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행유예 감형 노리나...무죄라던 오거돈
2심 선고일 갑자기 강제추행치상 인정
검찰 “재판지연은 2차 가해”
안희정 사건과 비교한 판사...여성단체 “부적절”

오거돈 부산시장이 2020년 4월 23일 오전 부산 연제구 부산시청 9층 기자회견장에서 사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오거돈 부산시장이 2020년 4월 23일 오전 부산 연제구 부산시청 9층 기자회견장에서 사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직원을 성추행하고 심각한 정신적 고통을 준 혐의로 실형이 선고된 오거돈 전 부산시장이 항소심 선고 당일 갑자기 혐의를 인정했다. 선고는 다음 달로 연기됐다. 검찰과 여성단체는 오 전 시장이 뒤늦게 선처를 구하려고 재판을 지연시켜 2차 가해를 저질렀다고 비판했다. 

부산고법 형사2부(오현규 부장판사)는 19일 강제추행, 강제추행치상 등 혐의로 1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은 오 전 시장에 대한 항소심 결심공판을 진행했다.

이날은 원래 선고공판일이었는데, 오 전 시장 측이 갑자기 강제추행치상 혐의를 인정한다는 취지의 자료를 법원에 제출해 선고가 미뤄졌다. 오 전 시장 측은 사실오인, 양형 부당 등을 이유로 무죄를 주장해왔는데, 이날 ‘무죄 주장 일체를 철회하고 양형 부당만 주장한다’고 밝혔다. 오 전 시장 본인은 처음부터 죄를 인정하고 반성했으나, 변호인들의 주장을 따라서 여기까지 온 것이라고도 주장했다. 

부산성폭력상담소 활동가가 1월 3일 부산고법 앞에서 오 전 시장 엄벌을 호소하는 1인시위를 하고 있다. ⓒ부산성폭력상담소 제공
부산성폭력상담소 활동가가 1월 3일 부산고법 앞에서 오 전 시장 엄벌을 호소하는 1인시위를 하고 있다. ⓒ부산성폭력상담소 제공

오 전 시장은 피해자에게 정신적 상해를 입힌 ‘강제추행치상죄’가 인정돼 1심에서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다. 검찰도 오 전 시장 측도 항소했다. 

오 전 시장은 항소심에서 유죄 판결의 토대가 된 피해자 진료기록을 재감정해 ‘치상죄’를 재판단해 보자고 요구했다. 판결이 뒤집혀 강제추행죄만 인정된다면 형량이 줄고 집행유예도 노려볼 수 있어서다. 그러나 대한의사협회는 오 전 시장의 강제추행이 피해자가 겪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의 직접적 원인이 맞다는 내용의 자료를 법원에 송부했다. 또 온라인상 2차 가해가 피해자의 증상 악화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고 봤다.

검찰은 “오 전 시장의 재판 지연은 2차 가해”라며 징역 7년을 구형했다. 또 “피고인은 이 사건 항소심에 처음 응할 때부터 PTSD 등 피해자의 은밀한 내적 영역이 제3자의 평가대에 올려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라며 “이러한 감탄고토적 행태를 보면 과연 진정한 반성을 하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안희정 사건과 비교한 판사...여성단체 “부적절”

이날 재판부가 수행비서 성폭행 혐의로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받고 복역 중인 안희정 전 충남지사를 언급해,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나왔다.

재판부는 검찰에 “안 전 지사의 경우 강제추행치상까지 없어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 사건 피해자도 외상 후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며 “이 사건에서는 어떤 점에서 그보다 더 중한 형이 선고돼야 하느냐”고 물었다.

이는 성범죄 행위에 따라 죄질의 차이가 있으며, 강제추행치상죄는 강간죄보다 가볍게 처벌해도 된다는 의미로 해석될 우려가 있다. 피해자를 지원해온 부산성폭력상담소의 서지율 부소장은 여성신문에 “맥락이나 의도를 떠나 부적절했다. 하지 않아도 될 말이었다”라고 말했다. 

검찰은 재판부의 질문에 대해 “(어떤 혐의가 인정되느냐에 따라) 법정형 자체가 다르고, 불고불리의 원칙(검찰이 기소하지 않은 혐의를 적용해 판결을 선고해서는 안 된다는 뜻)도 적용된다”며 “언론 보도와 법정에서 증거로 인정된 부분은 다를 수 있다. 상세한 내용은 서면으로 제출하겠다”고 답했다.

이날 공판 최후변론에서 오 전 시장은 피해자에게 거듭해서 “죄송하다”, “남은 인생은 피해자에게 사죄하는 마음으로 살겠다”고 말했다. 

서 부소장은 “뒤늦게 선처를 구하고 집행유예를 받으려는 전략 같다.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건만 이제야 벼랑 끝에 몰려서 하는 사과는 진정성 있는 사과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또 “권력의 크기만큼 책임이 따른다. 오 전 시장의 범죄는 일반인의 범죄와 똑같다고 볼 수 없다. 합리적인 양형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