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24일 서울 마포구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22 FIFA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예선 대한민국과 이란의 경기에서 손흥민이 득점 후 세레머니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지난 3월 24일 서울 마포구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22 FIFA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예선 대한민국과 이란의 경기에서 손흥민이 득점 후 세레머니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손흥민 선수가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짜릿한 멀티골을 기록하며 대한민국 선수로서는 처음으로 잉글랜드 프로축구 프리미어 리그(EPL)의 득점왕이 됐다. 이번 시즌 눈부신 활약을 선보인 손흥민 선수에 대해 이후 개별 선수 시상 가능성, 천문학적인 광고 등 가치에 대한 뉴스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곧 손흥민 선수가 출전할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평가전 암표 값은 실제 푯값보다 3~4배까지 뛰어올랐다.

손흥민 선수가 현재 소속팀인 토트넘으로 이적한 것은 2015년의 일이다. 2015년엔 손흥민 선수의 병역 문제가 채 해결되지 않았을 시기이다. 자칫하면 한창 주가가 올라가 있는 선수가 사지 멀쩡하게 단지 병역 문제로 시즌 2년을 통째로 날리게 될 수도 있는 상황. 축구선수로 병역특례를 받을 수 있는 대회는 월드컵, 올림픽, 아시안게임이 있지만 월드컵과 올림픽은 순위권에 들어가기엔 난이도가 높아서, 축구는 대체로 아시안게임에 목을 매게 된다. 누가 국가대표팀에 승선해 병역특례의 기회를 쟁취할 수 있을지도 엄청난 관심사다. 손흥민 선수는 2012년 런던 올림픽, 2014년 브라질 월드컵, 2016년 리우 올림픽을 거쳐 몇 번의 도전 끝에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 획득에 성공하며 병역 특례를 받았다.

병역특례 문제는 큰 스포츠 이벤트가 있을 때마다 매번 뜨거운 감자가 된다. 특히 야구와 같이 우리나라에서는 인기 종목이지만 국제무대에서의 위상 차이가 있는 종목은 ‘군대 빼기 쉽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대표팀 선발에 병역특례 목적으로 무임승차 한 것 아니냐는 자격 논란이 나오기도 하고, 다 같이 힘들게 운동하는 건 모든 선수가 마찬가지인데 병역법이 정한 기준에 충족하기 어려운 비인기 종목에서 종목 간 형평성 문제가 대두되기도 한다. 2020 도쿄올림픽에서 한국 육상 높이뛰기에서 사상 최고의 성적을 낸 우상혁 선수에 대해서는 아쉽게 4위에 머물자 우상혁 선수에게 병역특례를 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올라오기도 했다.

병역특례제도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국위선양의 목적으로 박정희 대통령 시절 생긴 제도이다. 당시만 해도 남북문제를 떠나 냉전 체제였기 때문에, 특히 올림픽과 같이 큰 규모의 국제 스포츠 대회는 동구권-서구권 사이의 체제 대결의 상징과도 같이 여겨지던 시절이었다. 스포츠를 통한 국위선양과 애국심 고취 효과, 정부와 체제의 선전 효과는 대단했다. 러시아, 중국과 같은 나라에서는 매우 최근까지도 국가가 개입한 도핑 의혹이 계속해서 나올 정도다.

그러나 시절은 변하고 엘리트 체육의 시스템도 바뀌고, 또 “두 유 노 000?”의 밈(meme)처럼 한국을 대표하는 이미지들이 체육을 넘어 대중문화까지 영역이 확대되자, 더 이상 현재 상태만으로 이 제도를 유지하는 것 자체가 어려워졌다. 누군가 메달을 딸 때마다, 아쉽게 탈락할 때마다, 병역특례의 목적으로 선수기용과 선발을 수상하게 할 때마다 유지할 것이냐 말 것이냐 확대할 것이냐 수없이 논란이 된 이 제도는 어떤 시점에서는 정부와 여론에 힘입어 ‘통 크게’ 적용되다가도, 어느 순간에는 한없이 엄격해지기도 했다. 이제는 순수예술만 예술이냐 문화창달과 국위선양의 목적이면 대중문화도 못지않다 까지 번져 나와, 여야 할 것 없이 제도에 대한 고찰 없이 대중문화예술인도 면제를 주겠다는 카드를 꺼내고 있고, 급기야 팬덤 사이에서의 “너네 오빠만 군대 안 가냐”의 문제로 격화돼 버렸다.

병역특례제도가 논란의 여지를 계속 가지고 있는 것은 본질적으로 우리나라 병역제도 자체가 시대를 반영하지 못한 채 개선 없이 꾸역꾸역 유지되고 있는 탓이 크다. 비단 예술체육요원 병역제도뿐이 아니다. 병역제도를 손보아야 한다는 논의 속에 등장하는 전문연구요원, 산업기술요원 등 ‘군대를 가지 않는’ 형태로 군 복무를 대신할 수 있는 제도는 항상 형평성과 공정성, 특혜에 대한 의혹을 받아왔다. 한편 이 복무가 마냥 특혜라고 해석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도 존재한다. 군 복무를 대신한다는 이유로 사업장이 근로기준법과 관련 법령을 무시하거나 미준수해도 제대로 된 문제제기를 할 수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복무기간이 기약 없이 늘 수도 있기 때문이다. 국가는 병역 형태로 값싼 노동 인력을 제공하고, 사업장이 병역의무자라는 신분을 이용해 맘껏 부릴 수 있다는 점은 군대나 회사나 마찬가지다.

징병제를 유지하고 있는 다른 나라들, 특히 유럽의 경우 병역특례로 논란에 휩싸이는 일이 거의 없다는 것도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병역 대신 선택할 수 있는 폭이 대단히 넓기 때문이다. 이들 국가는 대부분 대체복무제와 양심적 병역거부를 폭넓게 인정하고, 병역의 의무에 대한 시민의 책임의식이 국가 형성 초기부터 공고해왔으며, 징집률이 높지 않고, 병역수행자에 대한 기회와 경험제공의 효과가 크다. 이른바 군대 가도 억울하지도 않고, 군대를 안 갈 수 있다면 방법적으로 열려있는 경우의 수가 많다는 뜻이다. 병역특례를 얘기할 때 항상 공정성과 형평성의 얘기가 나오는 가장 본질적 이유는, 우리나라는 군 복무 자체를 정부도 국회도 당사자도 국민들도 모두 ‘억울한 상황’이라고 인식해버리는 것에 있다.

병역제도는 늘 국가와 군대, 공공기관, 사업장, 대학교 등 이해관계자의 묘한 이해관계 속해서, 정치계의 포퓰리즘적 공약으로 ‘달래기식’ 제도 개선만 반복하며 병역당사자들이 절대 신성한 국방의 의무에 대해 의심하지 않도록 교묘히 문제 자체를 가려왔기 때문에 1962년 병역법 전면개정 이후 단 한 번도 큰 틀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래서 우리는 ‘내새꾸와 우리 OPPA(오빠), 우리 선수님이 과연 군대를 안 갈 수 있을까’에만 골몰히 매달리며, 왜 모두가 군대를 가야하는 것이 상수인지에 대해서는 고민하지 않는 것이다. 공정이라는 단어는 일면 굉장히 정의로워 보이지만, 법과 원칙에 따라 공정이 그어둔 선과 규격을 벗어난 더 나은 상상하지 못하도록 만든다. 통치세력이 만든 착각인 셈이다. 누가 군대를 가네마네에 대해 공정과 형평의 문제를 떠나서, 과연 지금 우리가 다투고 있는 이 제도 자체가 잘못된 것 아닌가에 대한 고찰이 필요한 이유이다.

 *외부 필자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방혜린 전 군인권센터 활동가·예비역 대위
방혜린 전 군인권센터 활동가·예비역 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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