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의 상처와 트라우마에서 벗어나려면
‘뭐가 잘못 됐나’ 대신 ‘무슨 일이 있었나’ 물어야
용서란 “만약에 어땠더라면”을 포기하는 것
오프라, ‘당신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요’ 출간

오프라 윈프리
오프라 윈프리

“어렸을 때 저는 자주 매를 맞았습니다. ...지극히 사소한 이유로 맞았습니다. 물을 쏟았다고, 유리를 깼다고, 조용히 있지 못한다고. ...매를 맞다가 서 있지도 못할 지경이 되면 할머니는 제게 ‘얼굴에서 그 뾰로통함을 싹 지우고 미소를 지으라’고 명령했어요.”

미국의 방송인이자 경영인인 오프라 윈프리(68)의 고백이다. 얘기는 이어진다. “그 조건화된 순종의 패턴, 깊이 뿌리 내린 트라우마는 이후 40년간 제 모든 관계와 결정을 지배했지요. 저는 삶의 대부분을 남들 비위 맞추기의 달인으로 살았습니다. 다른 방식으로 양육됐다면 남에게 경계선을 긋고 ‘안돼’라고 말하는데 반평생이나 걸리진 않았을 거예요.”

오프라 윈프리(1954~)는 ‘방송계의 살아 있는 전설’로 불리는 흑인 여성이다. 1986년부터 25년간 전세계 140여 개국 사람들이 시청한 ‘오프라 윈프리 쇼’의 진행자이자 제작자였고, 2004년 UN이 주는 ‘올해의 지도자상’을 받았다. 2005년 타임지 선정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100대 인물로 선정됐고, 2007년엔 포브스의 역대 미국 여성부자 10인에 선정됐다.

지금도 트위터 팔로워만 4300만명이 넘고, “나는 부자”를 입에 달고 사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보다 공식재산이 많다고 알려져 있다. 이런 오프라 윈프리인데도 어린 시절 트라우마를 극복하는데 40년이 걸렸다고 털어놓은 것이다.

오프라의 어린 시절은 끔찍함 그 자체였다. 사생아로 태어나 서너 살 때부터 외할머니에게 걸핏하면 피가 나도록 맞고, 먹고 살기 바빴던 엄마에게 방치돼 9살 때 사촌으로부터 성폭행 당했다. 심지어 14살 때 어린 몸으로 조산한 아기가 2주만에 사망하는 일까지 겪었다.

방송 일도 처음부터 순탄했던 건 아니었다. 라디오 진행자를 거쳐 TV앵커를 맡았으나 방송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평에 따라 낙마했다. 낮시간대 토크쇼를 진행하고서야 비로소 진가를 인정받았다.

참혹한 어린 시절을 딛고 홀로 우뚝 섬으로써 ‘오프라히즘’(인생의 성공은 타인이 아닌 자신에게 달렸다)이란 말을 만들어낸 오프라 윈프리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트라우마 극복기를 내놨다. 아동정신과 의사 브루스 D 페리와 30여년 동안 교류하며 나눈 얘기를 정리한 ‘당신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요’(정지인 옮김, 부·키)가 그것.

오프라 윈프리 & 브루스 D 페리 지음 '당신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요' 표지
오프라 윈프리 & 브루스 D 페리 지음 '당신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요' 표지

두 사람이 주고 받는 대화 식으로 구성한 책 앞머리에 오프라는 이렇게 적었다. “내 인생의 딸과 같은 존재들, 자기 날개는 부러졌다고 믿었던 소녀들에게. 너희에게 품은 나의 희망은 그냥 나는 것이 아니라 높이 날아 오르는 것이란다.”

‘소녀들에게’라고 했지만 책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한다. 부제는 ‘내면의 상처와 트라우마로부터 벗어나는 열 번의 대화’. 페리 박사에 따르면 18세 이하 아이들 중 40%가 어떤 종류든 트라우마를 갖고 있다. 오프라와 페리 박사는 사람들 가슴 깊숙이 자리잡은 상처와 트라우마를 떨쳐내는 법을 세세하게 짚었다.

“가슴 속 트라우마에서 벗어나려면 도대체 뭐가 잘못 됐나가 아니라 무슨 일이 있었나를 물어야 합니다. 가슴에 쌓인 트라우마를 둘러싼 겹겹의 층을 벗겨내고 과거가 지닌 날것의 진실을 드러내는 데엔 용기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바로 그 지점에서 치유가 시작됩니다.”

오프라는 “페리 박사의 연구 결과 사람의 뇌는 놀라운 적응력을 발휘한다”며 따라서 “무슨 일이 일어났든 대본을 고쳐 쓸 기회는 있다”고 강조한다. 역경· 실망· 상실· 트라우마는 견디기 힘든 한편으로 타인의 감정에 이입할 수 있는 능력과 지혜로와질 수 있는 역량을 키운다는 것이다. 그는 이것을 ‘외상 후 지혜’라고 명명했다.

“역경을 이겨낸 사람에겐 인생의 어느 시점엔가 그 경험을 되돌아보고 성찰하고, 거기서 배우고 성장할 수 있는 때가 옵니다. 과거에 어떤 일이 있었든 지금 여기 살아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치 있는 존재라는 것을 꼭 기억하세요. 몸과 마음 모두 건강해지는 일은 가능합니다. 한번에 한 걸음씩 이뤄집니다.”

오프라는 ‘용서란 과거가 달랐을 수도 있었을 거라는 바람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자신의 경우 ‘실제 엄마와 갖고 싶었던 어머니상을 비교하지 않게 됐을 때 평화로운 마음으로 어머니를 받아 들일 수 있었다고도 털어놨다. 과거에 어떠해야 했고 어떨 수 있었는데라는 생각에 집착하는 걸 그만두고, 실제로 어떠했는지 장차 어떨 수 있을지로 생각을 돌려야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는 얘기다.

그는 또 트라우마에서 벗어나는 방법의 하나로 음악· 웃음· 춤· 뜨개질· 요리 등 위안을 주는 일  찾기를 꼽았다. 집중할 수 있는 일은 마음과 정신을 조절해줄 뿐 아니라 자기 안의 선함과 세상의 선함에 열린 자세를 유지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주장이다. 그러면서 거듭 힘주어 말한다.

“당신에게 일어난 모든 일은 당신을 위해 일어난 일이기도 하다는 게 사실이에요. 그 모든 시간, 모든 순간에 당신은 힘을 키우고 있었던 겁니다. 당신에게 일어난 일은 당신의 역량이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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