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정춘숙 더불어민주당 선대위 여성위원장

정춘숙 더불어민주당 의원 ⓒ홍수형 기자
정춘숙 더불어민주당 선대위 여성위원장 ⓒ홍수형 기자

20대 대통령 선거를 50여일 앞두고 젠더 이슈가 대선판을 흔들고 있다. 그러나 난무하는 구호 속에 정작 중요한 정책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다. 여성신문은 각 대선 후보 선대위원회를 통해 성평등 공약을 살펴보고자 한다. 첫 번째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의 성평등 공약을 총괄하는 정춘숙 선대위원회 여성위원장을 만났다. 여성‧복지 전문가인 정 위원장은 “젠더 폭력 근절 공약을 시작으로 노동시장 성차별, 낮은 여성 대표성 등 여성이 직면한 현실을 실질적으로 바꿀 수 있는 공약들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이재명 후보가 젠더폭력 근절 공약을 발표했다.

“‘여성이 불안하지 않은 나라, 모두가 안전한 사회, 이재명은 합니다’라는 구호 아래 젠더폭력 근절 4대 정책공약을 발표했다. 데이트폭력처벌법, 이른바 ‘황예진법’을 만들고 디지털 성폭력 원스톱 지원센터를 최소한 광역 단위별로 두겠다는 내용을 담았다. 디지털성범죄로 얻은 범죄수익 환수 위한 ‘독립몰수제’도 도입하려고 한다.”

-데이트폭력을 막기 위한 방안으로 ‘가정폭력처벌법(‘가정폭력 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 개정이 아닌 데이트폭력처벌법이라는 별도 법 제정을 추진하겠다고 했는데.

“가정폭력처벌법에 데이트폭력을 포함하는 방안도 검토했지만, 가정폭력처벌법이 처음 법 제정 당시 취지와는 다르게 실무에서 가해자를 보호하는 측면으로 가정 보호 및 유지가 목적조항으로 작동하고 있어 별도 법 제정을 추진하는 것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데이트폭력 등 ‘친밀한 관계에서의 폭력’을 다루기 위해서는 이름과 내용까지 싹 바꿔야 해 독립 법 제정보다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문제도 있다. 무엇보다 데이트폭력처벌법 제정은 피해자 유족과의 약속이다. 지난 11월 23일 이 후보가 고 황예진씨 부모님을 만나 두 시간 정도 대화를 나눴다. 피해자 어머니께서 가해자 가중처벌의 필요성을 이야기하며 법 제정을 요구했다. 황예진씨 부모님이 두꺼운 법전을 갖다 두고 공부를 하고 계셨다. 사건 당시 CCTV 영상을 얼마나 보셨는지, 보지 않고도 줄줄 읊고 너무나 원통해하셨다.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도 여러 말씀을 묵묵히 하시는데 무엇보다 ‘이런 비극은 우리 아이로 끝나야 한다’고 하셨다. 어머니가 청와대 국민청원을 올리며 싸우는 과정을 보며 또 다른 데이트폭력 피해자들이 ‘감사하다’, ‘힘내시라’는 어머니께 메시지를 보내온다고 한다. 어머니는 법 이름에 딸 이름을 꼭 써달라고 당부하셨다.”

-고 황예진씨 사건 가해자가 1심에서 징역 7년형을 받아 공분이 일고 있다.

“신뢰 관계에 있는 사람에게 폭력 피해를 받은 경우 가해자를 가중처벌하는 게 맞다. 가해자들은 피해자의 행동반경을 다 알고 있기 때문에 훨씬 더 위협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법원은 가중처벌은커녕 우발적이라며 봐주기식으로 판결하고 있다. 데이트폭력 가볍게 생각하는 인식 때문이라고 본다. 실제 데이트폭력는 욕설부터 살인까지 다 아우르는 용어다. 우리나라에서 성희롱으로 해석하는 성적 괴롭힘(sexual harassment)이 언어적 성희롱부터 살인까지 다 포괄하는 표현이지만 가볍게 인식되는 것과 비슷하다. 이번 가해자의 경우도, 그렇게까지 사람을 때리면 죽음에 이를 수 있다고 인식하지 못했다는 것이 말이 되지 않는다. 살인의 미필적 고의가 없었다면 그렇게 까지 폭력을 가하고 방치할 수 있었을까. 데이트폭력 등의 친밀한 관계에서의 폭력은 피해자를 고립시키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끊게 만들고 경제적으로도 피해를 주며 피해자의 삶을 전적으로 통제하려 든다. 가정폭력과 양상이 비슷하다. 데이트폭력이 중대 범죄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재명 후보의 여성·성평등 공약 중 핵심 정책은 무엇인가.

“내부적으로 문재인 정부 5년을 평가했을 때, 젠더폭력 관련해선 여성폭력방지기본법을 만드는 등 법제도적으로 진전이 있었다. 하지만 노동 분야는 변화가 더디다는 평가가 많았다. 그래서 앞으로 내놓을 여성노동 공약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아직 다듬고 있지만 방향은 여성이 직면한 환경을 실질적으로 바꿀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임금 공시제를 도입했을 때 실효성을 높일 수 있는지에 방점을 두고 프로세스 구축에 중점을 두고 있다. 법과 정책은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시행이 더 중요하지 않나. 여성의 노동 환경을 바꿀 수 있도록 실질화 하는 것에 초점을 두고 공약을 만들고 있다. 실제로 여성에 대한 폭력, 여성이 겪는 사회적 차별, 여성의 낮은 노동시장 참여율, 성별임금격차는 모두 연결돼 있다. 일터에서 성희롱을 당하는 경우를 살펴보면 인턴, 비정규직 상태에서 상급자에 의해 성희롱을 당하는 경우가 많다. 조금 더 디테일하게 노동시장의 성평등 문제를 다뤄야 한다. 이밖에도 여성의 정치 대표성 강화도 공약에 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가령, 공직선거법에서 지역구 후보 추천 시 한 성별이 60%를 넘지 않도록 하자는 주장도 있고, 여성후보 30%를 의무 공천을 하는 법안도 발의한 상태다. 공약에 넣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난임·임신중단·HPV백신’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 공약도 내놨다. 핀셋 정책이라는 호평과 함께 건강보험 재정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HPV(사람유두종) 바이러스 백신의 경우, 지금까지 만 12세 여성 청소년만이 무료접종 대상이었고 올해부터 만 12~17세 여성으로 무료접종 대상이 확대된다. HPV 바이러스로 인해 자궁경부암, 항문암이 발병했을 때 생기는 사회적 비용을 고려하면 더 적은 비용으로 예방효과가 큰 백신을 지원하는 편이 적절한 대책이라고 할 수 있다. 건강보험 재정은 돈을 쌓아놓는 것이 아니다. 1년씩 하는 단기 보험이다. 돈이 쌓여 있다는 것은 오히려 적정하게 보장해야 할 것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건강보험을 가입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국민연금처럼 나중에 돈을 찾는 것이 아니라 당장 필요할 때 건강을 찾는 것이다. 국가는 적극적으로 질병에 대한 비용 부담을 해줘야 한다. 난임과 피임에 대해서도 지원하는 것 역시 아이를 낳고 싶은 사람은 낳을 수 있도록 지원하고, 낳을 수 없는 상황은 안전하게 임신중단할 수 있도록 지원해 국민이 지속가능한 삶의 질을 지원해주기 위한 것이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일곱 글자로 ‘여성가족부 폐지’를 선언했다. 이재명 후보는 여가부를 ‘평등가족부’나 ‘성평등가족부’로 명칭을 바꾸자고 제안했는데.

“부처 명칭을 바꾸고 재정비 하자는 취지다. 일단 이 후보는 없애고, 반대하는 것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여가부는 일을 하고 싶어도 제대로 하기 힘든 적은 인력과 예산을 가진 미니부처다. 국토교통부나 기획재정부가 큰 문제를 저지르더라도 아무도 이 부처들을 없애자고 하지 않지만 여가부는 무조건 폐지를 운운한다.

현재 여가부 예산의 80%가 가족, 청소년 업무에 배정돼 있다. 또 다른 기능인 모든 부처의 여성정책을 총괄하는 중앙 컨트롤 기능을 하고 있다. 여가부의 영문 이름은 ‘Ministry of Gender Equality & Family’를 살리고 성차별 시정 기능, 성주류화와 여성노동, 여성건강 등의 본래 사업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고 본다.”

-여성 유권자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올해는 대선과 지선이 있는 정치의 계절이다. 정치 지도자를 뽑는 것은 우리의 미래를 누구에게 맡길 것이냐를 결정하는 중요한 선택의 순간이다. 이 때 자신의 목소리를 강하게 내야 사회를 바꾸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조금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관심을 갖고 귀를 기울이고 목소리를 내고 투표소로 향해야 한다. 외면하고 의견을 내지 않으면 아무도 돌아보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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