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저귀 발언·부부 전임교수 불가 등 여성통제 맞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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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순

전 감리교신학대학교 교수

나는 며칠 전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라는 영화를 보았다. 그런데 나에게 기대치 않았던 감동을 준 것은 이 영화에 등장한 네 명의 여성들이었다. 나는 그 네 명의 여성들이야말로 지금까지 남성권력에 의하여 폭력적 휘두름을 당해오면서도 '생명애'를 끝까지 놓지 않음으로써 인류의 멸망을 이제까지 막아온 '의인들'이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그 네 명의 여성은 빌라도의 부인,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그 곁을 떠나지 않고 동행하고 있는 여성, 그리고 예수가 십자가를 지고 가는 여정에서 물 한 컵을 가지고 예수에게로 다가가서 자신의 하얀 스카프로 예수의 피땀을 훔쳐낸 여인이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극도의 폭력성을 행사하는 남성들과, 예수의 수난에 온 몸과 마음으로 그 고통에 같이 동참하는 여성들로 극한 대비를 이룬다. 그 여성들에게 예수는 “나의 살에서 나온 살이여 나도 함께 죽게 해 다오”라고 절규하는 한 여성의 자식일 뿐이며, 세상 사람들 모두 돌을 들어서 자신을 간음한 죄인이라고 쳐죽이려 들 때 처음으로 사람대접을 해준 진정한 인간이며, 그 처절한 고통의 순간에서도 깊고 따스한 눈길을 건넴으로써 자신의 가슴에 커다란 자국을 남긴 한 인간이며, 종교권력의 횡포에 의하여 십자가에 달리게 된 선한 예언자다.

어떻게 가부장제가 시작되었는가 하는 근원적인 논의를 뒤로 하고라도, 이 영화를 통해서도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남성들은 인류의 역사에서 종교·정치·육체적 권력을 휘둘러왔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그 남성들은 자신들의 권력이 도전 받을 때는 가차없이 여성들을 제지해 왔다. 종교영역에서는 그 권력이 대표적으로 '강단권'과 '교수권'에서 행사된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운동이 종교 안에서 출현하면서 여성들이 우선적으로 요청하였던 것은 남성들만의 영역이라고만 간주되었던 교회의 '강단권'과 더 나아가서 그 강단권이 부여되는 사람들을 교육시키는 신학대학의 '교수권'이었다.

지난 2003년 11월 12일 총신대의 '기저귀' 발언은 여성들의 강단권을 근원적으로 부정하는 것이었으며, 감신대에서의 '부부 전임교수 불가' 발언은 그 대학에서 신학을 가르치던 두 여성교수들의 '교수권'을 부정하는 정책이었다. 여성들이 '기저귀 차는' 생물학적 생명성은 인정하지만, 그 여성들이 강단에서 설교하는 목사가 되거나 신학대학에서 전임교수가 되는 '사회적 생명성'은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차별적 인식이 이 두 발언에서 드러난다. 이 두 발언은 결국 여성들의 사회적 생명성을 여전히 부차적인 것으로 만들뿐 아니라, 종교의 그 철저한 남성중심성을 조금도 침해받지 않겠다는 단호한 가부장제적 의지의 표출이라는 점에서 일맥상통한다.

어떻게 이러한 남성들의 결정권력을 탈중심화하고 권력의 다중심화를 이루어 나가는가, 그리고 어떻게 '지배하는 권력'이 아닌 '봉사하는 권력'의 새로운 권력모델들을 실천해 나갈 것인가 하는 것이 이제 우리가 씨름하고 투쟁해야 할 과제이다. 예수의 십자가에서의 죽음을 남성중심적 가부장제의 죽음이라고 보는 일련의 여성신학자들의 해석이 낭만적으로 끝나지 않기 위해서는 긴 투쟁의 여정을 용감하게 떠나야 하는 것이다.

* 41개 기독여성단체가 이른바 '기저귀 발언'으로 총신대에서 물의를 빚은 대한예수교 장로회 임태득 총회장에 대해 제기한 집무집행 정치 가처분 신청이 지난 8일 서울중압법원에서 각하됐다. 또한 감신대에서는 부부 전임교수로 탈락한 강남순, 권희순 두 여성 교수 중 권희순 교수만 재임용했다. 강 교수는 현재 감신대 여학생들의 요청으로 '학점 없는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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