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윤석열 후보 페이스북
사진=윤석열 후보 페이스북

대학 2학년이 되는 남자 조카는 미래 준비에 바빠, 오늘은 없는 듯 보인다. 그런 그가 용돈이 필요해 택배회사에서 알바를 하고 난 후 ‘ 고모, 사람이 일하다가 죽을 수도 있는 것 같아’라고 한 말에 마음이 먹먹했었다. 아빠처럼 살고 싶지 않고, 공정하게 대우받고 싶은, 그래서 허투루 시간을 보내지 않고 열심히 사는 그가 여가부에 대해 비판적이다. 비난이 아니고 비판이고, 소통하고 토론할 마음을 닫은 것이 아니어서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아무런 설명과 대안 없이 ‘여성가족부 폐지’라는 일곱 글자를 대선 공약으로 내건 ‘정치’는 혐오를 선동하는 분열의 정치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하지만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되는 것은 각자의 자리에서 이 문제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조카와 같은 많은 청년들은 혐오 세력이 아니라는 것이다.

여가부 폐지 찬반에 관한 최근의 조사에 의하면 ‘여가부를 폐지해야 한다’는 응답은 38.2%, ‘(양)성평등 가족부로 개편해야 한다’는 응답은 49.4%로 나타났다(서울경제·한국선거학회가 엠브레인퍼블릭에 의뢰해 지난 11~13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34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패널 조사 결과). 개편이 폐지보다 11.2%포인트 높았지만 어떤 형태로든 변화가 필요하다는 공통의 인식이 존재한다. 하지만 폐지 혹은 개편이 필요한 이유와 대안은 제대로 들리지 않고, 일부의 목소리만 과잉 대표되는, 그래서 파편만 난무하는 것이 오늘의 모습이고 문제이다.

청와대 국민청원에 등장한 여가부 폐지 이유를 보자. 여성들은 더 이상 약자가 아닌데 여성편향 정책을 위해 사용되는 여가부의 예산으로 여성복지는 과잉 수준이고, 여가부의 정책들은 효과가 없다. 여가부는 세금을 낭비하는 기관이라는 것이다. 반면 여가부 존치를 주장하는 청원에서는 여가부는 여성만을 위해 존재하지도 않을뿐더러 여성‘만’을 위해 국가 예산을 사용하고 있지 않고, 오려 여성과 청소년, 그리고 가족을 중심으로 성차별을 해소하고, 기존의 정책 체계에서 소외되었던 계층을 법 테두리 내로 포용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여가부가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 가족 업무와 여성 업무를 더 늘리는 동시, 권한을 강화하여 주어진 역할을 더욱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따른 폐지 이유는 여가부는 이념과 정치 편향적이고, 급진 페미니즘 이념을 실행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구조는 잘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보기 어렵다. 그러나 사람은 보이고, 사건은 사건으로 묻히지만 그렇다고 잊혀지는 건 아니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모 의원이 박원순·오거돈 전 시장의 성추행 의혹 사건으로 치러지는 보궐선거에 혈세 838억원이 든다고 지적하자, 당시 여가부 장관은 “국민 전체가 성인지성에 대한 집단학습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역으로 된다고도 생각하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더불어민주당 일부 여성국회의원들은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사건 피해자에게 ‘피해호소인’이라고 지칭했다. 여가부 산하기관에서는 남성을 성범죄의 잠재적 가해자로 보는 ‘잠재적 가해자의 시민적 의무’라는 동영상을 제작해서 홈페이지에 올려 논란이 됐다.

이번 대선에서 여가부가 뜨거운 감자가 된 것은 사건과 사람들 때문은 아닌지, 그래서 여가부 폐지는 정책이 아닌 정치가 되어 버린 건 아닌지 성찰하고 돌아봐야 할 지점이다.

여가부 존폐 논쟁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등장했지만, 여가부 폐지가 대통령 선거에서 공약으로 발표되고 현안으로 등장한 것은 이번 대선이 처음인 것 같다. 미국 대선에서 낙태와 동성애 논쟁이 정책 논쟁이 아닌 것처럼 여가부를 어떻게 할 것인가도 정책이 아닌 표를 모으는 정치가 돼버렸다.

그러나 한편으로 여가부 존폐 논쟁은 성평등 이슈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인식의 확대, 사회의 전 영역에서 여성의 대표성이 증진되는 등 성평등 문제가 더 이상 주변화되기 어려운 환경이라는 것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성평등을 더욱 진전시킬 수 있는 기회일 수도 있다.

대선은 우리의 미래가 달려있는 선거다. 그런 선거에서 특정 부처의 존폐 혹은 강화 문제는 정치공학이 돼서는 안 된다. 정책이 아닌 정치로 여가부 존폐를 접근하는 것은 원인 찾기와 대안 논쟁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성별로 분열과 갈등만을 부추겨 ‘미래’의 성장 동력과 새로운 상상력을 잃게 하기 때문이다. 누가 대통령이 되어도 이 문제는 숙의돼야 하고, 그 숙의는 거버넌스를 통해 이뤄져야 한다. 숙의를 위한 기구를 만들어 직접 숙의 과정을 같이 하겠다는 대통령 후보가 없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차기 정부에서는 집행부서로서의 여가부와는 별도로 대통령 소속으로 성평등위원회가 설치되길 바란다. 성평등위원회에서 성별, 연령 등 다양한 정체성을 가지는 개인들이 한자리에 모여 성별 갈등이 표면화되는 이유는 무엇인지, 기존 세대와 다른 2030 청년세대의 생애 설계와 정책 욕구, 디지털 경제화, 팬데믹으로 인한 변화된 정책 환경 속에서 성평등 정책의 방향을 재정립하고 여가부가 그에 부합되는 조직으로 환골탈태할 수 있도록 설계도를 다시 그리기를 희망해본다.

박선영(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한국젠더법학회장)
박선영(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한국젠더법학회장)

*외부 필자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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