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엄마 이야기] 엄마의 그 한마디 "좀 기다려 봐라"
[나의 엄마 이야기] 엄마의 그 한마디 "좀 기다려 봐라"
  • 하지은 전 MBC아나운서
  • 승인 2022.03.13 14:59
  • 수정 2022-03-13 16: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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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엄마 이야기
하지은 전 MBC아나운서
엄마 이순자 씨
하지은 전 아나운서와 어머니

얼마 전에 중학생인 딸, 그리고 딸 아이가 제 동생처럼 아끼는 강아지 큐티와 함께 놀이터에 갔다. 무선이어폰 한 쪽씩을 딸과 나눠 끼고 음악을 들으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딸의 손을 잡고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한 길을 걷고 있으니, 내가 어렸을 때 엄마와 비슷한 시간을 보냈던 기억이 떠오른다.

고등학교에 다닐 때 집 앞에 있던 놀이터. 자율학습을 마치고 밤 늦게 돌아와서나 한가로운 주말 저녁이면 엄마와 함께 종종 놀이터에 나가곤 했다. 나란히 앉아 함께 그네를 타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공부에 지쳤던 마음에도 다시 기운이 생기고 바람 빠진 풍선처럼 쭈그러 들었던 기분도 말랑하게 부풀어 올랐다. 속상한 일이 있을 때도, 누구에게도 말 못할 비밀도 엄마에게만은 털어놓을 수 있었다.

음식을 만들 때 주재료 위에 예쁘게 장식하는 고명처럼, 아들만 있는 집에 예쁘게 있는 딸을 고명딸이라고 한다. 나는 3남1녀 집안의 고명딸이다. 그런데 엄마한테 나는 ‘고명’이 아니라 ‘주재료’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만큼 엄마는 나한테 헌신적이었고, 그 무엇보다 앞서는 소중한 존재로 여겨 주셨다.

만 22살, 대학 졸업식을 치르기도 전에 나는 MBC 아나운서로 합격했다. 그 소식에 뛸 듯이 기뻐하시던 엄마의 얼굴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오랫동안 간직해온 아나운서의 꿈을 이뤘다는 것보다 나로 인해 엄마가 그렇게나 환하게 웃는 모습이 더욱 행복했다.

그런데 그로 인해 엄마는 팔자에 없던 서울살이를 시작하게 됐다. 내가 혼자 자취를 하면서 방송국 일에 적응해야 할 것이 못내 걱정스러웠던 엄마가 방송국 근처에 집을 얻어 나와 함께 지내기로 한 것이다. 처음엔 내가 직장생활에 익숙해질 때까지만 한시적으로 생각했던 일이지만, 내가 결혼해 가정을 꾸릴 때까지도 엄마는 내 곁을 떠나지 못하셨다. 결혼한 이후 한동안은 친정 식구들이 있는 지방에 돌아가 계셨지만, 아이들이 태어나면서 워킹맘 딸을 도와주느라 다시 올라오셔야 했다. 덕분에 함께 한 추억도 많이 생겼지만 미안함도 적지 않다.

아나운서로 매일 아침 뉴스 생방송을 진행할 때의 일이다. 새벽에 일어나 바쁘게 준비하고 나가는 현관문 앞, 엄마가 막 담근 거라며 파김치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흰밥을 얹어 들고 나오신다. 코디네이터에게 대여받은 하얀 블라우스에, 메이크업까지 완료한 상황. 엄마는 내가 빈 속으로 출근하지 않게 하려고 나보다 더 일찍 일어나 준비하셨을 텐데, 이걸 먹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감사한 마음 한편으로 난감하기 짝이 없어 요즘 말로 동공지진을 일으켰던 기억이 난다.

사실 엄마는 요리에 자부심이 대단한 편이다. 그 유명하다는 전라도 손맛이 바로 우리 엄마다. 게다가 손도 크고 인심도 푸진 편이라, 해마다 김장철이 되면 그 집 김치 맛 좀 보자는 주변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한다. 덕분에 다른 집은 많아 봐야 기껏 수십 포기인 김장을 우리 친정에선 매년 수백 포기씩 담는다.

엄마는 그런 손맛을 살려서, 요리 장인이 되고 싶은 꿈이 있었다고 하셨다. 그런데 결혼하고 우리 4남매를 낳고 기르며 한 번 접었던 그 꿈을, 나의 방송국 생활을 뒷바라지하느라 다시 한 번 저만치 미뤄두게 되고 말았다. 그런 와중에 온갖 솜씨를 부려 만든 엄마의 음식을 아침 출근길이라 바쁘다며, 혹은 일이 너무 많아 피곤하다며 마다한 적도 많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마다 엄마는 얼마나 속상하고 마음이 아팠을까. 나도 엄마가 되고 그때의 엄마 나이가 되어서야 조금이나마 그 마음을 헤아리게 된다.

언젠가 엄마가 자서전을 쓰고 싶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대단한 출판은 아니더라도 그냥 우리 식구들만 돌려보도록 남겨두고 싶다는 것이다. 그때는 그 말을 건성으로 들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엄마도 어쩌면 가슴에 묻어두고 살아온 말들이 많았으리란 생각이 든다.

‘엄마니까.’ 엄마의 사랑도, 희생도 그렇게 당연하게 여기고 누려왔는지 모른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세상에서 그저 당연한 것이 무엇이랴. 엄마라는 이름으로 감내해야 했을 엄마의 세월, 때로는 행복했겠지만 또한 때로는 힘들고 서럽기도 했을 엄마의 시간들, 평생을 새겨온 엄마의 추억들은 무엇일까. 생각하다 보면 어쩐지 눈물이 날 것 같다.

사람들은 계속해서 좋은 일만 생기는 행복한 삶을 원한다. 그런데 나이를 좀 먹다 보니,그건 욕심일 뿐 사실은 존재하지 않는 삶이라는 것을 나도 이제는 안다. 내게 힘든 일이 있거나, 고민이 생겨 발을 동동 구르고 있으면 엄마는 항상 “걱정 말고 좀 기다려 봐” 라고 말씀해주시곤 했다. 철 없던 시절에는 그 말이 답답하고 이해되질 않았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시간이 조금 흐르다 보면 힘들었던 그 일이 전화위복이 되기도 하고, 꼭 그렇진 않더라도 당장 죽을 것처럼 괴롭던 마음이 어느 샌가 눈 녹듯이 사라지기도 했다. ‘좀 기다려 보라’는 엄마의 말처럼.

‘인생은 고해(苦海)’라고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 있어서 행복하다’는 상반된 말이 모순 없이 받아들여지는 둥글둥글한 마음. 어쩌면 엄마도 내게 그런 것들을 가르쳐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엄마의 삶과 경험에서 깨달은 그 지혜를, 막 세상에 나와 이리저리 부딪히고 상처 받고 있던 어린 딸에게 전해주고 싶으셨던 게 아닐까. 엄마가 쓰고 싶다는 자서전에는 얼마나 더 많은 그런 인생의 이야기가 담겨 있을까. 다가오는 주말엔 오랜만에 친정에 내려가, 엄마가 품고 계신 그 많은 이야기들을 실컷 전해 듣고 틈틈이 정리해 드려야겠다.

 

하지은 전 MBC아나운서

하지은

중앙대 일어일문학과 졸업

일본 와세대대학 국제관계학 전공

1994년 MBC 공채 아나운서

MBC아나운서국 부장

MBC TV 굿모닝코리아, 저녁뉴스 진행

한국외국어대학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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