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당선자는 지난 1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병사 월급 200만원을 공약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페이스북 캡처
윤석열 당선자는 지난 1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병사 월급 200만원을 공약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 페이스북 캡처

헌정 이후 유례없는 ‘젠더 격돌’의 20대 대선이 끝이 났고, 당선자는 이제 대선 동안 쏟아낸 공약을 수습해야 한다. 선거에는 늘 포퓰리즘 공약이 나오기 마련이지만, 당선자와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진짜로 진지하게 검토하는 것인가 싶은 것도 있다. 숱한 국방 현안과 이슈를 물리치고 당당히 공약으로 자리 잡아 살아남은 그것, 바로 ‘병사 월급 200만원’에 대한 이야기다.

병사 월급 인상에 대하여서는 윤석열 당선자 외에도 이재명, 심상정 등 주요 대선 주자들이 모두 공통적으로 내놓은 공약이었다. 우선 다행이다 싶은 것은, 공약을 꺼낸 의도와 목적이 어찌 되었건 징집병의 복무 대가가 지나치게 저평가돼있다는 공감대가 후보들 사이에서 공통적으로 형성되었다는 점이다. 문재인 정부 시기부터 큰 폭으로 상향된 병사 월급은 병장 기준 현재 67만 6100원이다. 박근혜 정부와 비교했을 때 50만원 가까이 상승이 있었지만, 여전히 최저 임금 수준에는 턱없이 모자라다.

한편 우려되는 점은 한 두 가지가 아니다. 가장 먼저는 실현 가능성이다. 윤 당선자가 1월 10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보자. 윤 당선자는 “현재 병사 봉급은 연간 2조 1000억원이 소요된다. 최저임금으로 보장할 경우, 지금보다 5조 1000억원이 더 필요하다”면서 재원 확보에 대해서는 “지난 4년간 한 해 예산이 무려 200조나 늘었음에도, 국민이 체감하는 삶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곳에 쓴 예산을 삭감하고”라며 세출 구조조정을 통해 재원 확보가 불가능하지 않다는 투로 설명한다.

그러나 너무 당연하게도, 병사 월급이 200만원으로 인상되면 당연히 군인 전체 월급에 대한 인상이 고려될 수밖에 없다. 2022년 기준 하사 1호봉의 경우 본봉 약 170만원, 장교인 소위도 175만원 수준인데 군인 월급은 공무원 봉급체계에 들어가 있어 만일 병사 월급 인상에 맞춰 임금이 조정된다면 전체 공무원 월급의 조정도 동반될 수밖에 없다. 벌써 공무원 노조가 입장을 내고 있지 않은가. 소방노조와 경찰직장협의회는 임금 동반 인상에 대해 매우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새는 돈 3조를 어디선가 확보해 와서 병사월급에 넣는 단순한 계산 방식으로는 이 문제를 해결될 수 없다.

그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병사라는 지위에 관한 문제다. 다시 윤 당선자의 글로 돌아가서 그는 “병사들은 국가에 대한 의무로 자신들의 시간과 삶을 국가에 바치고 있다”며 “국가안보를 위해 개인의 희생이 불가피할 때 그 희생에 대한 적절한 보상을 제대로 설계하는 것은 국가의 기본적인 역할”이라고 강조한다. 그런데 국가에 대한 의무로 삶과 시간을 바치는 것은 군인 전체, 나아가 공무원 전체가 그런 것 아닌가? 전시 대비를 하는 것은 군인만 그러한가? 직업 군인의 희생은 당연하고 징집병사의 희생은 값을 쳐줘야 하는 부분인가? 그렇다면 병사는 공무원인가? 희생의 대가로 200만원은 적절한가? 질문은 꼬리를 물고 계속된다.

당초 월급 200만원이 고려됐던 것은 모병제로의 전환을 준비하고자 하는 차원에서의 병사 계급의 직업군인화 과정에서였다. 그러나 선거를 거치며 그 맥락은 사라진 채 월급만 올리겠다는 공약만 덩그러니 남은 것이다. 사실 월급 인상에 들어가는 돈은 부차적인 문제다. 가장 시급하면서도 당선자가 전혀 고려치 않고 있는 문제는 2030년 이후로는 현재 수준의 병력 자체를 유지하지 못한다는 것에 있다. 어떤 식으로든 병력감축과 병역제도의 대대적 개편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지금도 80퍼센트 수준의 징집율을 유지하며 간신히 버티는 와중에 단순히 20대 남성들의 민심을 잡겠다는 목적으로 월급만 덜렁 올리는 것은 이후의 일과 부담은 덮어둔 채 돈만 쓰는 격이다. 당선자가 그렇게 지적한 ‘허튼 곳에 돈쓰는 일’ 말이다.

한편 병사들이 월급을 ‘최저임금’ 수준 혹은 그 이상인 200만원으로 받게 되면, 그때부터 병사들의 근로자성에 대한 문제가 따라올 수 밖에 없다. 병사들은 징병제라는 제도를 통해 군대에서 묘한 위치를 점해왔다. 병사들은 군인으로서 정도는 다를지언정 임무를 수행하고, 잘못하면 행정처분으로 징계도 받는다. 월급도 국가로부터 받는다. 그러나 공무원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공무원이 아니기 때문에 업무상 책임을 지지는 않는다. 병사들은 오랜 세월 징집을 통해 군에 인력을 제공하고 소모품마냥 사용되다 전역하기 일쑤였다. 그러나 어떤 면에서는 군을 그저 거쳐 가는, 책임이 없는 신분과 말도 안 되게 낮은 월급을 받는단 이유로 많은 점에서 자유롭고, 일면 이해받는 점도 있었음은 부정할 수 없다.

근로자성을 가지게 되면 문제가 달라진다. 200만원의 책임과 더불어, 시간과 노력을 조직을 위해 투자할 것을 요구받을 것이다. 합리적인 대가를 받는 대신 병사라는 독특한 위치에서 이해받거나 혹은 무시할 수 있었던 것, 병사들의 가장 큰 무기였던 “끌려온 불쌍한 존재”라는 이미지는 삭제된다. 그런데 징집된 병사들에게 이런 역할을 부여해도 되는 것인가? 그럼 병사들의 법적인 지위는 어떻게 부여해야 하는가? 질문에 대한 답을 당선자는 고민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당선자와 인수위가 반드시 유념해야 할 것은, 병사들의 월급인상은 단지 월급인상의 문제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반세기 동안 유지해온 징집제에 대한 대폭적인 개편과, 병역제도의 변화에 따른 군 구조 개편과, 이에 따른 군 계획의 변화, 공무원 전체의 임금 및 보수 문제, 이 논의에서 소외된 상태로 있는 비남성과 장애인 등 병역을 이행하지 않는 그룹과의 사회적 갈등, 따라올 과제가 산더미다. 그리고 이 중 일부는 이미 현재진행형의 문제이자 지금 해결하고 고쳐나가지 않으면 불과 몇 년 뒤의 부담으로 들이닥칠 것이다.

방혜린 전 군인권센터 활동가·예비역 대위
방혜린 전 군인권센터 활동가·예비역 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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