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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김민정

서울시립대 교수

‘13%’가 ‘30%’ 교두보 되길

17대 총선이 끝났다. 이번 총선은 여러 가지로 의미가 많지만 특히 여성의 정치참여라는 측면에서 큰 의미를 가진다. 여성의 정치참여 문제가 정치에서 중요한 의제로 논의되기 시작한 것은 2003년 정치관계법개정이 논의되면서였다. 비례대표 50%, 지역구 30% 할당이 구체적으로 논의되면서 17대 국회는 여성정치 원년이 될 것이라고 기대에 부풀었었다. 그러나 2003년 가을에 접어들면서 이라크파병문제, 정치자금 문제등 굵직한 정치사안이 쟁점으로 떠오르면서 여성의 정치참여는 수면밑으로 가라앉았고 2004년 3월 정국이 탄핵문제로 휩싸이면서 여성의 정치참여문제는 표류하였다. 그러다가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어려워진 정치적 입지를 풀기 위해서 여성대표 및 여성 선대위원장을 내세웠고 일각에서는 비판도 나타났지만 정치에서 여성이 다시 중요한 잇슈로 등장하는 계기가 되었고 17대 총선을 치뤘다.

여성의원 전세계 평균 근접

결과적으로 여성국회의원의 수는 괄목할 정도로 증가하였다. 16대 국회에서 비례대표 10명, 지역구 5명이어서 5.9%였는데 이번 총선을 통해서 전체 299석 가운데 여성의원이 39석을 차지함으로써 13%로서 아시아지역 여성의원평균인 14.9%에 근접하게 되었으며 전세계평균인 15.3%에도 가까워졌다. 5.9%가 될 때까지 50년이 걸렸다면 그 2배가 되는데에는 4년이 걸린 셈으로 숫적인 증가라는 점에서 괄목한 발전이다.

‘왜 여성확대인가’ 정의 필요,/b>

두 번째는 이번 총선과정에서 우리는 여성의 정치참여라는 것자체에 대해 정리가 필요함을 알게 되었다. 그동안 여성의 정치참여를 주장해왔던 여성계는 탄핵정국을 거치면서 무조건 여성의 수만 증가시키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게 되었고 어떤 여성이 증가되어야하는지에 대한 정리가 필요하다는 생각하게 되었다. 이 문제는 이미 서구사회에서 여성문제가 정치적 의제가 되면서부터 나타났던 오래된 논쟁이었는데 한국에서는 이제야 나타나 오히려 때 늦은 감이 있다. 서구 페미니스트들은 막시스트 페미니스트와 자유주의계열의 페미니스트가 비교적 분명하게 나누어져있다. 막시스트 페미니스트는 사회의 주된 갈등을 유산자와 무산자의 갈등으로 보는데 남녀의 갈등이 이 사회적 기본갈등에 포함되는지 아니면 또다른 궤적을 가지는 갈등인지 어정쩡한 입장을 취하다, 결국에는 자본주의가 남성지배구조를 영속화시키는 도구가 된다고 함으로써 남녀문제를 유산자와 무산자 갈등의 하부개념으로 정리하였다. 이렇다보니 자본주의를 인정하고 여성문제를 논의하는 자유주의적 페미니스트와 의견을 같이 할 수 있는 접점을 공유하지 못하였다. 한국에서는 정치개혁 혹은 민주라고 하는 중대한 정치적 의제의 하부개념으로 여성의 정치참여확대를 보아야할지 아니면 민주나 정치개혁과 다른 전개를 가진 또 다른 중대한 의제라고 보아야하는지에 대한 정리가 필요하다. 이런 점을 외면한 채 어정쩡한 상태로 진행되었던 일련의 연대운동은 나름대로 의미는 있었지만 이번의 경험을 토대로 입장의 정리가 있어야 할 것이다.

‘남성 대타’ 출전 정치 홈런을

세 번째는 여성이 정치에 등장하는 상황에 대한 것이다. 이번 선거에서 유권자는 기존정치인을 찍지 않고 정치신인, 전문가, 여성을 택했다. 그것은 기존 정치에 대한 실망의 반사작용이었다. 여성대표나 여성선대위원장의 등장도 기존의 남성정치인들에게서 대안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여성의 등장은 기존 정치에 균열이 발생할 때 그 틈새를 파고 들어가는 틈새정치가 될 수 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기존의 남성정치인들은 여성들과 같은 신인들에게 결코 권력을 나누어주지 않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등장은 기존정치인들에게서 대안을 찾을 수 없어서 ‘할 수 없이’ 여성을 택했을지 모르지만 여성들에게는 그것이 기회가 되는 것이다.

네 번째 그렇지만 17대 국회에서 여성의원들에게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지 말자. 13%는 많다면 많은 숫자이고 이전과 비교해보았을 때 큰 변화라고 할 수 있지만 13%는 13%일 뿐이다.

남성중심적인 국회의 성격이 바뀌기 위해서는 30%이상의 여성의원이 필요하다. 13%만으로는 반여성적인 법안을 저지할 수도 없고 친여성적인 법안을 통과시킬 수도 없다. 다만 이 13% 여성들의 활동이 유권자들에게 여성도 정치를 잘 할 수 있다는 것을 알리는 것으로, 그리고 차세대여성들에게 역할모델이 될 수 있다는 것으로도 17대 여성국회의원들은 큰 일을 해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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