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이후, 24시간 여성한증막이나, 찜질방은 내가 어딘가로 도망가고 싶을 때, 혼자 있고 싶을 때, 떠나고 싶을 때, 그러나 주머니는 비고 몸도 마음도 가닥가닥 피곤할 때 가는 유일한 휴양처가 되었다. 주섬주섬 윗 주머니에 속옷 한 장과 때 타월 한 장 집어넣고, 잡지 한 권을 뒷주머니에 꽂으면 준비 끝. 예전과 달리 고맙게도 그곳은 여자에게도 수건과 비누를 제공한다. 심지어 어떤 곳은 흡연실도 따로 있다.
그렇게 좋은 곳을 발견한 이후로 나는 집 이외의 곳에서 잠자는 것, 일이 있을 때 어딘가에서 밤을 새우는 것, 지방 어딘가로 가는 것이 두렵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폐를 끼치지도 않아도 되고, 혼자만의 시간이 가능한 곳, 같은 처지의 여자들이 옆에 있는 곳. 세상이 다 고마웠다. 어두운 카페에서 침침한 눈을 비비며 걸레처럼 축축 처질 필요가 없어졌다. 진정한 여자들의 해방구였다. 그렇게 한 2년 동안을 내 몸과 마음을 위무해 주던 공간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보다 럭셔리하게, 보다 첨단적으로, 보다 기업적으로.
집 앞에 새로 생긴 24시간 사우나는 이름마저 고급스럽게 모모 스파로 변했다. 깔끔하고 뜨겁기로야 예전 것은 명함도 못 내밀 정도다. 휴일이면 관광버스까지 대절해 오는 손님들로 왁자지껄이 도를 넘는다. 여자는 핑크빛, 남자는 푸른빛 옷들을 똑같이 입은 손님들이 줄줄이(정말로 줄지어 앉는다) 앉아 예전에 날렸던 가수들이 왕년의 히트곡을 부르는 걸 박수를 치면서, 팥빙수를 먹으면서, 얼음 띄운 맥주를 마시며 듣는다. 천장엔 사이키 조명까지 빙글빙글 돌아간다. 신흥 밤무대다. 스팽글 자수가 번쩍이는 의상을 입은 가수들이 수건을 머리에 두르고 땀을 흘리는 내 앞에서 노래를 부른다. 토굴을 찾아가도 그 소리는 꽝꽝 귀를 울린다. 옆 사람들을 본다. 아줌마들이 즐겁게 웃고 있다.
나쁘진 않다. 그런데 좋아져도 너무 좋아진 것 아닌가. 목욕탕에서 사우나로, 그리고 스파로. 근데, 왜 다시 예전의 그 여성전용 한증막일 때가 그리울까? 남자들을, 아니 가족단위 손님을 유치하기 위해 이토록 현란하게 만든 모양이지만, 아, 그립다. 마치 난민들처럼 병원 환자복 같은 가운만을 걸치고 거웃까지 보이며 늘어지게 자던, 여자들만 있던 그 해방구가.
권혁란 페미니스트 저널 <이프>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