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렐의 발명』 아돌포 비오이 카사레스 지음, 민음사 펴냄 ⓒ민음사
『모렐의 발명』 아돌포 비오이 카사레스 지음, 민음사 펴냄 ⓒ민음사

…나(모렐)는 허락을 받지 않은 채 여러분의 사진을 찍었습니다… 삶이 완벽하게 재현되는 무대를 상상해 보십시요… 우리는 영원히 살 것입니다… 모든 감각이 동시에 (재현되게) 작동하면 영혼이 나타납니다. 바로 내가 기다린 것입니다ㅡ모렐의 영원성은 바로 계속해서 작동되는 동력기관에 달려있다. (『모렐의 발명』 중)

아돌포 비오이 카사레스(1914-1999)는 그의 대표작인 『모렐의 발명』(1940)에서 기술발명이 일으키는 환상적 경험과 새롭게 펼쳐지는 욕망을 흥미롭게 보여준다. 모렐이 발명한 기계는 사람(송신자)의 모든 감각의 파동을 영상으로 기록해서(찍어) 실제 인물과 똑같이 재현한 ‘가상세계’를 보여주는데 찍힌 사람의 목소리, 냄새와 몸의 촉각등 모든 것이 그대로 재현되기 때문에 영혼까지 따라가서 그 기계에 찍힌 인물은 몸이 훼손되면서 사망에 이른다. 지금의 가상세계 ‘메타버스’와는 비교할 수 없는 ‘환상적’ 기술이다. 모렐의 기계가 재현해서 보여주는 인물들을 ‘진짜’사람들로 알았던 소설의 주인공은 그들중의 한 여성(포스틴)을 보면서 사랑에 빠진다. 포스틴은 기계에 찍혔기 때문에 사망했는데 기계의 환상적 재현이 주인공의 강렬한 사랑을 일으켰고 암울한 처지에 있던 주인공은 포스틴과 사랑을 나눌 미래의 꿈을 키우게 된다. 결국 주인공은 모렐의 기계에 기만당한 것을 알고 경악하지만 그 기계의 작동원리를 파악해서 이미 사망한 모렐을 ‘기술적’으로 복수해낸다.

주인공은 모렐의 발명보다 더 완벽한 기계를 상상하기도 한다. 사람들이 하고 있는 생각과 느끼는 감정을 영상으로 찍으면 알파벳(문자)으로 동시에 기록되는 기계가 언젠가 발명하게 되어 영상이 인간의 모든 경험을 품게되리라 생각한다. 그렇게되면 인생은 데이터를 공급하는 도구로 취급될 지 모른다. 전기과학자 모렐은 언젠가 인간은 스스로 자신의 삶을 만들어낼 것이라고 예언도 한다. 빅테이터 알고리즘 기술이 빠르게 업테이트되고 있고 인공지능 유사인간이 ‘현실’로 접근한 시대에 모렐의 예언은 헛말로만 들리지 않는다. 단 26세에 모렐의 발명을 쓴 비오이 카사레스는 과거와 현재뿐 아니라 다가올 미래도 앞당겨 최상의 시간을 ‘영원한 현재’로 포착해서 영원히 살고 싶다는 욕망을 매혹적인 소설로 발명해낸 것도 같다. 기발한 기술 발명을 상상하고 거기에 따르는 희비극을 흥미진진하게 구성해낸 ‘청년작가’는 우리가 이미 경험하는 ‘포스트휴먼’ 사회를 미래의 지평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우리의 기술적 상상력을 독려하는 것도 같다.

소설의 주인공은 사형을 피해 먼 무인도로 탈출해서 고독, 결핍과 불안에 맞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토인 ‘오스티나토 리고레’(ostinato rigore 끈질긴 엄격함)를 내면규율로 삼고 버틴다. 그러다 섬에 설치된 모렐의 기계가 상영한 포스틴을 보고 사랑에 빠지게 되었고 후에 그가 본 사람들이 모두 기계에 찍혔기때문에 살해된 정황을 파악하게 된다. 이 극악한 범죄는 전기과학자 모렐이 사랑하는 포스틴과 함께 보내는 시간을 ‘영원한 현실’로 만들려는 무도한 ‘낭만성’에서 계획되었다. 모렐은 섬의 규칙적인 조수를 이용한 발전동력이 영구히 작동되도록 설치했고 자신의 기계로 섬으로 초대한 포스틴과 친구 일행의 일주일을 몰래 촬영했다. 포스틴이 자신을 떠날 것을 알고 저지른 일이었다. 모렐은 현실에서 모두 사망해도 포스틴과 함께 한 시간을 찍어서 누구도 접근불가능한 섬에서 영구히 반복상영되게 한다면 그 기록만이 불멸의 진실이 되리라 믿고 자신의 욕망을 관철했다.

주인공은 증강현실(AR)과 같은 효과를 착안해서 포스틴과 자신이 사랑에 빠져 홀려있는 모습이 나오도록 모렐의 원본에 자신을 입혀찍어 자신의 영상이 반복 상영되도록 설치하는데 성공한다. 모렐의 욕망을 지우고 자신의 욕망을 ‘영원한 진실’로 남겨서 질투했던 모렐을 복수한다. 포스틴에 관한한 모렐의 원본도 허구지만 주인공은 그것을 또 다른 허구로 바꿔놓았다. 비오이 카사레스는 장구한 시간을 통해 우리가 ‘진실’로 알고있는 역사적 사실도 이처럼 허구들이 바뀌어온 것일 수 있음을 환기시킨다. 주인공 역시 자신을 모렐의 기계로 찍었기 때문에 훼손되는 몸으로 죽어간다. 마지막 순간에 자신은 탄압당해 사형의 위기에 처해졌던 베네수엘라의 애국작가이고 필사적인 탈출을 도와주었던 친구 ‘엘리사’를 떠올리며 그를 사랑한다는 것을 처음 자각하면서 포스틴은 바라보는 한 엘리사를 잊지 않겠다고도 하지만 떠오르는 현실의 고통스러운 기억을 완강히 누르고 (그의 모토인 ‘오스티나토 리고레’ 를 견지하면서) 영원한 포스틴과의 시간만을 의식에 남기려 한다.

허구와 반복재현의 진실효과, 욕망발현을 연출하는 신기술, 재현된 가상세계에서 향유되는 영원성 등등, 기술철학적 질문들을 던지고 있다. 반면 우리의 현실에선 소설에서 다루지않는 ‘자본의 역학’을 ‘디지탈 기술 대전환’기에 가장 중시하면서 미래의 위기를 부르고 있다. 소설 주인공이 생존방침으로 삼았던 모토, ‘오스티나토 리고레’적 기술심문이 필요하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