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여성주의를 위한 변론] ①

20대 대통령 선거판에서 젠더 문제가 화제다. 여성가족부 폐지, 성평등에 대한 혐오와 적대감이 정치적 힘을 얻고 있다. 다양성과 포용성에 기반한 미래를 열어가야 할 시점에서 우려스러운 2022년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민주주의와 여성운동의 기본을 다시 짚어보는 기획을 마련했다. 철학, 사회학, 정치학,사학 등 다양한 분야 중견 학자들이 헌법 정신을 근거로 시민사회의 보편적 인권과 민주주의, 그 핵심으로서의 성평등을 논의한다. <편집자 주>

정대현 이화여대 철학과 명예교수
정대현 이화여대 철학과 명예교수

얼마 전에 “페미니즘은 반헌법적, 여가부는 반헌법적 기관”이라는 제목의 신문 기사가 보도되었다(경향신문 2022년 1월 13일). 국회의 한 중진의원의 주장을 인용한 것이었다. 여성주의자로 살아 온 필자에게는 충격적인 뉴스였다. “내가 반헌법적인 삶을 살아왔는가?” 자신을 돌아보면서 그 비난이 당황스러웠다. 물론 이 기사 이전에도 여성주의를 기피하거나 비난하는 글이나 활동들을 여기저기에서 접했지만, 이들을 다양한 사회적 의견이나 관점들의 경쟁으로 보아 왔다. 그러나 “페미니즘은 반헌법적”이라는 표현은 이전의 여성주의에 대한 비난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공격점을 담고 있다. 물론 여성주의 안에도 성격이나 내용을 달리하는 다양한 관점들이 있다. 모두 피해자 여성의 관점에서 달리 제안되는 관점들이다. 그러나 “페미니즘은 반헌법적”이라는 표현은 모든 여성주의를 통째로 “유죄”로 개념적으로 결정하는 것이다. 

서울시 종로구 헌법재판소 내 도서관에서 보관하고 있는 현행 헌법 영인본.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서울시 종로구 헌법재판소 내 도서관에서 보관하고 있는 현행 헌법 영인본. 헌법 제34조 3항은 “국가는 여자의 복지와 권익의 향상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여성신문

헌법 제34조 3항의 ‘여성주의’

유죄로 기소된 사람은 누구건 자기변호를 할 수 있어야 한다. 그 한 방식은 “여성주의는 헌법적이다”라는 명제로 호소하는 것이다. 먼저 “여성주의”는 여러 가지로 규정될 수 있지만 그 중의 하나는 <부당한 성차별이 존재한다는 인정>과 <그러한 성차별이 해소되어야 한다는 공감>이라는 두 조건을 그 필요충분조건으로 정의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한민국 헌법 제34조 3항은 주목해야 할 명제를 담고 있다: “국가는 여자의 복지와 권익의 향상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라는 선언이다. 이 명제는 진공에서 선언된 것이 아니다. 이 명제는 <부당한 성차별이 존재한다는 인정>을 전제한 것이다. 그리고 이 명제는 그렇게 전제된 사실에 대해 <그러한 성차별이 해소되어야 한다는 공감>을 강요하는 명령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34조 3항에 대해 이와 다른 해석이 가능할 것인가? 그렇지 않다면 우리의 여성주의는 “헌법적 여성주의”라고 해야 하지 않는가?

헌법에 왜 이러한 여성주의적 조문이 들어있을까? 대한민국 국회는 여성의 삶의 역사적이고 현실적 조건에 주목했다고 생각한다. 역사적으로 우리 문화는 음양론을 문맥적으로 보지 않고 우주론적으로 잘못 적용하여 삼종지도(三從之道: 어려서는 아버지를, 결혼해서는 남편을, 늙어서는 아들을 따름), 내외법(內外法: 여성을 가정 공간에 한정함), 아들을 못 낳는 며느리는 내칠 수 있다는 등의 칠거지악(七去之惡) 같은 가치를 조성하여 많은 여성들이 한(恨)을 맺힌 삶을 살게 했다. 현대로 올수록 법으로 보완되고 있지만 그 오래된 관행의 습성은 사회 널리 그리고 우리의 무의식 속에 고정관념으로 깊숙이 뿌리 내려 이를 의식하지도 못하면서 차별을 수행하게 한다.

여성주의 거부야말로 위헌적

1970~80년대의 정부는 딸·아들 구별말자는 인구 정책을 수행하고 그러한 정부 구호와 더불어 1980년대 이후에 태어난 여성들은 남성들처럼 교육 받았고, 남성들과 자유롭게 경쟁하며 살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남녀의 역할에 대해 고정관념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들은 이러한 상황이 불편할 것이고, 특히 여성들 때문에 기회를 뺏겼다고 여기게 되면 고정관념은 적대감으로 창발하게 된다. 따라서 여성답지 못하다고 여겨지는 여성, 단발머리를 하는 여성, 능력 있는 여성, 여권을 주장하는 여성을 향해 “여성 혐오”를 표현하게 되고 이를 겪는 젊은 여성들은 그 혐오를 되돌려준다는 의미의 “미러링” 행태를 보이기도 한다. 이는 여성주의와 여성운동의 두 차원이 개념적으로 구분되어야 하지만 실천적으로 통합되어야하는 지점이다. 개념적으로 여성주의가 다양한 것처럼 여성운동도 다양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실천적으로 혐오 미러링은 굿이나 한풀이처럼 자연스러운 반응적 퍼포먼스로 볼 수 있어야 한다. 상처받은 자가 신음 소리를 내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처럼 피해자의 호소나 절규는 자연스러운 것이다.

헌법적 여성주의를 함축하는 헌법 제34조 3항은 특이하다. 헌법은 자유 민주주의, 복지, 문화, 평화, 경제 등의 가치를 천명하지만 또한 여성이라는 가장 큰 약자 관점을 특기하여 존중하고 있는 것이다. 가장 큰 약자는 노인, 병약자, 성소수자, 이민자 같은 작은 약자 관점을 대변하여야 한다는 의무를 갖는다. 젊은 남자들이 고통을 받는다면 이들 또한 약자 관점에서 보살필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대한민국 헌법은 국민 모두가 여성주의자일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여성주의를 거부하는 것은 위헌적이고, 반헌법적이서, 다른 위법보다 심각한 기소의 대상이 되는 건 아닐까?

필자: 정대현 이화여대 철학과 명예교수
고려대학교 철학과에서 학위를 받고,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언어철학, 형이상학, 여성학 등을 가르치다가 2006년에 퇴직하고 현재 명예교수다. 저서로는 『맞음: 진리와 의미를 위하여』, 『다원주의 시대와 대안적 가치-한 인간론의 여성주의적 기초』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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