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여성계 폐지 반대 총공세
​​​​​​​성평등정책 주변화·배제 우려

30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한국여성학회와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성인예산네트워크가 '여성가족부 폐지론 진단과 성평등정책 정부조직 개편 방안' 토론회를 개최했다. ⓒ홍수형 기자
한국여성학회와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성인예산네트워크는 3월 30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새 정부 성평등 정책 강화 방안 토론회’를 개최했다. ⓒ홍수형 기자

여성가족부의 운명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21년 공들여 쌓은 탑을 무너뜨릴 지, 더욱 견고한 탑으로 우뚝 세울 지는 4월 초 윤석열 당선자의 손에 달렸다. 보수와 진보, 정파를 초월한 범여성계 단체는 윤 당선자의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을 정면으로 비판하며 총공세에 나섰다. 인수위원회와의 간담회, 전문가 토론회를 열어 준비 없는 여가부 폐지에 따른 문제점을 짚고 성평등정책 전담부처의 강화를 주문했다. ‘여가부 폐지’를 더 이상 정략적 도구로 이용말라는 경고다.

안철수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위원장은 3월 30일 여성단체들을 잇따라 만나 “여성가족부가 2001년 생긴 이래 많은 역할을 해왔지만, 시대도 변하고 역할도 변하는 게 정부 조직 아니겠느냐”면서도 “여가부와 관련해 모든 것이 열려있는 상태”라고 했다. 이 자리에 범여성계에서는 김민문정 한국여성단체연합 대표, 강혜란 한국여성민우회 상임대표, 이은주 한국여성유권자연맹 중앙회장, 최분희 한국여성유권자연맹 중앙부회장, 원영희 한국YWCA연합회 회장, 김은경 한국YWCA연합회 성평등 정책위원장 6명이 참석했다. 인수위 측에서는 안 위원장 외에 임이자 사회복지문화분과 간사, 안상훈 위원과 채성령 전문위원, 특보를 맡고 있는 김정재 의원, 당 중앙여성위원장 양금희 의원이 배석했다.

이 자리에서 김민문정 대표는 “구조적 성차별은 엄연한 현실이고 성평등은 헌법적 가치”라며 “코로나 상황 속에서 더 심각한 문제에 직면하고 있는 여성들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과정이 너무 필요하다. 성평등 정책을 담당할 독립부처가 분명히 필요하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범여성계는 공동선언문을 내고 인수위에 “더 강력한 성평등정책 전담 부처를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여성가족부의 제한된 인력과 예산의 한계를 통감하며 정부 내 각 부처와 지방정부의 성주류화 정책을 실효성 있게 집행할 ‘보다 강력한 집행부처’를 요구한다”는 내용이다.

앞서 안 위원장은 이날 오전에는 보수 성향의 한국여성단체협의회와도 면담했다. 여성단체협의회는 성평등 정책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범여성계와는 달리 가족정책에 무게감을 둔 ‘가족부’ 신설을 제시했다. 인수위가 논의 중인 ‘인구가족부’ ‘미래가족부’ 등과 결이 같다.

‘여성가족부 강화’ 일곱 글자 제시
여성단체 간담회 ‘요식행위’ 아니어야

윤석열 당선자는 여가부를 폐지하고 아동·가족·인구감소 문제를 종합적으로 다룰 부처를 신설하겠다고 여러 차례 밝혔다. “구조적 차별은 없다”는 현실과 동떨어진 인식 아래 여가부의 업무를 쪼개 다른 부처에 맡겨도 되며, 여가부 업무 중 상당수가 다른 부처와 ‘중복’되기 때문에 효율적으로 줄이겠다는 것이다. 또 각 부처에 흩어져있는 아동·가족정책은 새 부처를 신설해 맡기겠다는 구상이다. 윤 당선자는 ‘여가부 폐지에 관한 정치권의 이견이나 반발을 어떻게 돌파할 것이냐’는 질문엔 여가부가 “역사적 소명을 다했다”고 했다. 무슨 근거로 구조적 차별은 없다고 단언할 수 있는지, 여가부가 역사적 소명을 다했다는 것은 성평등이 이뤄졌다는 것인지 더 이상의 부연은 없었다.

인수위에 여성정책 전문가는커녕 여성위원도 찾아보기 어려운데다 여가부 공무원은 한 명도 받지 않았다. ‘폐지’라는 답을 정해놓고 다른 업무를 끼워 맞추려다 보니 나오는 대안은 효율과는 거리가 멀다. 여가부라는 이름을 없애고 기존 기능을 통합·흡수할 부처를 신설하는 방안이 유력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즉, 여가부의 기존 역할을 수행하면서 인구 문제에도 대처할 부처를 만든다는 이야기다. 명칭으로는 ‘인구가족부’ ‘미래가족부’가 거론된다.

전문가들은 대안으로 떠오른 업무 분산 배치는 성평등 정책의 ‘머리’를 없애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황정미 서울대 여성연구소 객원연구원은 3월 30일 한국여성학회와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성인지예산네트워크가 마련한 ‘새 정부 성평등 정책 강화 방안 토론회’에서 “인수위에서 기능에 맞춰 복지부·법무부로 정책을 쪼개면 되지 않느냐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분산 배치’는 머리를 자르고 손발만 남기는 것과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노동과 돌봄, 시장과 가족을 연결하는 지점에 바로 성평등 정책이 있다”면서 “이 역할을 간과해 여가부를 없애면 돌이킬 수 없는 문제를 초래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하영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 공동대표는 “젠더폭력을 구조적인 문제로 바라볼 때 대안이 나올 수 있다. 젠더폭력은 위계적인 성별 불균형에 의해 발생하는 폭력”이라며 “성폭력 전담 부처는 반드시 마련하고 총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피해자 지원을 해온 30년의 시간, 공든 탑을 무너뜨리지 말라”고 일갈했다.

‘이명박 인수위’ 당시 장관으로서 여성부 폐지 위기를 겪었던 장하진 전 여성부 장관은 “이명박 정부 때 겪은 일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 참담한 심정”이라고 토로했다. 그는 “(여가부 폐지 대안으로 거론되는) 부처별 여성정책담당관, 위원회 등의 방식은 이미 거쳐왔다”며 “다양한 성평등 추진체계 가운데 독립 부처 형태로 존재하는 게 가장 효율적이라는 게 우리 사회의 역사적 경험”이라고 했다. 대안으로는 ‘성평등가족청소년부’를 제안했다. 또 “여가부가 없어졌을 때 가장 우려되는 건 지방여성의 정책 피폐화와 혼란이다. 젠더폭력 피해자 지원이 법무부로 갔을 때 성인지 관점이 흐려질 수 있는 문제도 있다”고 우려했다. 장 전 장관은 “인수위는 선거 때 나온 공약을 거르는 기간이다. 안철수 인수위원장은 부디 공들여 쌓아온 탑을 무너뜨리지 말아달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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