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서울국제도서전 강연
올 초 소설집 『장미의 이름은 장미』 펴내

“문학은 불편한 질문...따뜻한 위로 아냐
하나되는 연대란 불가능...나란히 같은 곳 바라보면 돼
내가 ‘냉소와 독설의 작가’?
사람들이 당연시하는 것 질문할 뿐”

3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2022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은희경 작가가 강연을 하고 있다. ⓒ홍수형 기자
3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2022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은희경 작가가 강연을 하고 있다. ⓒ홍수형 기자

“문학을 읽는 것은 상당히 불편한 일이에요. 문학은 따뜻한 위로도, 내가 아는 것을 확고하게 만들어주는 동조자도 아니죠. 불편한 질문을 자꾸 던져서 우릴 불편하게 해요. 우리가 이 세계에서 정해진 대로 살지 않는 인간이라는 걸 느끼게 해 주는 계기라고 생각해요.”

소설가 은희경이 3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독자들과 만났다. 2022 서울국제도서전 홍보대사를 맡은 그는 컨버스 운동화, 편안한 블라우스와 바지 차림으로 연단에 올랐다.

은희경 작가는 1995년 35세의 나이로 동아일보 신춘문예 등단을 통해 데뷔했다. 소설집 7편과 장편소설 8편을 펴냈다. 예리한 관찰력과 서늘한 통찰력, 우아한 문체로 정평이 났다. ‘끊임없는 자기 혁신의 아이콘’으로도 불린다. 정세랑 작가는 “은희경을 읽는다는 것은 언제나 한국 현대 여성의 목소리를 듣는 일이다”라고 한 바 있다.

“문학은 사람을 읽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고 그는 말했다. “소설엔 이해할 수 없는 인간들이 나와요. 그가 처한 상황, 여러 조건 속에서 겪는 일들, 대결, 좌절을 따라 읽다 보면 그를 이해하게 돼요. 생각해보면 나한테도 그런 면이 있죠. 문학은 모든 인간이 가진 다양하고 고유한 면을 볼 수 있게 해줘요.”

은희경 작가가 2022년 1월 펴낸 소설집 『장미의 이름은 장미』 ⓒ문학동네
은희경 작가가 2022년 1월 펴낸 소설집 『장미의 이름은 장미』 ⓒ문학동네

올해 1월 펴낸 소설집 『장미의 이름은 장미』도 “타인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뉴욕을 배경으로 한 단편 4편을 모았다. 마감이 코앞이라서 자신이 잘 아는 얘기를 쓰기로 했고, 자주 갔던 뉴욕 이야기를 썼다. “대도시가 주는 고독, 사람들 간 오해와 편견, 잘 안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낯설게 느껴지는 경험 등에 대해 써보고 싶었어요.”

은희경 작가는 “고독은 인간의 어쩔 수 없는 조건”이라고 했다. “우리는 각기 다른 존재다.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살 수밖에 없고 기본적으로 타인을 갈망”하지만 “나의 기준으로 그 사람을 대할 뿐, 타인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다”고 했다.

“저를 ‘냉소, 독설의 작가’라고 하는데, 정확하게 보려고 하는 거예요. 상처를 봉합하려 하는 게 오히려 서로를 멀어지게 만든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려 하는 것들을 질문해보자는 거예요. 이게 당신이 원하는 삶인가? 이런 방식이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나? 카프카도 ‘문학은 얼어붙은 내면을 깨는 도끼’여야 한다고 했죠.”

소설을 쓰는 동안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덮쳤다. 각지에서 테러가 일어나고 인종적·계급적 혐오가 퍼지는 걸 지켜봤다. “저는 인간을 사랑해요. 인간이 어떻게 되든 관심 없다면 소설 쓰기의 원동력이 어디서 나올지 모르겠어요. 제가 사랑하는 인간들이 고귀해졌으면 좋겠는데, 이렇게 되니 우울할 때가 많았어요. 소설을 쓰면서 불편한 질문만 할 게 아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제시해보자. 그래서 모든 소설에 따뜻한 장면을 하나씩 넣었어요.”

소설집의 첫 단편인 「우리는 왜 얼마 동안 어디에」의 마지막 장면이 그렇다. 내내 엇갈리며 불편한 나날을 보내던 두 친구가 강가에 앉아 뉴욕의 일몰을 바라보는 장면이다. 은희경 작가는 “‘너와 나 하나가 되자’, ‘우린 영원한 관계’ 이런 건 허위 의식이다. 나란히 앉아 같은 곳을 바라보는 게 연대다. 소통이 절대로 안 된다는 게 아니라, 나와 남이 다르다는 걸 인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3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2022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은희경 작가가 강연을 하고 있다. ⓒ홍수형 기자
3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2022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은희경 작가가 강연을 하고 있다. ⓒ홍수형 기자

그의 첫 장편소설 『새의 선물』(1995)은 지난 5월 100쇄를 돌파했다. “27년간 계속 읽혔다는 게, 내가 그때 던진 질문이 아직 유효하구나 싶고 작가로서 큰 배후 세력을 얻은 기분입니다. 전 가늘고 길게 가려고요. 하하하.”

처음 소설을 쓰던 때의 이야기도 들려줬다. “제 속에 무언가 이야기가 있는데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교훈을 주는 소설, ‘따뜻한 소설’을 쓰기는 싫었어요. ‘잘될 거야’라는 무책임함 속에서 우리가 얼마나 많은 부조리한 오답에 적응해왔나요. 그러다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읽었어요. 처음엔 난해하기만 했는데, 소설을 쓰겠다는 욕구가 강할 때 다시 읽으니 길이 보이더군요. 이렇게 썼구나, 이런 길로 갔구나.... 그렇게 배워서 『새의 선물』을 쓰기 시작했어요.”

소설을 쓸 때는 자신의 기억과 영감에 의존해서 쓰는 편이다. 메모도 잘 하지 않는다. 다만 인상적이거나 기억하고 싶은 것을 발견하면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많이 찍어둔다.

그는 독자들에게 “문학이란 불편하지만 나를 알 수 있게 해 주는 것”이라면서 “문학을 가까이하길 바란다”고 전했다. “요즘은 관계를 맺을 때 내게 이익이 되는지 여부를 많이 따지는 것 같아요. 그렇게 얻은 게 나를 행복하게 해 주나요? 결론이 무엇이건 그런 질문을 거치느냐 아니냐에 따라 인생이 굉장히 달라져요. 문학이 인간을 다양하게 해석하듯이, 유연하게 생각하고, 나와는 다른 존재에 관심을 갖고, 긴장과 탄력이 있는 질문을 던졌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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