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직속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여성신문 공동기획
[여성농업인, 농어촌 미래의 힘이다]
[인터뷰] 이선화 지내들 영농조합법인 사무장

이선화 지내들 영농조합법인 사무장 ⓒ대산농촌재단
이선화 지내들영농조합법인 사무장 ⓒ대산농촌재단

전남 영광군 군남면 죽신마을. 남도의 농촌마을에 ‘지내들영농조합법인’(이하 지내들)이 자리 잡고 있다. 지역에서 나는 보리로 간편하게 조리할 수 있는 상품을 개발해 온라인 라이브 방송 등을 통해 비대면 매출 상승을 이어가는 탄탄한 마을기업이다. 이 곳 기획팀장을 맡고 있는 이선화(38)씨는 “들녘에서 나오는 보리의 판매를 책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가구 디자이너로 10년 일하다
2016년 고향인 영광으로 귀농

지내들은 평범한 듯 비범하다. 영광군 군남면 일대는 2010년 전국 유일의 보리산업 특구지역으로 지정됐다. 그러나 2012년 정부의 보리 수매가 중단으로 위기를 맞았다. 선화씨 아버지 이성래씨는 마을 보리를 거둬서 28t(톤) 대형트럭에 실어 판매하는 일을 맡았다. 자구책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지켜볼 수만은 없었던 어머니 김순례씨와 마을 여성들이 십시일반 힘을 보태기로 마음먹고 영농조합법인을 세운 게 지내들의 시작이다. 당시 마을 주민 9명으로 시작한 지내들은 어느새 40여 농가와 함께 하는 기업으로 훌쩍 컸다. 판로를 지원하는 농가는 100여곳, 한 해 약 800톤의 보리가 지내들을 거치고 있다.

“처음 시작할 때 함께하신 마을 분들이 정말 힘들었을 텐데 그래도 서로 믿고 의지하며 영광의 보리쌀을 알리기에 전념하신 덕에 이 정도의 성과를 낼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무엇보다도 지내들마을기업은 마을주민이 똘똘 뭉치는 공동체성 하나는 자신 있거든요. 그것이 바로 지금의 지내들마을기업 성과의 원동력이 아닐까 싶습니다.”

기업의 위상도 높아져 군을 대표하는 경쟁력 있는 기업으로 안착했다. 2020년 행정안전부가 주관하는 ‘전국 우수마을기업 경진대회’에서 최우수 마을기업으로 뽑혔고 2021년에는 ‘모두애(愛) 마을기업’에 선정돼 행정안전부로부터 사업개발비 1억원을 지원 받는 쾌거를 이뤘다.

평범했던 마을기업에 활기를 불어넣은 사람이 선화씨다. 미술학도였던 그는 디자이너를 꿈꾸며 전북대 미대에서 디자인을 전공했다. 곧 바로 가구 디자이너의 꿈도 이뤘다. 10년 간 가구 회사에서 자신의 디자인으로 제품을 만들어내며 보람을 느꼈지만 농업이라는 새로운 꿈을 만나며 인생의 행로를 틀었다.

“사실 대학에 진학하면서 다시는 농촌으로 돌아오지 않겠다고 결심했었어요. 열심히 공부해서 도시로 진학하는 것이 당시 많은 시골학생들의 목표였어요. 그렇게 도시에서 대학교도 다니고 가구디자이너로 10년을 근무하다 보니 고향이 또 그리워졌어요. 도시생활에 지친 몸과 마음을 위로할 곳이 고향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때마침 고향에 계신 부모님이 마을기업을 운영하셨고, 온라인 판로 확보에 제가 도움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해 고향으로 돌아왔죠.”

비지니스로서의 농업 가능성을 확인한 선화씨는 2015년 8월, 광주의 가구 회사를 그만두고 고향인 영광으로 돌아왔다. 이듬해인 2016년 본격적으로 지내들영농조합법인의 홈페이지를 개혁했고, 그 해 4월 마을 체험장을 활용한 매장도 열었다. 낮에는 약 5000평 규모의 땅에 홍미, 향찰 등 쌀과 보리를 재배하고, 밤에는 제품 디자인과 홍보·판매에 주력했다. 디자이너로서의 경험도 지내들 브랜드 구축에 녹여 냈다. 1인 가구 증가와 달라진 소비 패턴을 반영해 기존 5kg과 10kg 포장을 1kg과 2kg 등의 소포장으로 바꿨고, 포장지 디자인도 소비자들 눈높이에 맞춰 디자인했다. 선화씨 손을 거쳐 판매되는 지역 농산물만 매년 500톤에 달한다. 온라인 매출은 5년 만에 6억원대로 성장했다.

지내들영농조합법인과 함께 하는 마을주민들. 이선화 사무장은 지내들이 일군 성과의 원동력으로 마을주민의 탄탄한 공동체성이라고 말했다. ⓒ대산농촌재단
지내들영농조합법인과 함께 하는 마을주민들. 이선화 사무장은 지내들이 일군 성과의 원동력으로 마을주민의 탄탄한 공동체성이라고 말했다. ⓒ대산농촌재단

디자인 전문성 살려 브랜드 구축
전국 최우수 마을기업 선정 돼

귀농 초기엔 주변의 따가운 시선이 가장 힘들었다고 했다. 청년 귀농인에 대한 편견 때문이었다.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고향에 내려온 그를 둘러싸고 ‘회사에서 잘렸다’, ‘결혼에 실패했느냐’는 소문이 퍼졌다. 5년 전만 해도 청년 귀농이 많지 않았기에 선화씨에 쏠리는 관심은 컸다. 일에도 적응해야 했지만 농촌 지역사회 안에 녹아내려 구성원으로 인정받는 것도 중요했다. 그래도 선화씨는 귀농을 후회한 적은 없었다고 했다.

“귀농을 후회한 적은 사실 단 한 번도 없어요. 결혼해 남편은 부산에 살고있지만 저는 도시보다 확 트인 농촌이 너무 좋거든요. 빌딩숲보다 나무숲에서 살고 있고 자연과 동반하는 이 삶 자체가 행복이에요. 대부분 도시로 떠나고 직장생활하고 출산, 육아를 거치며 새로운 가족을 만들어가잖아요. 그런데 저는 하루 세끼를 부모님과 함께 먹고, 마을 분들과 담소를 나누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데 여유롭고 평화로운 이 생활이 정말 좋아서 못 떠날 것같아요.”

선화씨의 정착을 지켜 본 가족들도 연이어 귀농을 선택했다. 선화씨에 이어 언니와 남동생도 영광으로 돌아와 지역에 정착했다. 청년 귀농인이 늘어나면서 마을은 더욱 활기를 띠고 있다. 선화씨는 마을기업에서 일을 하며 ‘함께하는 가치’를 배운다고 했다. 땀을 쏟는 만큼 내어주고 나누는 만큼 되돌려 받는 농촌에서 마을주민들과 함께 일하며 상생을 몸소 체감하고 있다. 그는 “부모님과 이웃들이 제게 베풀어 준 것처럼, 이곳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삶의 터전이 되도록 만들고 싶다”고 했다. 어른들이 지금까지 지켜온 공동체를 돌아온 청년들과 함께 이어나가고 싶은 것이 소망이다.

“제일 뿌듯한 일은 어르신들과 함께 웃으며 생활한다는 것이에요. 어르신들만 계시면 적적하잖아요. 그런데 제가 내려오고, 언니와 남동생까지 내려오면서 청년들이 마을을 함께 지켜나가고, 그 사이 결혼과 출산으로 마을에 아이들 웃음소리도 나거든요. 훨씬 활기차고 마을이 밝아졌다고 할까요?”

선화씨는 청년 귀농인 간의 네트워킹에도 앞장서고 있다. 서로의 고민을 털어놓고 함께 머리를 맞대다 보면 문제의 실마리가 풀려 나가는 식이다. 귀농 6년차 ‘선배’로서 자신과 같은 길을 걷는 여성동료들이 시행착오를 겪지 않기 바랬다.

“여성농업인으로 농촌에서 살아가는 게 쉬운 길은 아니에요. 그러나 함께하는 주변 동료들이 있으니 언제든 오라고 해주고 싶어요. 농촌은 혼자가 아닌 함께 살아가는 곳이거든요. 혼자 힘들지 않아도 되고 우리와 함께 마을 주민들과 함께라면 인생이 즐거울 거라고 생각해요.”

선화씨는 최근 ‘사회적기업’이라는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할매곳간(주)농업회사법인’을 시작해 지난 9월 예비사회적기업으로 지정받았다. 사회적기업진흥원을 통해 사회적기업가육성사업으로 일군 기업이다. 농촌으로 돌아와 자신이 배우고 얻은 것을 지역사회에 돌려주고 싶은 마음에 시작한 일이다.

“앞으로 지내들 마을기업에서 배운 것을 바탕으로 좀 더 발전해나가고 싶어요. 할매곳간이라는 기업의 이름처럼, 할머니들과 청년이 어우러져 할머니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지역사회에 사회적서비스를 제공하는 멋진 일을 성공적으로 해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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