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희의 경운동 편지 5
평균 56.3세 합창단 ‘뜨거운 씽어즈’

JTBC '뜨거운 씽어즈' 출연진
JTBC '뜨거운 씽어즈' 출연진

JTBC ‘뜨거운 씽어즈’(연출 신영광, 이하 ‘뜨씽즈’)의 반응이 정말 뜨겁습니다. 미리 나간 홍보영상이 방송 시작 전에 조회수 40만을 돌파했는가 하면, 1·2회 시청률은 4%를 훌쩍 넘겼습니다. 화제성은 시청률을 능가하구요. 평균 연령 56.3세인 중장년 연예인들의 합창단 도전기라는데 초반부터 이렇게 인기몰이를 하는 까닭은 무엇일지요.

뜨씽즈의 출범 단원은 15명입니다. 맏언니이자 큰누나인 김영옥(84)과 넘버2 나문희(81)를 비롯해 권인하(63) 김광규(55), 박준면(46), 서이숙(56), 우미화(48), 우현(58), 윤유선(54), 이병준(58), 이서환(49), 이종혁(48), 장현성(52), 전현무(45), 최대철(48) 등입니다. 전현무 외엔 모두 연기자들이지요. 권인하는 가수지만 드라마 출연도 했습니다.

익숙한 이름도 있지만 얼굴을 봐야 “아, 저 사람” 하게 되는 이도 있습니다. 주연만 기억하게 되는 습성 때문이지요. 1,2회는 이들의 자기 소개를 겸한 노래 시간으로 꾸며졌습니다. 연기라면 어떤 역이든 겁날 게 없을 법한데 노래여서일까요. 누구 할 것 없이 잔뜩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습니다. 연기의 신 김영옥마저 “떨려”를 연발했으니까요.

그래도 배우는 배우였습니다. 노래를 끝내고 “휴” 안도의 숨을 몰아 쉴지언정 노래하는 동안의 몰입도와 감성은 최고였습니다. 더 놀라운 건 선곡이었습니다. 하나같이 자신의 삶과 생각을 고스란히 대변하는 듯한 노래를 골라 듣는 사람의 마음을 훔치고 눈물을 뺐습니다.

사전 영상의 주인공 나문희가 부른 ‘나의 옛날 이야기’는 첫 소절부터 가슴을 저몄습니다. ‘쓸쓸하던 그 골목을 당신은 기억하십니까. 지금도 난 기억합니다.“ 한 음 한 음 꾹꾹 눌러 부르는 팔순 연기자의 노래는 처음부터 끝까지 가사의 모든 내용이 똑똑히 들렸습니다.

김영옥이 부른 ‘천 개의 바람이 되어’는 또 어떻구요. ‘나의 사진 앞에서 울지 마요. 나는 그곳에 없어요. 나는 잠들어 있지 않아요~~ 나는 천 개의 바람이 되었죠. 저 넓은 하늘 위를 자유롭게 날고 있죠. 아침엔 종달새 되어 잠든 당신을 깨워 줄게요. 밤에는 어둠 속에 별이 되어 당신을 지켜 줄게요.’ 이 영상도 방송 1주일만에 조회수 40만을 넘었습니다.

중간중간 호흡이 끊어져도 진심을 다해 부르는 노래를 들으며 단원들은 물론 음악감독인 김문정, 최정훈(잔나비)까지 눈물을 훔치느라 바빴습니다. 우미화는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를 골랐습니다. ‘하늘 높이 날아서 별을 안고 싶어 소중한 건 모두 잊고 산 건 아니었나.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 소중한 건 옆에 있다고, 먼 길 떠나려는 사람에게 말했으면.’

서이숙의 ‘나를 외치다’는 중견 연기자의 심정을 그대로 전하는 듯했습니다. ‘절대로 약해지면 안된다는 말 대신, 뒤처지면 안된다는 말 대신, 지금 이 순간 끝이 아니라, 나의 길을 가고 있다고 외치면 돼.’ 가창력도 뛰어났지만 온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진정성과 열정에 보는 사람의 주먹도 절로 꼭 쥐어졌습니다.

여성들의 노래만 가슴을 울린 건 아니었습니다. 장현성의 ‘스물다섯 스물하나’는 아련한 젊은 시절의 꿈을 떠올리게 했고, 박진영의 ‘날 떠나지 마’를 춤까지 추며 부른 우현의 열정은 듣는 사람 모두를 들썩이게 했습니다. 최대철의 ‘그것만이 내 세상’, 이서환의 ‘오르막길’은 주어진 상황 속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이들의 간절한 심정을 대변했습니다. ‘하지만 후회는 없지. 울며 웃던 모든 꿈, 가꿔 왔던 모든 꿈, 그것만이 내 세상.’

오디션이나 경연이 아닌데도 다들 온맘을 다해 부르는 노래는 듣는 내내 주책 없이 자꾸 울게 만들었습니다. 40대 중반이 막내인 뜨씽즈 단원들의 노래를 통한 자기 소개는 절절했습니다. 노래가 주는 감동은 단순한 가창력이 아니라 부르는 이의 스토리와 진심이 듣는 이의 가슴에 와 닿을 때 생겨나는 것임을 새삼 입증한 셈이지요.

뜨씽즈는 이제 시작입니다. 최종 목표곡은 꽤 어렵답니다. 나이도 노래실력도 다른 이들이 하나의 목소리를 내려면 고생깨나 할 게 틀림없습니다. 음악감독에게 싫은 얘기를 듣는 사람도 있을 테고, 최선을 다하는데도 원하는 소리가 나오지 않아 애먹는 사람도 없지 않겠지요.

김문정 음악감독은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20년 음악감독 인생에 이런 난관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어렵고 곤혹스러운 순간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동안 해왔던 음악 장르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을 경험하고 있다." 함께 하는 최정훈 감독은 "표정, 눈빛, 마음, 살아온 삶까지 어우러지는 합창단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털어 놨습니다.

나이가 들면 알게 됩니다.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이 누구보다 소중하고, 부족하고 못났어도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해야 행복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요. 뜨씽즈 단원들은 45~84세의 중·노년이고 대부분 조연입니다. 이들의 노래가 듣는 이의 가슴을 파고든 건 단순한 가요가 아니라 이 땅 대다수 중노년의 고백이자 외침이었기 때문인 듯합니다.

뜨씽즈는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인 오디션과 경연으로 뒤엉킨 방송계에 생겨난 합창 부르기, 곧 ‘여럿이 함께’ 프로그램입니다. 누가 붙고 떨어지느냐가 아니라 누가 다른 사람 혹은 전체와 얼마나 잘 어우러지나를 지켜보게 되겠지요. 어울리자면 종종 나를 내려놔야 합니다.

‘나’를 내세우는 사람들로 가득한 세상에서 나를 내려놓음으로써 우리를 만드는 합창은 얼마나 아름다울지요. 사람이 하는 일이니 실수도 있고 시샘도 있고 자잘한 갈등도 있겠지요. 적잖은 나이의 단원들이 고군분투하면서 보여줄 재미와 조화에서 비롯될 감동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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