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비위로 징계성 처분 받고
시집서 전철 성추행 미화

시집 『가야 할 길이라면』에 실린 ‘전동차에서’라는 시에서 윤재순 비서관은 “전동차에서만은/짓궂은 사내아이들의 자유가/그래도 보장된 곳이기도 하지요”라며 대중교통에서의 성추행 범죄를 ‘사내아이들의 자유’로 묘사했다.
시집 『가야 할 길이라면』에 실린 ‘전동차에서’라는 시에서 윤재순 비서관은 “전동차에서만은/짓궂은 사내아이들의 자유가/그래도 보장된 곳이기도 하지요”라며 대중교통에서의 성추행 범죄를 ‘사내아이들의 자유’로 묘사했다.

대통령실 인사검증 시스템에 ‘젠더 감수성’ 항목은 없다. 유독 윤재순 총무비서관을 ‘엄호’하는 대통령실 기류를 지켜본 전문가들의 일갈이다. 윤석열 정부 초대 국무위원 후보자와 대통령실 고위공직자가 각종 의혹과 논란으로 낙마하고 있다. 하지만 윤 비서관만큼은 “공직 수행에 문제가 있을 만큼 심각한 문제라고 보지는 않는다”는 게 대통령실 전언이다. 윤 비서관도 일각의 사퇴 요구에 대해 “열심히 일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인다”며 일축했다.

윤 비서관을 둘러싼 논란은 크게 두 가지다. 먼저 윤 비서관은 검찰 재직 중이던 1996년과 2012년 성비위 사건으로 각각 인사 조치 및 감찰본부장 경고 처분을 받았다.

17일 국회 운영위원회에 출석한 윤 비서관은 이에 대해 “1996년도에 저는 어떠한 징계 처분을 받은 적이 없다”고 해명했다. 이어 “2012년도엔 격려금을 받고 생일이라 10명 남짓의 직원들에게 소위 말하는 ‘생일빵’(생일자를 장난스럽게 때리는 일)이라는 것을 당했다”며 “(한 직원이) ‘생일에 뭐 해줄까’라고 해서 화가 나서 ‘뽀뽀해주라’라고 했던 건 맞다. 볼에 해서 간 건 맞다”고 했다. 또 “당시에 조사받은 것도 아니고, 조사가 뒤에서 이뤄졌다. 10개월인가 1년 지나서 나온 게 감찰본부장 경고”라고 덧붙였다. 억울함.

또 다른 논란은 윤 비서관이 펴낸 시집에서 비롯됐다. 지난 2002년 펴낸 시집 『가야 할 길이라면』에 실린 ‘전동차에서’라는 시에서 윤 비서관은 “전동차에서만은/짓궂은 사내아이들의 자유가/그래도 보장된 곳이기도 하지요”라며 대중교통에서의 성추행 범죄를 ‘사내아이들의 자유’로 묘사했다. 이어 “풍만한 계집아이의 젖가슴을 밀쳐 보고/엉덩이를 살짝 만져 보기도 하고/그래도 말을 하지 못하는 계집아이는/슬며시 몸을 비틀고 얼굴을 붉히고만 있어요/다음 정거장을 기다릴 뿐/아무런 말이 없어요”라고 썼다.

같은 시집에 실린 시 ‘초경, 월경, 폐경’에는 여성의 월경을 두고 “나는 여자가 되었어/ 아이를 가질 수 있는 거야/누가 뭐래도 나는 여자야/흘러내리는 환희에 빛나는/순결/거룩한 고통이더라”고 묘사했다. 폐경에 대해서는 ‘선홍빛 매화꽃도 시들더라/그래도 그 때가 좋았다’ 등 여성을 대상화하는 표현을 담기도 했다.

2004년 출간한 ‘나는 하늘을 모른다’ 시집에 실은 시 ‘여의도의 곡소리’에서는 “(여의도는) 룸살롱에서 술 한잔하며 꽃값으로 수억 원을 주고받는 곳”이라고 썼다. 골프장을 소재로 한 ‘18홀과 36홀 그리고 54홀’에서는 ‘공을 쳐 내는 이유는 간단하다/숨겨진 구멍에 공을 넣기 위하여서다’ ‘즐기며 살아 보겠노라고 구멍을 좇고 또/좇는 것이다’ 등의 표현이 쓰였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언론 인터뷰에서 “윤 비서관이 20년 전에 쓴 시는 전반적으로 지하철 세태에 대해 비판적인 언어로 쓴 것이지 성추행을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두둔했다. 김대기 대통령실 비서실장도 “그런 행위에 대해서는 이미 대가를 다 받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윤 비서관은 국민들에게 충분히 사과하고 업무에 임해야 한다”고 했다. 이 대표의 말대로 윤 비서관은 자신의 행동에 대한 반성 없이 “불쾌했다면 사과한다”며 떠밀리듯 고개를 숙였다. 총무비서관은 대통령실의 재무와 인사업무를 책임진다. 성희롱·성폭력 예방지침에는 조직의 인사업무를 담당하는 부서에서 성희롱·성폭력 예방을 위한 업무의 처리와 소속 구성원의 성희롱·성폭력 관련 고충에 대한 상담·처리를 하도록 돼 있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은 “성희롱·성추행 전력이 있고 왜곡된 성 인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이러한 업무를 총괄하는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며 윤 비서관의 사퇴를 촉구했다.

권수현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대표는 “한국 사회의 공통 윤리 규범이 사실상 젠더 관점을 포함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공직자의 왜곡된 성 인식이 전혀 문제되지 않고 있다”며 “특히 참모진의 잇따른 사퇴가 정권 초기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정치적인 고려가 크게 작동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정권이 정치적인 지향을 달성하기 위해 사람을 선택할 때, 능력과 자질을 검증하면서도 그 안에 성평등 의식은 우선순위에 포함되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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