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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나 영화평론가▶

2월 막바지 경주에 특강을 다녀왔다. 공항에 주차를 하니 여느 때와 같이 '버튼을 누르고 주차권을 뽑아주세요'하는 기계적인 여자 목소리 안내가 나온다.

특강은 '젠더정치학으로 본 영화의 시선',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주제가 자연스레 시네마는 여성관객의 욕망에 온당하게 접속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간다. 영화세상, 그게 결국 카메라 시선으로 설정되고 구획되고 구조화되는데, 이게 남성주체 시선과 욕망을 중심으로 여성을 (성적)대상화하여 소비하는 쪽으로 과잉되어 있다, 는 식의 이야기에 한 남학생이 반론을 편다. 남자는 보는 데 약하고 여자는 분위기에 약하다는데, 영화는 보는 것이니 남성 관음증 촉발중심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일정 부분 근거가 있는 말이다. 시지각 심리학이나 여타 감각-두뇌반응 실험에 따르면 여성은 청각에 더 자극되고, 남성은 시각에 더 자극된다는 실험결과가 있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여성이 시각불감증이란 뜻은 아니다. 그저 청각에 더 예민하다는 것이다.

그러자 떠오르는 기억, 파리에서 떠돌 때 전화번호 안내원이 주로 남자였던 기억이다. 기계장치를 타면 더 달콤하게 들리는 프랑스어로 목소리 좋은 남자가 친절하고 유쾌하게 응대해 주니 전화값도 아깝지 않고 남루한 순간조차 일시적으로 기분이 좋아진다. 다른 서비스업종에서도 매너 좋은 남자가 좋은 목소리로 여성고객에게 친절한 안내를 하던 기억도 일상의 활력과 즐거움으로 떠오른다.

그런데 우린 어이하여 가는 데마다 기계에 담긴 목소리나 온갖 안내전화는 천편일률적으로 고양이 소리내는 여자목소리뿐인가. 오늘 아침만 해도 토지정보회사란 데서 아양떠는 여자 목소리로 대뜸 '사모님…'하며 말을 시작하는데 듣고 싶지 않다고 끊어버렸다.

어제 주차했던 빌딩에서도 여지없이 여자 목소리가 나온다. 엘리베이터를 타건 음식점이건 상점이건 여성고객이 상당수여도 진한 화장하고 짧은 치마 입은 어린 여성들만 기계인형처럼 까박까박 인사를 하고 아무 느낌 없는 진부한 친절멘트를 발음한다. 오히려 짜증이 난다.

상상해 보자. 주차하려는 데 좋은 남자 목소리로 주차권을 빼 가세요. 하는 걸 들으면 기분 좋지 않겠는가? 여성고객을 상대하는 전화에서 친절한 남자의 좋은 목소리를 듣는다면 대접받는 기분이 들지 않겠는가? 이 땅에서 경제활동을 하는 여성들에게 일상의 소비행위에서 그 정도 욕망도 충족받을 권한이 없는가? 나는 있다고 믿는다. 현명한 균형감각 갖춘 누군가가 남성 목소리 서비스를 시작하는 날이 어서 오기를 바란다. 그건 상투화된 여성 기계음에 질린 여성 고객의 당연한 욕망권 추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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