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손영희 아트부산 이사장
고향 부산 발전 위해 시작해
국내 정상급 아트페어 키운 뚝심
“문화예술이 도시 경쟁력
연 1회 행사론 만족 못 해...
서울 사무실 열고 매년 NFT 아트페어 개최
여성들, 좋아하는 일 쉽게 포기 말길”

손영희 아트부산 이사장을 12일 부산 수영구 아트부산 사옥에서 만났다. ⓒ홍수형 기자
손영희 아트부산 이사장을 12일 부산 수영구 아트부산 사옥에서 만났다. ⓒ홍수형 기자

오랫동안 세계 미술시장에서 ‘부산’은 생소한 이름이었다. 지금은 국내외 134개 갤러리가 참가하고 수백억대 매출을 내는 아트페어가 열리는 도시다. 올해 11회를 맞은 아트부산은 한국화랑협회가 여는 한국국제아트페어(KIAF)와 함께 한국 대표 미술 축제로 성장했다. 지난해 관람객 약 8만명. 매출액은 350억원을 넘겨 국내 최고 기록을 썼다. 올해는 600억을 내다본다.

불모지였던 부산을 ‘예술 도시’로 만든 손영희(60) 아트부산 이사장은 아직 만족하기엔 이르다고 했다. 세계적 예술 축제로 발돋움하겠다는 포부, 미술계에서 꿈을 키우는 여성들에게 보내는 격려도 들어봤다.

12일 부산 수영구 아트부산 사옥.  ⓒ홍수형 기자
12일 부산 수영구 아트부산 사옥. ⓒ홍수형 기자

12일 찾은 부산 수영구 아트부산 사옥은 멋스러웠다. 어린이집 건물을 개조해 복합문화공간처럼 꾸몄다. 1층은 전시장, 2층은 사무실, 3층은 집무실이다. 이 건물이 통째로 파티장으로 변한다. 올해 아트부산 기간 저녁마다 젊은 갤러리들이 주최하는 파티가 열린다. 코로나19 여파가 다소 잦아든 만큼 여러 대면 행사를 재개해 활기를 불어넣을 계획이다.

“아트부산이 ‘부산을 즐기는 한 방법’이 됐으면 해요. 1박 2일씩 머무는 분들, 행사가 끝난 밤 시간대에도 교류하고 싶다는 분들이 많았거든요. 우리가 기꺼이 장소를 제공하기로 했죠.”

집무실 곳곳에도 작가들의 작품과 도록을 배치해 갤러리 같은 멋이 있다. “너무 좋지 않나요.” 하종현 작가의 ‘접합’ 연작을 보며 손 이사장이 말했다. 마포(麻布) 뒤에서 두껍게 물감을 발라 앞으로 밀어내는 특유의 ‘배압법’이 인상적인 작품이다. ⓒ홍수형 기자
집무실 곳곳에도 작가들의 작품과 도록을 배치해 갤러리 같은 멋이 있다. “너무 좋지 않나요.” 하종현 작가의 ‘접합’ 연작을 보며 손 이사장이 말했다. 마포(麻布) 뒤에서 두껍게 물감을 발라 앞으로 밀어내는 특유의 ‘배압법’이 인상적인 작품이다. ⓒ홍수형 기자

손 이사장은 컬렉터로서 미술시장에 첫발을 들였다. 좋아하는 그림을 즐기다 보니 아트쇼를 열 기회가 왔다. 부산의 국제회의장 벡스코(BEXCO)에서 국제 미술 행사를 공동 주관하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고 2011년 7월 법인을 설립, 2012년 6월 첫 행사를 개최했다.

‘정통 미술계 인사’는 아니다. 부산 출신으로 미생물학을 전공하고 대학병원에서 근무하다 1986년 결혼했다. 사업하는 남편을 따라 시카고, 프랑크푸르트 등 해외 산업 전시회에 자주 갔다. 국제회의 운영, 홍보 마케팅 체계를 파악하는 계기가 됐다. “처음엔 우리 도시의 수준이 더 높아지길 바라는 마음, 문화를 매개로 사회 발전에 기여하고 싶다는 마음이었죠. 투자금이 커질수록 망하면 안 된다, 하나라도 배워서 따라해 보자는 마음으로 분투했습니다.”

협회가 아닌 민간 주관사, 후발주자, ‘부산’이란 지역색 때문에 아트부산의 성공을 예상하는 이는 많지 않았다. 그러나 적극적인 해외 갤러리 유치와 마케팅 전략이 먹혔다.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와 예술경영지원센터의 국내 아트페어 평가에서 KIAF와 공동 1위를 차지했다.

“참가 갤러리의 수준, 방문객 수, 매출액. 운영 점수 등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것으로 압니다. 아트페어의 주인공은 갤러리들이지요. 그렇지만 일반 관람객들을 위한 프로그램도 고심해서 기획해왔습니다. 다채로운 특별전을 열고 편안하게 관람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려 노력한 점을 높이 평가받았다고 봅니다. 좋은 갤러리들이 참여하는 행사를 만들려고 노력하고 설득했고요. 그러면 컬렉터들이 따라오니까요.”

아트부산은 “지역에서 벌이는 하나의 문화운동”으로 출발했다. “도시 브랜드 가치를 올리려면 문화를 더해야 합니다. 아트부산 초창기만 해도 부산은 문화적으로 열악한 도시였어요. 여기서 작품이 팔릴까, 사람들이 미술 축제를 좋아할까 의구심도 있었지만 저는 가능성을 봤어요. 이제 부산은 물론 전 세계에서 찾아오는 행사가 됐지요. 지역색에 갇힐 필요는 없습니다. 시야를 더 넓히려 합니다.”

부산 미술시장에도 지난 10년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애호가층이 넓어졌고요. 2021년부터 ‘MZ세대’(설명) 컬렉터가 굉장히 늘었어요. 아트부산은 부산과 서울에서 컬렉터 모임을 열어 왔는데, ‘YCC’(Young Collectors Circle)라는 전문 컬렉터로서의 지식과 소양, 안목을 키우는 프로그램이 있어요. 이분들이 서로 좋은 작가를 소개하고, SNS로도 열심히 홍보하며 미술시장의 선순환 발전 구조를 만들고 있어요.

‘세계 3대 아트페어’ 영국 ‘프리즈’ 국내 개최, 여행 재개 등으로 한국을 찾는 이들도 많아질 겁니다. 부산도 문화예술 인프라를 발전시키고 있습니다. 곧 들어설 프랑스 퐁피두센터 분관, 오페라하우스, 2030 엑스포 유치 노력까지 달라질 부산을 기대해도 좋습니다.”

손영희 아트부산 이사장을 12일 부산 수영구 아트부산 사옥에서 만났다. ⓒ홍수형 기자
손영희 아트부산 이사장을 12일 부산 수영구 아트부산 사옥에서 만났다. ⓒ홍수형 기자

아트부산은 젊은 기업이다. 인턴사원 3명을 포함해 7명 모두 20~30대다. 미술, 예술경영, 디자인 전공자, 비엔날레·미술관 등 경력자들이 모였다. 발로 뛰는 일이 많아 조직 분위기도 활동적이다. 15년간 해외 아트페어·갤러리를 누비며 네트워크를 쌓은 변원경 대표도 새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그가 2013년 KIAF에 왔을 때 ‘아트부산에서도 워크숍을 해달라’고 요청하면서 인연을 맺게 됐다. 2020년 손 이사장이 대표이사로 전격 영입했다.

“연 1회 아트페어에 만족할 수 없습니다. 하고 싶은 일이 많아요.” 올 상반기에 서울 강남에 사무실을 연다. 젊은 작가들의 전시를 돕고 더 많은 이들과 긴밀히 소통하기 위해서다. 미술계 ‘핫이슈’ NFT 시장에도 본격적으로 뛰어든다. 올해 아트부산에서 NFT 생성과 거래소 등록 체험, NFT 미술품 전시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아트부산과 별개의 NFT 아트페어도 매년 열 계획이다. 카카오 ‘그라운드 X’ 등 관련 기업과 꾸준히 협업도 모색한다.

여성 후배들에게 그는 “꿈이 있다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했다. 많은 여성이 결혼·임신·출산 후 일을 관두게 되는 현실을, 다시 꿈을 찾을 때 경력단절이 얼마나 치명적인지도 안다. 아트부산이 직원들에게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장려하는 이유다. 아이를 키우며 파트타임으로 일하다 풀타임으로 전환해 계속 일하는 직원도 있다. “강한 의지도 중요해요. 좋아하는 일을 찾았다면 쉽게 포기하지 말아요. 어떻게든 타협점을 찾아보세요. 도움의 손길이 있을 거예요.”

아트부산 2022 포스터. ⓒ아트부산 제공
아트부산 2022 포스터. ⓒ아트부산 제공

《제11회 아트부산, 5월 12~15일 부산 벡스코에서 개최》

제11회 아트부산이 오는 5월 12일 VIP 프리뷰를 시작으로 15일까지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BEXCO)에서 열린다. 갤러리 134곳(해외 33곳, 국내 101곳)이 참가한다. 손 이사장은 올해 특별히 눈여겨볼 갤러리로 미국 리처드 그레이 갤러리를 꼽았다. 데이비드 호크니, 알렉스 카츠, 하우스 플렌자 등 세계적 미술 거장의 전속 갤러리다. 아시아 지역 첫 방문이다. 로이 리히텐슈타인, 피카소, 알렉스 카츠 등의 작품도 선보인다. 아이 웨이웨이, 자오자오 등 주목받는 중국 작가들의 작품(홍콩의 탕 컨템포러리 아트), 3D 프린팅을 예술매체로 활용하는 오스틴 리 작가의 특별전(베를린 페레스 프로젝트 갤러리), 젊은 갤러리인 스탠 갤러리도 기대해 달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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