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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나 지하철에서 어르신들과 자리 양보에 얽힌 이야기를 다들 한두 가지쯤은 알고 있을 것이다. 물론 직접 겪은 일도 있을 것이다. 나는 아주 가끔 복잡한 차 안에 어르신이 서 계시고 앉아 있는 젊은 사람들이 미처 그분을 보지 못하면 “여기 어르신 서 계신데 자리 양보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하며 용기를 내서 말할 때가 있다. 당연한 일이기는 해도 여러 사람 있는 데서 그런 말을 하기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물론 이럴 때 화를 내거나, '당신이 뭔데' 하는 표정으로 못마땅하게 위아래를 훑어보는 사람은 아직 한 명도 없었다.

그 날은 노인대학에 강의가 있어 나선 길이었다. 몇 정거장 가지 않아도 되기에 지하철 문 가까이에 서 있는데 6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자 분이 껌을 짝짝 씹으면서 차에 오르셨다. 내 옆에 자리를 잡자마자 다짜고짜 “애고고” 소리를 하시는 것이었다. '겉보기에는 건강해 보이시는데 어디 편찮으신가, 차라리 노약자 보호석 쪽으로 가셨으면 좋았을걸' 하는데,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유머 한 토막이 떠올랐다. 할머니나 아줌마가 차에 올라타 자리를 찾는 유형이 네 가지 있단다. 먼저, 들고 있던 가방을 빈 자리에 던져 자리를 확보하는 농구선수형. 그 다음은 웅변가형으로 자리가 눈에 띄면 큰 소리로 “저기 자리 있다!”를 외쳐 입으로 맡아놓는 것이다. 또 하나는 굴착기형인데 지하철 좌석에 조금이라도 틈이 보이면 일단 엉덩이부터 들이민다. 일곱 명 앉는 좌석이 늘어날 리 없으니 결국 다른 사람이 일어나고 만다. 마지막으로는 신음형.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하며 “애고고, 다리야. 이래서 늙으면 나다니지 말아야지…” 끊임없이 혼자 소리를 한다. 그러면 누군가 반드시 일어나고야 만다나.

앞에 앉은 사람들을 보니 다들 눈을 감고 있다. 자리 양보를 부탁해? 말아? 잠시 갈등을 하고 있는데, 그분이 큰소리로 말씀하신다.

“다들 자는 척하고 있는 걸 보니 자리 양보받기는 다 틀렸네”

너무도 기세등등하다. 한 자리 건너에 앉았던 청년이 눈을 번쩍 뜨더니 벌떡 일어선다. 고맙다며 그 자리에 가서 앉으시면 될 것을, 그 옆에 앉은 사람을 툭툭 치며 “아가씨가 옆으로 좀 가. 내가 가장자리에 앉게”. 이미 근처에 있는 사람들은 알아 차렸다. 그 어르신이 지나치게 무례하고 경우가 없다는 것을. 그분 바로 앞에 선 내가 참다못해 최대한 상냥한 목소리에 웃음을 담아 말씀드린다. “다리 아프시면 양보 좀 해달라고 하시면 되지, 젊은 사람들도 피곤해서 눈감고 있을 수 있잖아요”하니, 곧바로 쏘아붙이신다.

“그런 도덕군자 같은 소리 하지도 마. 일어나기 싫으니까 눈감고 자는 척하고 있는 거 모를 줄 알고.”

주위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듯 혀를 차며 고개를 돌려버리고, 아, 그때 나의 심정을 무어라 표현할까. 말을 더 섞어봤자 봉변당할 일밖에 없는 것 같아 나는 쓰게 웃으며 입을 닫아버리고, 그분의 짝짝 껌 씹는 소리만 더 높아진다. 어르신들께 가서 젊은 사람들과 잘 지내는 법, 가족과 마음을 열고 대화하는 방법, 생활 속의 예절을 백날 강의하면 뭐 하나 싶다. 젊은 사람을 멀리 멀리 쫓아보내는 저런 어르신이 계시는데. 지하철에서 내려 노인대학을 찾아가는 내 발걸음이 그렇게 무거울 수가 없었다.

노년의 당당함은 무조건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 아니다. 다른 사람의 처지를 생각해주는 너그러움이 없는 노년이야말로, 누구도 닮고 싶지 않은 노년의 모습이다. 성숙함이란 거창한 것이 아닌, 생활 속에서 배어 나오는 향기와 같은 것. 그 날 나는 비록 그 어르신께 직접 말씀드리지는 못했지만, 수도 없이 입 속에 말을 했다.

“어르신, 제발 좀 그러지 마세요. 네?”

유경

treeappl@hanmail.net

사회복지사, 어르신사랑연구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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