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 너는 생각보다 강하단다』
매기 다운스 지음, 강유리 옮김, 메이븐

세상을 떠난 엄마를 애도하는 특별한 방식, 세계여행

『딸아, 너는 생각보다 강하단다』 매기 다운스 지음, 강유리 옮김, 메이븐
『딸아, 너는 생각보다 강하단다』 매기 다운스 지음, 강유리 옮김, 메이븐

애도(哀悼)는 슬픔이란 감정 이상이다. 우리 곁을 떠난 존재에 대한 상실감은 때로는 죄책감으로, 때로는 분노로 우리를 덮친다. 상실을 부인하면서 제대로 된 애도를 경험하지 못하면, 그 상실은 괴물이 되어 우리를 망가뜨리기도 한다. 작가 김형경은 애도하지 못한 슬픔의 감정들이 우리 삶에 어떤 결과를 남기는지 잘 알려줬고(『좋은 이별』) 프로이트는 애도를 “사랑하는 대상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현실 앞에서, 그 대상에 투자되었던 모든 리비도(욕망)를 철회하려는 고통스런 노동”이라고 정의했다.

그렇다. 애도는 노동이다. 사랑하고 미워했던 대상일수록 슬픔의, 분노의, 막막한 절망의 감정이 더 크게 나타난다. 그래서 애도는 실제로 우리가 속속들이 슬픔을 느끼고, 결국은 이를 받아들이며 그와 함께 살아가기로 하는 실천이다.

애도의 행동으로 많이 나타나는 것이 글쓰기다. 프랑스 기호학자 롤랑 바르트는 84세로 세상을 떠난 어머니를 잃고 ‘애도일기(Mourning Diary)’를 썼다. “오늘, 눈이 더 내림. 라디오에서 나오는 독일 가곡. 아파서 학교에 안 갔던 날의 아침들이 떠오른다. 온종일 엄마와 함께 있어서 신났던 날들.” 현대의 신화를 읽는 방법을 만들어낸 위대한 지식인이 2년 동안 쓴 메모에서 그는 철저히 엄마의 아들로 나타난다. 그것이 자신의 슬픔을 되새기는 방법이었다.

『딸아, 너는 생각보다 강하단다』를 쓴 매기 다운스는 10년 간 알츠하이머를 앓은 어머니를 떠나보내며 또 다른 방식의 애도를 실천했다. 어머니의 알츠하이머가 악화되어 몇 년째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을 때, 그는 지역 신문기자를 그만두고 남자 친구와 결혼을 한 뒤 세계 여행을 떠난다. 어머니를 잃게 된다는 불안과 어머니의 발병에 유전적 이유가 있다는 공포에 맞서 더 큰 불확실성의 세계로 들어간 것이다. “내가 이 여행에 나선 이유는 엄마의 버킷리스트를 대신 완성하겠다는 뜻이 있었지만, 병 자체에 맞서는 것도 컸다.”

신혼여행을 겸한 마추픽추 트레킹을 마친 뒤 새 신랑은 미국으로 돌아가고, 그는 혼자만의 세계 일주를 시작했다. 첫 여행지인 볼리비아의 한 야생동물 보호구역에서 원숭이에게 물리고 말도 안 통하는 수의사가 상처를 봉합해주는 사건을 통해 그는 “인생의 모든 일에는 갑작스런 일면이 있는 게 아닌가 싶다”며 “엄마의 병이 어디선가 불쑥 나타나 우리 가족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지만 어쩌면 그게 인생 아닐까” 생각한다.

저자 매기 다운스. 사진=Maggie Downs 트위터
저자 매기 다운스. 사진=Maggie Downs 트위터

“딸아, 너는 생각보다 강하단다”고 엄마는 어린 시절 저자에게 말했다. 학교에서, 일상에서, 두려움에 주저할 때마다 엄마의 말은 딸에게 힘이 되었다. 저자가 아마존과 남미, 아프리카 오지를 여행하기로 한 것도 엄마와 함께 읽었던 <내셔널지오그래픽> 잡지의 기억 때문이었다. 가난한 이민자 소녀였던 엄마는 세계 곳곳을 책으로만 여행했다. 그 엄마가 알츠하이머로 무너져 내리는 것을 보고 딸은 엄마가 마음만 먹고 실천하지 못했던 길을 나섰다.

남미와 아프리카를 거쳐 이집트에 가 있는 동안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잠시 귀국해 장례를 치르고 다시 여행을 시작한 그에게 어느 날 밤 갑자기 생각이 튀어 올랐다. “엄마의 인생이 내가 넘겨짚었던 것처럼 지루하고 생기 없는 여정이 아니었다면?” 엄마가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목표는 자기가 마음대로 생각해낸 것이라는 깨달음이었다. “엄마가 세상 구경보다 더 원했던 것은 내 곁에 함께 있어주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순간, 처음으로 슬픔이 가셨다. 다음 여행지 태국에서는 코끼리 보호소에서 일했다. “엄마가 유독 코끼리를 좋아했기 때문”이었다. 그곳에서 만난 ‘엄마’ 코끼리 조키아는 거친 벌목 노동에서 자신이 낳은 아기 코끼리를 잃고 슬픔에 빠졌다가 두 눈을 잃는 학대 끝에 구조되어왔다. 그는 조키아를 “엄마에게 이야기해 줄 수 있으면 좋겠다”며, 아픔 뒤에 삶이 어떻게 다시 시작될 수 있는지 보여주었다고 말한다. (7년 후 저자가 아들과 함께 다시 찾아갔을 때 조키아는 놀랍게도 저자를 기억한다!!)

번잡한 프놈펜 시내에서 길 잃은 노인을 도와주며 저자는 “엄마에게도 비슷한 도움을 준 사람들이 있었다”고 기억한다. 식품점 계산대에서 엄마 대신 돈을 세어주고, 주차장에서 차를 찾아주고, 집에 데려다주었다. 알츠하이머 환자들이 해 질 무렵이나 밤늦은 시간 불안과 혼란을 겪는 ‘일몰증후군’을 설명하며, 이들이 집을 나가 실종되는 어려움을 일깨운다. 수백 년 전 캄보디아 왕국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앙코르와트에서 저자는 “사람들은 기억 너머로 사라졌을지 몰라도 그들을 구성했던 물질은 지금 내가 숨 쉬고 있는 이 세상에 남아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저자는 여정의 마지막에 서울에 들러 ‘통통한 김치 만두’를 먹고 비무장지대를 돌아본 뒤 자기 나라로 돌아갔다. 직장도 없고 남편도 낯설었지만, 그는 “예전 같으면 도망부터 갔을 테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고 말한다. “나는 슬픔을 겪으며 단단해졌다. 엄마의 말처럼 나는 생각보다 강한 사람이니까.” 그는 아들 이름을 에버레스트(영원)라고 지었다. 나는 그 이름을 보면서 저자가 여전히 엄마를 잃은 상처 속에 있다고 생각한다. 나라면, ‘시한부’ 엄마를 두고 세계여행을 떠났을까? 나를 알아보지 못한다 해도, 한 번이라도 더 엄마 손을 붙잡기 위해 그 곁에 남았을까? 아마도 나는 남았을 것 같다. 하지만 정답은 없다.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상실의 고통을 마주하고(혹은 피하고), 애도의 시간을 가질 것이다. 엄마가 딸에게 줄 수 있는 것은 그 애도를 실천해 낼 몸과 마음의 힘일 것이다. “너는 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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