동변 변호사들이 보기에 우리 사회의 동물권 감수성은 꽤 진보했다. 문제는 법과 법을 다루는 사람들의 인식이 저만치 뒤떨어져 있다는 점이다.

송시현 변호사는 ‘동물판 n번방’ 사건을 예로 들었다. 수십 명이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서 동물학대를 모의하고 잔인하게 동물을 해치는 장면을 찍은 사진·영상을 공유한 사건이다. 가해자 대부분이 10대였다. 사회적 공분을 일으켰지만, 1심은 주범인 ‘행동대장’ 이모씨에게 징역 4개월에 벌금 100만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는데 그쳤다. 방장은 벌금 300만원형이 확정됐다.

“개인의 과시욕 충족이나 수익을 목적으로 소셜미디어를 활용한 동물학대 범죄가 늘고 있어요. 소셜미디어 주 이용층인 미성년자들에게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위험한 범죄입니다. 벌금형이라니 말이 되나요.”

시위 중 살아있는 방어와 참돔을 아스팔트 바닥에 던진 경남어류양식협회 관계자들은 어떤가. 검찰은 지난 5월 10일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식용 어류’라 동물보호법 적용 대상이 아니란다. 현행 동물보호법은 ‘동물’을 ‘고통을 느낄 수 있는 신경체계가 발달한 척추동물’로 정의한다. 포유류, 조류, 대통령령으로 정해진 파충류·양서류·어류로 한정하고 있다. 

“식용 어류는 어떻게 죽여도 상관없다는 검찰의 시각이 굉장히 문제라고 봐요.” 이 사건을 고발한 김도희 변호사는 ‘고통을 느끼는 신경체계가 발달한 척추동물’이 아니어도 법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스위스, 노르웨이 등 외국에서는 어류도 동물보호법 적용 대상으로 명시하고 있다. 식용이라도 가능한 덜 고통받도록 법적으로 보장하는 추세다.

동물해방물결 회원들이 2일 오후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검찰청 앞에서 열린 경남어류양식협회 어류 동물 학대 및 살해 사건 관련 검찰 규탄 기자회견에서 퍼포먼스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동물해방물결 회원들이 2일 오후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검찰청 앞에서 열린 경남어류양식협회 어류 동물 학대 및 살해 사건 관련 검찰 규탄 기자회견에서 퍼포먼스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코로나19 경영난을 이유로 동물들을 굶기고 방치했으며, 종양이 생긴 낙타가 죽을 때까지 뒀다가 사체를 다른 동물에게 급여한 대구시 동물원도 짚어야 한다. 지역민들이 발견해 도움을 청하고, 동변과 동물단체들이 고발해 널리 알려진 사건이다. 검찰은 고발 1년 만인 지난 3월 동물원 운영자를 동물학대 등 혐의로 기소했다. 기소된 운영자는 지금도 대구 경북 지역에서 다른 체험 동물원을 운영 중이나 대구시는 ‘제재할 법적 근거가 없다’는 입장이다.

한주현 변호사는 “동물원과 무관한 시민들이 방치된 동물들을 살려보려 노력하는 모습, 언론 보도를 보고 공분하는 사람들을 보며 우리 시민들의 동물감수성을 법이 못 따라오고 있구나 싶었다”고 했다.

2020년 11월 2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앞에서 동물권행동 카라가 '동묘시장 길고양이 학대 사건 불기소 처분, 동물학대행위 방조하는 검찰의 봐주기 수사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홍수형 기자
2020년 11월 2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앞에서 동물권행동 카라가 '동묘시장 길고양이 학대 사건 불기소 처분, 동물학대행위 방조하는 검찰의 봐주기 수사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홍수형 기자

왜 이런 일들이 반복될까. 동물보호법 위반 혐의에 대한 일관된 양형 기준이 없다. 판사의 재량에 의존해 ‘복불복 판결’이 나온다. 동물보호법을 적용한 사건 처리 건수 자체도 적다. 동물보호법상 처벌 수위도 약하다. 동물학대 가해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을 수 있지만 실형을 산 경우는 거의 없다. 처벌이 약하니 1심, 2심에서 사건이 종결되는 경우가 많아 대법원까지 가는 사례가 드물다. 참고할 만한 선례로 삼을 만한 판례가 많지 않은 이유다.

동물권에 대한 낮은 사회 인식을 바꾸려면 법이 바뀌어야 한다. 경찰, 검찰 등 수사기관에서도 동물학대를 중범죄로 다루고, 동물보호법을 더 적극 적용해 동물학대를 강력히 처벌해야 한다. 예컨대 미국 등 외국은 동물학대나 방치로 유죄판결을 받으면 5~15년간 소유권을 제한한다. “우리도 동물학대 가해자의 소유권을 제한해야 해요. 동물을 물건 취급하는 인식을 깨는 데 도움이 되고 동물학대 방지 효과도 높아요.” (한주현 변호사)

변호사들은 동물보호법 보호 바깥의 산천어, 방어 등 ‘식용’ 동물도 법으로 보호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법무부가 지난해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라는 내용의 민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는데, 현행법상 인위적 동물 구분을 그대로 따르진 않을까 우려됩니다. 개선해나가야죠.” (김도희 변호사) 

더디기만 한 개 식용 금지 입법 논의도 촉구했다. “반려견과 식용견이 다르지 않잖아요. 같은 생명이죠. 논의가 어서 진척돼서 고통받는 개들이 없기를 바랍니다.” (김소리 변호사)

책 『동물에게 다정한 법』을 펴낸 동변(동물의 권리를 옹호하는 변호사들 모임) 소속 변호사들이 20일 여성신문과 만났다. 왼쪽부터 김소리 변호사, 한주현 변호사, 김도희 변호사, 송시현 변호사 ⓒ홍수형 기자
책 『동물에게 다정한 법』을 펴낸 동변(동물의 권리를 옹호하는 변호사들 모임) 소속 변호사들이 20일 여성신문과 만났다. 왼쪽부터 김소리 변호사, 한주현 변호사, 김도희 변호사, 송시현 변호사. ⓒ홍수형 기자

동변 변호사들은 채식 습관, 짧은 목줄에 매인 시골 개들을 위해 긴 목줄 선물하기 등 소소한 동물권 지지 행동 팁도 공유했다. 동물권의 관점으로 본 동물 관련 법 해설서인 ‘동물법 교과서’도 준비 중이다.

“사소해 보여도 동물학대 현장을 그냥 지나치지 말아 주세요. 신고 정신을 발휘해주세요. 영상이라도 몰래 찍어서 112에 문자로 보내면 돼요. 저희에게 제보를 주셔도 됩니다.” (송시현 변호사)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동물권과 기후위기 등을 생존의 문제로 여기는 이들이 늘어났어요. 로스쿨 학생들만 봐도 변화가 눈에 보여요. 희망이 있다고 봐요.” (김도희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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