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단체 활동으로 이민생활 고난 극복

이덕희 미국이민백주년사업 부회장, 활약상 등 소개

독립자금 모금 등 국권회복운동·경제성장 이끌어

1902년 인천항에서는 대한제국이 발행한 집조(당시 여권)를 가진 조선인들이 하와이 이민을 위해 첫 배에 올랐다. 이주를 시작한 지 2년 후 1905년 하와이 한인 인구는 7300명으로 이 가운데 기혼여성은 400명을 차지했으며, 1910년에는 4553 명 가운데 602명이 여성이었다. 하지만 미주 한인 이민 100주년을 맞은 지난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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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남성 독립운동가들만이 역사적 조명을 받았을 뿐, 한인여성들의 이주와 삶은 언급되지 못해 아쉬움을 낳았다.

▶ 독립운동으로 부상당한 사람을 구하기 위해 설립된 대한부인구제회 회원들의 거리 행진.

지난 15일 이화여대 한국문화연구원 주최로 열린 '한국학 포럼'에서 이덕희 미국이민백주년기념사업회 부회장이 이민사에서는 누락된 초창기 한인여성들의 여성단체 활동에 대해 소개해 주목을 끌었다. 이 부회장은 “교회활동을 통해 지도력을 키운 한인여성들이 여성단체를 결성해 국권회복운동 등 활발한 사회활동을 벌였다”며 “하와이에서 한인들이 경제적으로 높은 지위를 누리고 한인여성의 자녀들이 하와이시장, 대법원장, 검찰국장 등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모두 한인여성들의 이 같은 노력이 뒷받침됐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한인여성들은 이민 초창기부터 여성단체를 결성하고 국권회복을 위한 활발한 사회운동을 펼쳤다. 문또라, 황마리아, 차혜경, 전수산, 김차순 등이 당시 여성활동을 이끈 대표적인 지도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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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와이 최초의 여성단체는 신명부인회로 1909년 2월 이전 결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1909년 4월에는 부인교육회가 결성됐다. 부인교육회는 당시 한인신문 전면에 “남녀가 하나님의 자녀 되기는 일반이니 사업상 능력에 어찌 우열이 있으리요”라며 “1천만 여자의 속박을 끌러 국가의 원기를 기르며 비경에 함락한 국민을 공제한다”는 결성 취지를 밝히기도 했다.

▶국제적십자와 같은 대한부인구제회 회원의

복장.

1913년에는 신명부인회, 부인교육회 등 4개 여성단체와 그 지부들이 연합해 '대한부인회'(회장 황마리아)를 결성했다. 자녀에 대한 국어장려, 일본제품 배척, 재난동포 구제 노력 등을 목적으로 결성된 이 단체는 회비는 물론 모금과 사업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자금을 마련하고 황해도와 서간도 등 본국으로 기금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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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운동 소식을 듣고 모인 대한부인회 회원들.

특히 1919년 3·1 운동 소식을 접하고 각 지방의 41개 여성단체들은 독립운동으로 참상당한 사람과 독립전쟁에서 부상당한 사람을 구원한다는 목적으로 '대한부인구제회'(회장 매리송)를 설립했다. 이들은 군복을 만들거나 김치와 달걀을 팔고 연극활동까지 펼치며 모은 돈을 독립운동측에 전달했다. 이외에도 여성들에게 언어 등을 가르쳐 현지화에 힘쓴 한인YWCA(회장 황혜수)가 1920년 설립됐으며, 여성상공인회라고 할 수 있는 영남부인실업동맹회가 1928년 설립됐다.

김선희 기자sonag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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