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부터 이어진 장애인 이동권 투쟁
휠체어도 탈 수 있는 버스는 30%뿐
교통약자법 현실화할 예산·근거도 부족
휠체어 탄 장애인들, 다시 전철 시위
“쥐꼬리만큼 변한 세상...
한 사람이라도 함께 목소리 냈으면”

이형숙 서울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장 등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들이 3월 29일 서울 종로구 경복궁 3호선에서 ‘장애인 인동권 보장·장애인 권리예산 반영 요구’ 지하철 시위를 열고 있다. ⓒ홍수형 기자
이형숙 서울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장 등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들이 3월 29일 서울 종로구 경복궁 3호선에서 ‘장애인 인동권 보장·장애인 권리예산 반영 요구’ 지하철 시위를 열고 있다. ⓒ홍수형 기자
전장연의 장애인권리예산 인수위 답변 촉구를 위한 삭발 투쟁 시위가 열린 30일 오전 서울 종로구 경복궁역에서 이형숙 서울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장이 삭발을 마친 후 눈물을 흘리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전장연의 장애인권리예산 인수위 답변 촉구를 위한 삭발 투쟁 시위가 열린 30일 오전 서울 종로구 경복궁역에서 이형숙 서울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장이 삭발을 마친 후 눈물을 흘리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휠체어 탄 장애인들이 출근길 지하철에 등장했다. 장애인도 대중교통을 편히 이용할 권리가 있다고, 장애인 기본권 보장에 필요한 예산을 달라고 외치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활동가들이다.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12월부터 수차례 출근 혹은 퇴근 시간대에 수도권 지하철역에서 시위를 벌였다.

왜 출근길 지하철인가. “할 수 있는 건 다 해봤기 때문입니다.” 장애인들의 응답이다. 

“21년을 외쳤는데도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의 변화는 정말 쥐꼬리만큼씩밖에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 오늘은 또 시민들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욕설을 할까? 우리의 간절하고 절박한 심정을 단 한 사람이라도 함께 목소리를 낼 수 있으면 하는 바람으로 매일 아침 출근 선전전을 하였습니다.”

이형숙 서울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장이 3월30일 한 말이다. 그는 이날 서울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승강장에서 삭발 투쟁에 나서면서 시민들에게 지지를 호소했다.

장애인 이동권 투쟁 21년째
수많은 죽음 딛고 싸우는 사람들...“이동권은 생존권”

2013년 5월 28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지하철 1호선 대방역 승강장에서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관계자들이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2013년 5월 28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지하철 1호선 대방역 승강장에서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관계자들이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2001년 지하철 오이도역수직형리프트 추락참사 8주기인 2009년 1월 22일 오전 정부과천청사 정문 앞에서 열린 ‘교통약자의이동편의증진법 개정 및 국토해양부 면담요구 기자회견’. 전장연, 장애인이동권쟁취를위한연대회의,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원 10여 명이 시위를 벌이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2001년 지하철 오이도역수직형리프트 추락참사 8주기인 2009년 1월 22일 오전 정부과천청사 정문 앞에서 열린 ‘교통약자의이동편의증진법 개정 및 국토해양부 면담요구 기자회견’. 전장연, 장애인이동권쟁취를위한연대회의,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원 10여 명이 시위를 벌이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야당 대표가 ‘비문명’과 ‘불법’으로 낙인찍은 장애인들의 외침 뒤에는 많은 이들의 죽음이 있다. 장애인들이 “이동권은 생존권”이라고 말하는 이유다. 휠체어 장애인 고(故) 김순석씨는 1984년 서울시장에게 ‘거리의 턱을 없애 달라’는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1990년 뇌성마비 장애인 대학생 백원욱씨가 대학 캠퍼스에서 전동휠체어를 타고 비탈길을 내려오다 미끄러져 사망한 사건도 있었다. 

본격적으로 불을 댕긴 건 2001년 1월 오이도역에서 장애인 노부부가 휠체어 리프트를 타다가 추락해 사망한 사건이다. 그해 4월 노들장애인야학 등 7개 단체를 중심으로 한 ‘장애인이동권쟁취를위한연대회의’가 출범했고 시민과 함께하는 버스·지하철 타기 운동, 100만인 서명 운동, 서울시장의 사과와 면담을 요청하는 천막농성 등이 이어졌다.

법제도적 성과도 쟁취했다. 2003년 “이동권”이란 단어가 국어사전에 등재됐다. 2005년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법(교통약자법)이 제정됐다. 2008년 제정된 장애인차별금지법은 이동·교통수단 이용에 차별이 없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2021년 개정된 교통약자법은 버스 대차나 폐차 시 저상버스 도입을 의무화도록 했다. 장애인에게만 좋은 법이 아니다. 다리가 불편한 노인, 유아차를 모는 보호자, 무거운 짐을 운반하는 노동자 등에게도 든든한 법이다.

교통약자법 제정 17년
휠체어도 탈 수 있는 버스는 30%뿐
현실화할 예산·근거도 부족

그러나 교통약자들이 체감하는 변화는 미미하다. 전국 저상버스 도입률은 30%를 밑돈다. 수도권이라면 모를까, 비수도권에서는 그림의 떡이다. 일주일에 500만명 이상이 이용하는 서울 지하철도 지상부터 승강장까지 엘리베이터만 타고 이동할 수 없는 역이 21개나 된다.

교통약자 이동권 보장 정책을 현실화할 예산과 그 근거도 부족하다. 2021년 12월 국회를 통과한 교통약자법 개정안을 보면, 저상버스 도입을 의무화하라는 조항이 신설됐지만 시내버스나 마을버스만 포함하며, 시외버스나 고속버스는 제외됐다.

장애인 콜택시 등 특별교통수단 관련 예산 지원 조항은 의무가 아닌 ‘임의조항’이다. 국비 지원은 의무가 아니라는 뜻이다. 이 경우 지자체가 예산을 배정·집행해야 한다. 다른 사업을 제쳐두고 교통약자 이동 문제에 우선 예산을 배정하려는 지자체는 드물다.

올해 교통약자 이동권 보장을 위한 정부 예산도 넉넉하진 않다. 국토교통부는 당초 올해 예산으로 1531억3500만원을 요청했으나, 기획재정부 심의 과정에서 약 440억원이 삭감된 1090억6500만원으로 확정됐다.

이 중 90.4%(985억6500만원)가 저상버스 도입 보조를 위한 예산이다. 장애인 콜택시 도입 등에 활용되는 특별교통수단도입보조 예산은 8.6%(93억6100만원)에 불과하다. 시외버스나 고속버스 등 장거리 이동을 지원하는 ‘배리어 프리(Barrier Free) 인증 사업’ 예산은 4억5000만원에 그쳤다. 8년째 인증제도만 시행할 뿐 실질적 정책이 없다. 휠체어 탑승설비·고정장치 등 이동편의시설이 설치된 고속·시외버스 운행을 지원하는 교통약자 장거리 이동지원 사업 예산은 5억원이다(나라살림연구소, ‘교통약자 이동권 예산 분석 보고서’, 2022).

이어보기 ▶ ‘장애 혐오’ 꺼낸 이준석·서울교통공사, 장애인에 사과한 의원들 http://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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