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공동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윤석열 대통령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함께 5월 2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공동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더 이상 구조적인 성차별은 없다. 차별은 개인적 문제다.”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후보 때 했다가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말이다. 당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의 ‘이대남’ 전략에 이끌려가던 윤 후보는 어느 날 갑자기 ‘여성가족부 폐지’라는 일곱 글자를 SNS에 올리면서 이대남 전략의 신호탄을 터뜨렸다. 그러나 대선을 치르고 나니, 막상 이대남 전략은 별 효과가 없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대남들의 표를 더 얻은 만큼 성난 이대녀들이 등돌리면서 결국 ‘샘샘’이 되고 말았다. 공연히 젠더 갈등을 조장한다는 비판만 받았다.

이대남 전략이 별 효과도 없이 끝난 마당에 윤 대통령의 젠더 정책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 관심사가 되었다. 여가부 폐지라는 공약 이행을 서두르지 않고 고심하는 모습도 보였다. 그래서 대통령이 되고 나니 남녀 간의 균형적인 정책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변화할 가능성에 대한 기대를 낳기도 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24일 서울 용산 국방컨벤션에서 열린 국회의장단 만찬에 참석하고 있다. 앞줄 왼쪽부터 김상희 국회부의장, 박병석 국회의장, 윤 대통령, 정진석 국회부의장.  ©뉴시스·여성신문
윤석열 대통령이 5월 24일 서울 용산 국방컨벤션에서 열린 국회의장단 만찬에 참석하고 있다. 앞줄 왼쪽부터 김상희 국회부의장, 박병석 국회의장, 윤 대통령, 정진석 국회부의장. ©뉴시스·여성신문

그러나 그런 기대에 찬물을 끼얹은 것은 초대 내각 인사였다. 19명의 국무위원 가운데 여성은 3명 뿐이었고, 차관 및 차관급 인사 41명 가운데 여성은 2명 뿐이었다. 급기야 한미 정상 공동 기자회견 때 <워싱턴포스트> 기자로부터 "지금 한국 내각에는 여자보다는 남자만 있다"는 지적을 받기에 이르렀다. 며칠 후 국회의장단을 접견한 자리에서 윤 대통령은 김상희 국회부의장으로부터 “유감스럽게 생각하는 건 젠더 갈등”이라는 우려를 들었다. 그 때 윤 대통령이 했던 말이 “정신이 번쩍 들었다”는 것이었다. 공직후보자들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한 여성 후보자에 대한 평가가 약간 뒤처졌는데, 강인선 대변인으로부터 "여성이라 불이익을 받았을 거다. 대개 남성 위주의 조직에서 여성이어서 평가를 제대로 받지 못한 게 누적돼 그럴 것"이라는 말을 듣고는 그랬다는 것이다. 대다수의 여성들은 다들 알고 있는 사실을, 여성 참모의 얘기를 듣고 나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는 사실이 놀랍기는 하다. 그래도 “공직 인사에서 여성에게 과감한 기회를 부여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대답했으니, 윤 대통령의 젠더관에 변화가 있기를 기다렸다.

그 뒤로 여성들에 대한 중용 인사가 이어졌다. 박순애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 김승희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 오유경 식품의약품안전처장, 이인실 특허청장 등 여성 인사가 줄을 이었다. 여성을 발탁했다고 해서 무조건 잘된 인사라고 평가할 일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일단 남녀 간의 균형을 의식하기 시작한 것은 진일보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것만 갖고 윤 대통령이 드러냈던 젠더관의 근본적 문제가 어디까지 개선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윤석열 대통령이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하기 위해 1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초동 자택을 나서고 있다. 김건희 여사가 배웅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이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하기 위해 1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초동 자택을 나서고 있다. 김건희 여사가 배웅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제공)

윤 대통령은 평소 부인 김건희 여사에게 다정한 가정적인 남편으로 알려져 있다. 그가 대선 기간방송에 출연하여 두툼하고 각 잡힌 계란말이를 만드는 모습을 보고는 ‘집밥’을 아내에게 차려주는 남편을 칭송한 사람들도 많았다. 남녀 간에 구조적 성차별은 없고 개인적인 문제라는 생각은 그런 자기 경험에서 나온 것일 수 있다. 자신이 아내에게 집밥도 차려주는 남편으로 살아가고 있으니, 세상은 남녀 간의 구조적 차별 같은 것은 없는 아름다운 곳일 뿐이다. 비단 윤 대통령 뿐만 아니라 배우자에게 잘한다고 생각하는 많은 남편들이 갖기 쉬운 생각의 함정이기도 하다. 

하지만 대통령은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에만 갇혀서는 안 되는 존재다. 굳이 통계 수치를 열거할 것도 없이, 대다수 여성들은 여전히 고용, 임금, 가사노동, 여성 폭력 등 전방위적으로 성차별을 겪고 있다. 윤석열 정부의 인사에서 나타난 ‘유리천장’은 그런 빙산 가운데 일각일 뿐이다. 자기 집 울타리 밖으로 나가면 세상이 그러한데도 구조적 성차별이 없다고 하는 것은, 여성들의 삶을 챙겨야 할 대통령의 정치적 직무유기가 될 수 있다. “구조적 성차별이 없다던 윤 대통령의 생각이 바뀐 것이냐”는 질문에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요지부동으로 답하는 대통령실의 모습은, 성차별의 문제가 구조적인 것임을 역설적으로 반증해주고 있다.

유창선 시사평론가
유창선 시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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