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1일 7시간 수면을 기준으로 할 때 성인이 하루에 내리는 결정은 대략 3만5,000개에 이른다고 한다. 깨어 있는 17시간동안 1시간에 대략 2,000개가 넘는 결정을 내리는 셈이고, 이는 2초당 1개씩에 해당한다. 예를 들어 보면, 잠자리에서 눈을 뜨자마자 바로 일어날 것인지, 조금 더 침대에서 누워 있을 것인지, 아침은 무엇을 먹을 것인지, 입고 나갈 옷은 무엇을 골라야 할지, 향수는 어떤 냄새를 선택할 것인지, 택시를 타고 갈 것인지, 대중교통을 이용할 것인지, 계단으로 걸어갈 것인지, 자동승강기를 탈 것인지 등 매 순간마다 엄청난 양의 선택과 결정을 해야 한다. 무엇을 할 것인지도 결정에 중요하지만, 정도와 양, 뉘앙스에 대한 선택까지 포함하면 무언가 결정할 때 컴퓨터나 핸드폰과 같이 동시에 멀티태스킹을 수행하는 것과 버금가는 스트레스가 동반된다. 

매 순간의 선택이 어떨 때는 인생에서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예기치 못했던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친구와 함께 내키지 않은 여행을 떠났다가 운명적으로 이상형을 만난다거나, 오랜만에 백화점을 방문했는데 1000만 번째 방문객으로 선정되어 근사한 스카이 라운지 뷔페를 체험하는 경우라던가, 우연히 길거리에서 쓰러져 있던 행인을 도와줘 생명을 살린다든가 하는 순간의 결정은 예상치도 못한 긍정적인 결과를 맺기도 한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꽃샘추위가 찾아올 것이라는 일기예보를 무시하고 가벼운 옷차림으로 나갔다가 혹독한 감기에 걸려 고생을 한다거나, 갑자기 입맛이 댕겨 생각에도 없던 음식을 먹고 배탈이 난다거나, 평소 타던 버스 대신 약속시간에 늦어 택시를 탔다가 교통사고가 난다 던가 하는 예상치도 못했던 결과로 낭패를 볼 때도 있다. 모두 결정의 결과가 초래한 일들이다. 그런데 이러한 결과들은 상황에 따른 순간적이며 우발적인 결정에 좌우된다는 공통점이 있다. 오랫동안 잘 준비되고 예상치 못했던 결과가 나오지 않는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다양한 성공과 실패의 경험은 최선의 선택에 중요한 판단 근거가 된다. 좋은 습관을 만들고, 예외를 두지 않고 일정한 규칙과 자신의 철칙을 바탕으로 행동하려고 노력하려 한다. 그래야 실패의 확률은 낮아지고 최고의 선택을 하게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제도화와 규칙화의 원리다. 정치행태이론이나, 게임이론, 그리고 구성주의,  후기구조주의, 신제도주의 등 대다수 정치학 이론에서도 개인의 반복된 결정과 그 결정의 연관성 속에서 규칙성, 효용, 의미, 실존적 맥락, 경로의존 등의 틀과 조건을 찾아내고자 한다. 선택과 결정에 대한 관심은 공적인 영역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그 중에서도 국가통치자나 정치엘리트들의 선택은 국가에 엄청난 파장을 일으킨다.

링컨 대통령이 남부연방을 결성한 13개주와 비록 전쟁을 치루는 엄청나 대가는 치뤘지만 남북통합을 끝까지 주장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미국은 어떻게 되었을까? 1차대전과 2차대전 때 영국이 집요하게 요청한 참전을 당시 미국의 윌슨과 루스벨트 대통령이 끝까지 응하지 않았다면 유럽과 세계의 역사는 지금 어떻게 바뀌었을까? 남아공 만델라 대통령이 자신을 고문하고 강제노동을 시키며 인권을 유린한 백인들에게 똑같이 되갚음을 해줬다면 남아공의 민주주의는 지금쯤 어떻게 되어 있을까?

국가의 발전방향은 지도자의 선택과 결정에 따라 좌우된다. 이들의 결정은 자의적 선택이었을까, 아니면 계산되고 철저하게 준비된 선택이었을까? 당연히 후자일 것이다. 한 나라의 역사적 운명을 좌우하는 결정이기에 제도적 절차에 따라 국민의 의견을 들어보고, 국민이 동의가 충분하지 않을 때는 설득을 위해 결정을 유보하기 것도 필요하다. 루스벨트는 2차대전 때 유럽의 전쟁에 휘말리는 것을 꺼려하는 국민들을 설득하기 위해 29번의 라디오 연설을 통해 꾸준히 소통하고 설명하는 노력을 통해 참전을 호소했을 때  절대적 지지를 이끌어 냈다. 빠른 결정과 추진은 반드시 실패하게 되어 있다. 성공한 선택에는 대의의 실현이라는 공통점을 갖는다. 

링컨과 만델라가 역사의 최고지도자로 인정받는 이유는 만민평등과 인간해방, 그리고 용서와 화해를 통한 국민통합이라는 대의를 실현하기 위한 용기와 실천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역사는 국가의 통합과 구성원간의 일체감, 기본행복권과 인간의 존엄성, 자유와 평화의 유지와 번영이라는 대의적 목표의 실현을 위한 정치행위 일 때만 긍정적 평가를 내려준다. 자신들을 지지하는 일부세력, 자신의 보호막을 치기 위한 정치행위는 어떠한 대의명분을 들여 대도 역사는 준엄함 심판을 내리게 되어 있다. 

’국민을 위한 선택’이나 ’국가를 위한 최선책’이라는 레토릭은 이제 통하지 않는다. 그 반대의 효과만 낼 뿐이다. 양치기 소년이 재미 삼아 외친 늑대출몰놀이에 더 이상 현혹되는 국민은 없을 듯 싶다. 1846년 영국토리당, 1924년 영국 자유당, 1854년 미국 휘그당의 기득권 세력들의 그릇된 판단으로 근대 민주정당제로 전환했던 영국과 미국처럼 자신의 권력보호에만 급급하는 정치세력들의 자의적 선택의 종말은 예외가 없을 듯 싶다.

최연혁 스웨덴 린네대 정치학과 교수 ⓒ여성신문
최연혁 스웨덴 린네대 정치학과 교수 ⓒ여성신문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