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금지법 제정연대 주최 '릴레이 단식행동'
여성·시민단체, 점심 거르며 차별금지법 제정 촉구

점심마다 끼니를 거르며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에 목소리를 높이는 이들이 있다. 3월 14일에 시작돼 4월 8일까지 열리는 ‘릴레이 단식 행동 국회 앞 집회’다. 2021년 1월 기준 142개 단체가 속한 차별금지법제정연대(차제연)가 주최했다. 집회 기간 날마다 다른 단체가 단식행동을 하며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한 자신들의 입장을 밝히고 있다.

지난 6일 여의도 국회앞에서 빈곤사회연대, 전국장애인철폐연대, 노동당이 포괄적차별금지법제정을 요구하며 피켓을 들고 있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지난 6일 여의도 국회앞에서 빈곤사회연대, 전국장애인철폐연대, 노동당이 포괄적차별금지법제정을 요구하며 피켓을 들고 있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차별금지법이란 성적지향, 고용 형태, 성별, 출신 국가, 장애 등 개인의 정체성에 따라 겪을 수 있는 차별을 방지하기 위한 법이다. 현재 한국 사회에는 장애인차별금지법, 남녀고용평등법, 고용상연령차별금지법 등 여러 개의 차별금지법이 존재하고 있다. 하지만 해당 법들은 특정 사유에 대한 차별만을 다루거나 고용이라는 한정된 영역에만 적용된다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개인이 겪은 포괄적인 차별 경험을 온전하게 다루면서 법적으로 확실한 구제 및 예방 수단을 제공하는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요구하고 있다.

따라서 ‘포괄적 차별금지법’제정 촉구 이유는 개인마다, 단체마다 제각기 다르다. 과연 어떤 단체가 무슨 이유로 차별금지법 촉구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을까. 기자는 5일 하루 단식행동을 함께하며 집회에 참여해봤다.

지난 5일 여의도 국회 앞 포괄적차별금지법제정촉구 집회에서 유지향 방송작가유니온 사무국장이 발언을 하고 있다. ⓒ여성신문
지난 5일 여의도 국회 앞 포괄적차별금지법제정촉구 집회에서 유지향 방송작가유니온 사무국장이 발언을 하고 있다. ⓒ여성신문

한국여성민우회가 주관한 지난 5일 집회에서는 ‘성차별’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뤘다. 한국여성단체연합 활동가 은박은 “제게 저의 어머니 세대가 하던 성 역할이 대놓고 주어지진 않지만, 제시간에는 언제나 다른 가족 구성원을 위한 가사노동과 돌봄 노동이 포함 혹은 전제되어 있다”면서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성차별은 없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유지향 방송작가유니온 사무국장은 방송계의 성차별을 고발했다. 그는 대부분 여성이 맡은 방송작가를 일컬어 “ 방송국의 ‘돌봄 노동’을 전담하는‘돌봄 노동자’”라고 말하면서 방송작가지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방송작가들의 처우는 나아지지 않았다며 “마치 끝나지 않는 차별 속에 갇힌 기분”이라고 말했다.

ⓒ차별
3월 31일 '트랜스젠더 가시화의 날'에 여의도 국회 앞 포괄적차별금지법 제정 촉구 집회에서 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발언하고 있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성차별 이외에 ‘성적 지향 및 성 정체성에 따른 차별’을 하지 말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들도 많다. 특히 3월 31일 트랜스젠더 가시화의 날에는 차별금지법안을 발의한 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나와 “대한민국에는 트랜스젠더가 존재하고, 그뿐만 아니라 다양한 성적 지향과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존재한다고 하는 것 등을 알려 나가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나이를 기반한 차별도 포괄적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게 되는 이유다. 지난 4일 이진영 촛불 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 활동가는 학생들의 인권을 보장하는 학생인권조례는 여전히 전국 시도에 여섯군데 밖에 제정돼 있지 않다면서 청소년 인권이 보장되지 않은 현실을 꼬집었다.

3월 21일 세계 인종차별 철폐의 날을 기념해서는 ‘인종차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다. 이종걸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공동대표는 “경북대 유학생 무아즈 라자크는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대구 무슬림 사원 증축에 대한 혐오와 차별의 문제에 조금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며 실제 인종차별에 시달리고 있는 당사자의 차별금지법 제정 요구에 관해서 얘기했다.

이외에도 해당 집회에는 전국장애인철폐연대, 노동도시연대, 라이더유니온, 한국여성의전화 등 다양한 단체가 참가했다. 이들은 성‧성적지향 및 성정체성‧나이‧인종 이외에도 노동‧장애 등의 차별을 방지할 수 있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의 제정을 촉구했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
3월 14일 여의도 국회 앞 포괄적차별금지법 제정집회에 참여한 ‘차별과 혐오 없는 평등 세상을 바라는 그리스도인 네트워크(평등세상)’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지난 15일 여의도 국회 앞 포괄적차별금지법 제정집회에 참여한 대한불교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와 실천불교승가회ⓒ차별금지법제정연대

종교적 신념에 따라 차별금지법을 지지하는 이들도 있다. 3월 14일에는 ‘차별과 혐오 없는 평등 세상을 바라는 그리스도인 네트워크(평등세상)’에서 집회를 주도했으며 15일에는 대한불교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와 실천불교승가회가 집회를 주도했다. 조계종 사회노동위 부위원장 혜문스님은 “부처님은 모든 이들에게 차별이 없다고 하셨다”면서 “차별과 혐오로 국민을 갈라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차별 금지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차별금지법은 2007년 관련 법안이 처음 발의됐으나 15년이 지난 지금까지 제정되지 못했다. 지난 해 4월 국회 국민동의청원에 차제연등이 차별금지법 제정 촉구 글을 올려 10만 명 넘게 공감을 표현했지만 11월 국제 법제사법위원회는 해당 청원의 심사를 2024년 5월까지 연장했다. 올해 3월 30일 국가인권위원회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차기 정부가 추진해야 할 핵심 인권과제 중의 하나로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조속히 제정할 것을 제시했다. 그러나 앞서 윤석열 당선자인 후보 시절인 2월 국제앰네스티의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한 질의에 ‘일부 추진’ 의사만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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