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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배용 이화여대 평생교육원장 사학과 교수▶

내 삶을 바꿔 놓았다고까지 할 수는 없지만 학문분야의 폭을 넓혀 주는데 가장 큰 영향을 주었던 책. 1980년대 이화여대 교수로 부임하면서 여성문제연구에 관심을 돌리게 되었을 때 연구시각의 중요한 관점을 제시해 준 책. 바로 1926년 이능화가 저술한 <조선여속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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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초로 한국여성의 삶에 관심을 기울여 이 책을 저술한 저자는 서문에서 저술동기를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왕년에 내가 미국인 임난지가 쓴 <오주여속통고>를 읽는 가운데 조선의 여속에 대해서는 단지 '아이의 울음을 그치게 하려고 얼를 때 고양이를 부른다고 한다.'이 한마디만 쓰여 있어 조선 인구 중 절반인 천만이나 되는 여자 사회의 풍속이 어찌 고양이를 불러 아이울음 그치게 하는 일뿐일소냐… 조선여성에 대한 역사가 없음은 우리 조선 사람의 허물이다, 라고 격분하여 <여속고>를 쓰기로 하였으나 사료를 수집하는 일이 그리 쉽지 않아 10여 년이란 장구한 세월을 거쳐 비로소 이 책을 낼 수 있었다.”

총 26장으로 구성된 <조선여속고>는 왕실과 서민 구별없이 여성전체를 대상으로 혼인풍속, 출산, 복식, 여성교육, 여성노동 등 다방면에 걸친 여성문제를 다루고 있다. <조선여속고>의 중요한 사학사적 의의는 첫째, 지배층 중심의 역사서술에서 벗어나 그 동안 역사에서 소외당해 온 여성을 새롭게 주목해 여성을 따뜻한 시선으로 인간주의 관점에서 바라보았다는 점이다. 둘째는 지금까지 해온 남성중심의 역사이해와는 다른 각도에서 여성사 연구를 진행함으로써 역사연구의 분야와 방법론을 확대시켰다는 점이다. 셋째는 당시 한국사회상의 일단면을 이해하려는 입장에서 여성억압의 원인과 기원을 살펴봄으로써 현재의 사회구조를 인식하고 여성이 근대한국의 역사 주체자로서 보다 많이 참여함으로써 앞으로의 발전방향을 설정해 보고자 노력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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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의미를 가진 <조선여속고>는 여성생활 풍속제도에 관한 방대한 자료를 체계화해 여성사를 종합적으로 규명한 저술로서 최초임과 동시에 여성연구에 대한 길을 열어 후학들의 길잡이가 되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수 있다. 더불어 이곳 저곳에 산재된 숨은 자료들을 발굴하고 글로 정리했기 때문에 여성사 분야의 학문적 체계를 이룰 수 있는 밑바탕이 되었던 것이다. 더구나 이능화가 생존했던 당시에는 실증적으로 인용한 자료들이 오늘날에는 많이 없어진 이 시점에서 그 값어치는 더욱 빛난다고 할 수 있으며 내 경우에도 여성연구원장을 하면서 여성사관계 자료집을 발간할 때나 여성사 연구를 본격적으로 진행하면서 항상 든든한 학문적 기반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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