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전 '49개의 방'여는 작가 안/규/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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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핍, 결여, 부재, 현기증이 전시의 키워드입니다. 뭔가 인생에서 중요한 것이 빠져 있는데, 현대인은 빠져 있다고 느끼지 않죠. 이를 강렬하게 느끼도록 아예 빼버려 '자, 그래도 온전하다고 믿는가'그들에게 묻습니다.”

'개념적 미술가'로 통하는 안규철씨(49·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교수). 지금 로댕 갤러리에선 '49개의 방'이란 제목으로 안씨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다. 조각 소품과 드로잉 외에 눈길을 끄는 것은 방을 통해 현대인의 소외와 단절을 표현한 신작들이다.

<바닥 없는 방>(2004)은 결여되고 결핍된 현대인의 삶을 반영한다. ▲

로댕 갤러리에서 전시중인 안규철씨의 신작이다.<사진·민원기 기자>

원룸의 허리 아래 부분을 절단해 뿌리내리지 못하는 현대인의 삶을 보여준 '바닥 없는 방', 불안정한 삶을 얽어매 두려는 욕망을 표현한 '흔들리지 않는 방', 입구이자 출구이며 희망이자 허상인 문들을 표현한 '112개의 문이 있는 방'등 오브제 미술에 전념해 온 작가는 기존의 작업 방식을 보다 넓은 공간으로 옮겨왔다.

관람객들은 바닥이 없는 원룸 안으로 들어가 폐쇄되고 개인화된 공간인 집을 경험한다. 허리 절반이 잘린 원룸은 현대인들의 삶이 결여되고 결핍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쾌적하고 편리한 듯 보이지만 가족의 존재, 관계마저도 배제된 원룸을 통해 작가는 “이래도 우리의 삶이 온전한가”라는 물음을 던지는 것이다.

또한 관람객들은 49개의 방을 빼곡이 연결하고 있는 문들을 열어보며 '문이자 통로이고 길이면서 미로인'방, 사적인 공간이자 누가 언제 들어설지 모르는 공적 공간인 방의 모순성에 직면한다. 각목으로 고정된 채 허공에 떠 있는 침대와 가구들은 어떤가('흔들리지 않는 방'). 이는 세상이 불완전하고 계속해서 변한다는 설정 속에서 안정을 그리워하는 현대인들의 심리를 표현한 것이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주거 공간, 주거 양식의 속성들을 명료하게 드러내 보고 싶었습니다. 집은 옛날 같으면 사람의 자취가 남고 기억이 스며드는 공간인데, 아파트로 오면서 집은 집인데 단지 머물다가는 대합실 같은 성격을 갖게 됐죠.”

무엇보다 이번 전시의 테마인 '49'라는 숫자는 그에게 의미 깊다. 7년 단위로 생활이 바뀌었다는 그. <계간미술> 잡지 기자로 7년 동안 일했고 유학생활을 7년 했으며 학교에 들어온 지 7년이 됐다. 올해 들어 그 스스로 작품 세계의 변화를 기대해 볼 만하다.

“49개의 방을 인생의 계기라고 본다면 선택은 그 자리에 있거나 새로운 공간을 향해 문을 열고 나서는 것입니다. 작품을 보는 이들로 하여금 후자 쪽을 택할 수 있도록 하고, 그런 사회가 희망이 있는 사회죠.”

'그 남자의 가방' 등에 나타난 우화적 상상력은 작가의 다른 면모를 보여준다. 벽에 걸린 드로잉 작품들은 현대인의 상실과 고독감을 위로해 준다. 페터 빅셸의 <책상은 책상이다>가 떠오르는 것도 그 때문일 터. “우화는 독일 유학 당시 아이들에게 읽어준 온갖 그림책, 동화책들에서 기인한 것 같다”고 그 역시 말한다.

화제는 자연스럽게 직장을 그만두고 부인과 함께 유학길에 올랐던 때로 옮겨갔다. 그와 부인인 이수자씨(46·성신여대 여성학과 교수)는 비슷한 점이 많다. 그가 <현실과 발언>을 통해 사회 참여적인 발언을 했듯, 이씨 역시 여성노동 쪽에서 급진적인 논의들을 내왔다. 그는 “유학기간 동안 비슷하게 직접적인 사회현실에 거리를 두면서 정치적인 관심보다는 문화적인 부분에 더 관심을 갖게 됐다”고 설명한다. 문학과 미술을 접목시킨 작품을 해온 것도 이 즈음일 것이다.

그는 자신의 작업이 “'인생을 즐겨라'보다는 우리가 지금 사는 모습을 돌이켜보고 '이렇게 사는 것이 온전한 것인가', '더 나은 삶은 없는가' 질문을 던지는 방식”이라며 “관객들이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 작가로서 내 역할”이라고 강조한다. 신작들의 크기만큼이나 무게감 있게 다가오는 포부다. 전시는 4월 25일까지 열린다.

문의) 02-2259-7781

임인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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