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싸움을 하고 나서도 무서울 것이 없어졌다. 경미한 폭력과 상처로 남을 욕설이 횡행하고 결국엔 누군가 하나는 좀 나가주어야 할 상황이 벌어져도 겁날 게 없어졌다는 이야긴데, 그건 온전히 24시간 찜질방의 존재를 알고 난 후의 일이다. 남의 손에 이끌려 여성전용 한증막을 가보던 날, 그것은 내게 신천지의 발견이나 다름없었다. 여자들은 밤이 늦어도 집에 가질 않았다. 누구도 밥걱정을 하지 않았다. 식당엘 가보면 가운만 걸친 여자들이 두 다리를 좌악 벌리고 제육볶음을 먹었고, 한 옆에선 텔레비전을 보면서 캔맥주도 마셨다. 젊은 축들은 만화책을 보면서 컵라면이나 뜨거운 계란을 까먹었다. 몸이 식은 여자들은 다시 등허리가 벌개질 만큼 뜨거운 한증막에 들어가 몸을 덥혔다. 잔소리하는 남편이나 추근대는 남자친구도 없는, 먹을 것이 지천인, 게다가 외로움을 상쇄해 주는 그토록 뜨거운 바닥이라니… 천국이 바로 그곳이었다.

그 이후, 24시간 여성한증막이나, 찜질방은 내가 어딘가로 도망가고 싶을 때, 혼자 있고 싶을 때, 떠나고 싶을 때, 그러나 주머니는 비고 몸도 마음도 가닥가닥 피곤할 때 가는 유일한 휴양처가 되었다. 주섬주섬 윗 주머니에 속옷 한 장과 때 타월 한 장 집어넣고, 잡지 한 권을 뒷주머니에 꽂으면 준비 끝. 예전과 달리 고맙게도 그곳은 여자에게도 수건과 비누를 제공한다. 심지어 어떤 곳은 흡연실도 따로 있다.

그렇게 좋은 곳을 발견한 이후로 나는 집 이외의 곳에서 잠자는 것, 일이 있을 때 어딘가에서 밤을 새우는 것, 지방 어딘가로 가는 것이 두렵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폐를 끼치지도 않아도 되고, 혼자만의 시간이 가능한 곳, 같은 처지의 여자들이 옆에 있는 곳. 세상이 다 고마웠다. 어두운 카페에서 침침한 눈을 비비며 걸레처럼 축축 처질 필요가 없어졌다. 진정한 여자들의 해방구였다. 그렇게 한 2년 동안을 내 몸과 마음을 위무해 주던 공간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보다 럭셔리하게, 보다 첨단적으로, 보다 기업적으로.

집 앞에 새로 생긴 24시간 사우나는 이름마저 고급스럽게 모모 스파로 변했다. 깔끔하고 뜨겁기로야 예전 것은 명함도 못 내밀 정도다. 휴일이면 관광버스까지 대절해 오는 손님들로 왁자지껄이 도를 넘는다. 여자는 핑크빛, 남자는 푸른빛 옷들을 똑같이 입은 손님들이 줄줄이(정말로 줄지어 앉는다) 앉아 예전에 날렸던 가수들이 왕년의 히트곡을 부르는 걸 박수를 치면서, 팥빙수를 먹으면서, 얼음 띄운 맥주를 마시며 듣는다. 천장엔 사이키 조명까지 빙글빙글 돌아간다. 신흥 밤무대다. 스팽글 자수가 번쩍이는 의상을 입은 가수들이 수건을 머리에 두르고 땀을 흘리는 내 앞에서 노래를 부른다. 토굴을 찾아가도 그 소리는 꽝꽝 귀를 울린다. 옆 사람들을 본다. 아줌마들이 즐겁게 웃고 있다.

나쁘진 않다. 그런데 좋아져도 너무 좋아진 것 아닌가. 목욕탕에서 사우나로, 그리고 스파로. 근데, 왜 다시 예전의 그 여성전용 한증막일 때가 그리울까? 남자들을, 아니 가족단위 손님을 유치하기 위해 이토록 현란하게 만든 모양이지만, 아, 그립다. 마치 난민들처럼 병원 환자복 같은 가운만을 걸치고 거웃까지 보이며 늘어지게 자던, 여자들만 있던 그 해방구가.

권혁란 페미니스트 저널 <이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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