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남'이 말한다]

2030 남성들이 '행동하는 보통 남자들'이라는 이름의 단체를 구성하고 "우리는 정치권과 미디어에서 그려내는 다 똑같은 청년 남성이 아니다"라고 선언했다. 이들은 정치권에서 표심잡기에 몰두하는 이른바 '이대남'(20대 남성)이 누구인지 되물으며 "우리는 서로 헐뜯고 경쟁하기보다 여전히 남아있는 성차별을 개선하여 공존하고 싶다"고 말했다. '행동하는 보통 남자들' 회원들의 기고를 세 차례에 걸쳐 싣는다. <편집자 주>

미국의 교육자인 토니 포터는 자신의 책 ‘맨박스(MAN BOX)’에서 남자를 둘러싼 성역할 고정관념을 ‘맨박스’라고 소개하며 남성에게 강요되는 ‘남성다움’의 틀을 깨부수고 자유로워져야 한다고 권한다.
미국의 교육자인 토니 포터는 자신의 책 ‘맨박스(MAN BOX)’에서 남자를 둘러싼 성역할 고정관념을 ‘맨박스’라고 소개하며 남성에게 강요되는 ‘남성다움’의 틀을 깨부수고 자유로워져야 한다고 권한다. ⓒWikimedia

지인과의 대화에서 ‘정수기 물통을 들지 않으면서 생리휴가는 챙기는 여직원’에 대한 푸념을 들은 적이 있다. 권리는 누리길 원하면서 의무는 수행하지 않으려 하는 ‘여성’들을 겨냥한 비유였다. 남성들은 이 때 ‘그렇다면 모든 궂은 일은 남성들이 전담해 수행해야 하는 것이냐, 어째서 여성들은 힘든 일을 하지 않으려 하느냐’고 목소리를 높인다. 남성이라면 마땅히 궂은 일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푸념 없이 도맡아 해야 하고, 그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직간접적으로 지탄받는다. 우리는 이를 흔히 맨박스라 일컬으며, 이와 같은 관념에 대한 부정은 젊은 남성들 사이에서 흔히 보일 뿐만 아니라 쉽게 공감을 받는 주제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맨박스 밖으로 나간 이후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한다.

전통적 성 역할 요구받는 남성들

남성성의 수행에 대한 압박은 ‘상남자’ 밈을 통해 조롱되곤 한다. 무모할 정도로 일을 벌이거나, 어처구니없는 허세를 부리는 등 마초의 모습을 극단적으로 밀고 간 모습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요컨대 이는 남성이 전통적 성 역할의 수행을 요구받는 것에 대한 반감이 보편적으로 자리 잡았음을 의미한다. 남성성에 대한 요구가 옳지 않은 일이라는 점이 전반적인 공감을 받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여성을 혐오하지 않는 남성’으로서, 여성과 소수자들이 받는 차별이 무엇인지 고찰하고, 이에 저항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를 듣고 많은 주변 남성들은 ‘대열 앞에서 소리를 지르는 화난 여성’들을 떠올리곤 한다. 그들의 상상 속에서 이들은 소위 말해 ‘남성을 혐오하는’ 구호를 외치며 주변을 지나는 선량한 남성들을 윽박지른다. 당신이 ‘모든 남성이 그렇지 않다’는 주장에 동의한다면, 남성들 사이에서 정형화된 이미지로 존재하는 페미니스트들의 모습이 현실에서도 그대로 드러나는지, 나아가 이 모습들이 어떤 이유와 맥락으로 발생한 것인지에 대해 탐구하고 대화하는 것 또한 ‘대한민국 남성의 한 구성원’으로서 선택할 수 있는 경로의 하나일 것이다. 예를 들어 ‘모든 남성들이 그렇지 않음’을 주장하는 남성이라면, 모든 남성들이 여성가족부의 폐지를 원한다고 주장하는 정치권의 일부 의견에 대해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 그 방법이다.

우리가 바라는 세상을 이야기하자

우리는 남성성의 강요에 반대하기 때문에 그 의미, 그리고 그것이 어떤 사회적 맥락에서 발생한 것인지 탐구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남성성에 대한 비판이 ‘조롱’이라는 복잡한 사회적 현상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그렇다면 남성들이 이러한 고찰을 다른 형태의 차별에도 적용하는 것 또한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여성들과 소수자들이 어떤 연유로 분노하고, 주말의 도심에서 목소리를 드높이는지에 대해 탐구한다면 이들의 이야기가 가까운 지인과 가족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는 점은 비교적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사실이다. 우리가 공감을 받고 싶다면, 타인의 이야기에도 공감해야 한다는 전제는 지금의 청년들에게 그 어느 때보다도 필요한 이야기이다. 우리가 남성성의 요구가 만들어낸 굴레를 비판하는 것에 공감한다면 이는 마땅히 다른 형태의 차별에도 적용돼야 한다. ‘남성성에 대해 비판하는 것은 좋아, 그 다음은?’이라는 질문에 대한 답 속에 공감과 연대가 포함돼 있는 것이다.

결국 우리가 바라 오던 세상은 페미니스트들이 원하는 세상과 다르지 않다. 이제는 그 차이가 크지 않았음을 직접 확인하고, 새로운 논의의 장을 펼칠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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