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안의 엄숙주의 깨는 기발한 재치 비판적 시각 결여될까 우려의 목소리도

대중적인 관심사 패러디

허를 찌르는 웃음과 재치 성차별적 시각 경계해야

'수년간 청상 생활한 상궁 연생-처음엔 얼굴도 못 알아봐… 눈물의 체험 수기' '성기능장애설 홍역 치른 주상 전하-“나도 남자… 죽도록 괴로웠다”' '함께 조선 의학계를 이끌어 갑시다. 열이, 장금에게 제안-잔잔한 감동' '세기의 난제, 장금퀴즈 풀었다! 대비전-수랏간 공동 연구진이 이룬 쾌거' '별책부록-민정호 나으리 대형 브로마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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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대장금>의 팬이 만든 패러디 잡지 '월간 궁녀' 2월호 표지.▶

요즘 유행하는 패러디 잡지의 기사 제목들이다. 내용은 드라마 <대장금>을, 문구와 표현은 종합여성지를 패러디 했다.

“처음엔 진짜 잡지인 줄 알고 너무 놀랐는데, 드라마 패러디한 잡지라길래 아이디어가 너무 기발해 한참을 웃었어요.” 드라마 <대장금> 마니아인 직장인 정지영(30)씨는 우연히 '월간 궁녀'표지를 보고 배꼽이 빠져라 웃은 경험이 있다. '충격고백' '체험 수기' '잔잔한 감동'등 실제 여성지를 볼 때는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쳤던 문구들이 어이없는 웃음을 흘리게 하며 전혀 다른 반응을 불러 온 것이다.

지난 1월 2일 첫 호를 공개한 '월간 궁녀' '월간 의녀'에 이어 지난 달 7일 '내시도 선택하는 고감도 궁녀지'를 표방한 '궁녀센스'가 첫 선을 보였다. 이에 “표지에 있는 영어를 한글로 고쳐야 한다” “다음 호가 기다려진다” “진짜 잡지로 만들자”등 네티즌들의 반응이 뜨겁다.

표지만 제공된 기존의 잡지와 달리 '궁녀센스'는 12페이지 분량의 기사들까지 실려 있다. '열광의 궁궐노래자랑 시상식' '<앞치마 휘날리며> <살려도> 접전' '궁중복식 디자이너 안두레 김 영감 즐거운 인터뷰'등 마우스를 움직여 페이지를 넘기면 관련 기사를 볼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만들고 보는 이들이 모두 드라마 <대장금> 열렬 팬인 이들은 일방적으로 드라마 게시판에 글을 올리는 것보다 같은 관심사를 가진 이들끼리 소통할 수 있다는 장점으로 패러디 잡지를 택하고 있다. 그 날 방송된 내용은 물론 인물들의 표정, 말투, 결말까지 패러디 잡지에 담아 팬들이 직접 참여하고 만들며 평가하는 소통의 매개체로 삼고 있는 것이다.

'월간궁녀'를 만든 허승혁(26)씨는 리디팍스(reedyfox)라는 아이디를 쓰는 '애호 대장금'의 열렬 회원이다. '리디의 대장금 패러디 카툰'을 연재하고 있는 허씨는 홈페이지에 “'월간 궁녀'를 패러디한 의미는 조선시대에 있었을 법한 서책을 재현해내는 것이 아니라, 현대 여성월간지의 형식 속에 대장금 스토리를 담아내는 것에 있다. '월간 궁녀'가 갖는 유머 요소 역시 그 점에 있다”고 밝히고 있다. 표지에 일반인들의 얼굴을 합성한 '월간궁녀'를 무료로 제공하는 있는 허씨는 이어 '오마이 궁녀'와 '선데이 궁녀'를 계속해서 발간할 예정이라고 한다.

주변의 반응에 힘입어서인지 패러디 노래, 잡지, 소설, 사진 등이 꾸준히 생산되고 있다. 그야말로 패러디 전성시대라 할 만하다.

패러디는 본래 '저명 작가의 시의 문체나 운율을 모방해 그것을 풍자적 또는 조롱삼아 꾸민 익살스런 시문'이란 뜻이다. 원전이 가진 '아우라'가 강하면 강할수록, 재미있거나 의미 있을수록 이를 패러디하려는 시도가 빈번히 일어난다. 패러디의 원조격이라 할 수 있는 <딴지 일보>의 경우 정치, 경제, 사회 등 시사적인 문제들을 패러디해 폭넓은 마니아층을 형성한 바 있다.

현재 각종 정치 토론 사이트에 등장하는 패러디는 그 흐름과 맥을 같이 한다. 노무현 대통령, 강금실 장관,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 등을 강호의 자객으로 패러디한 '대선자객' '노(盧)브레인 서바이버' '정치병장' '실성도'등이 그 예. 그런가 하면 드라마, 영화 등 대중문화에 대한 패러디가 부쩍 늘어 화제의 인물, 인기를 끌었던 소재나 문제들은 빠지지 않고 패러디의 대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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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자객>은 정치 패러디 카툰이다. 사진은 강금실 장관을 패러디한 모습.◀

'안티'층이 광범위한 가수 문희준은 네티즌들 사이에 자주 등장한 패러디 소재였고, 독도 관련 발언을 한 고이즈미 총리, 이승연 누드 파문도 이를 패러디한 포스터나 카툰이 공개돼 일반인들의 정서적인 지지를 얻는 데 한몫 했다. 패러디가 주는 파급력이 그만큼 강한 것이다. 문화평론가 김종휘씨는 “패러디의 짧은 문구나 사진들은 어떤 평론, 장문의 글 보다 오감에 입체적으로 다가오는 것들이다”고 말한다.

패러디가 하나의 문화현상으로 나타나 대중들의 목소리를 담는 도구로 쓰이는 데는 긍정적인 평가가 주를 이룬다. 김종휘씨는 “만든 사람의 기획이 개입되고 나의 주장과 발언으로 참여한 흔적을 남길 수 있다는 것, 같은 관심사를 가진 이들끼리 대등하게 대화할 수 있다는 것은 패러디의 장점”이라 평했다.

드라마 <대장금>의 경우 궁중에서 암투를 일삼는 존재로 그려졌던 여성을 주체적인 존재로 묘사하고 한상궁과 장금이의 각별한 정을 동지적 관계로 조명, 동성애 코드로 읽은 것 등은 동성애에 대한 기존의 이해를 달리한 긍정적인 패러디라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문화평론가 김정란씨는 “패러디가 주는 웃음은 엄숙한 것들이 깨지는 쾌감이다. 그 동안 엄숙하게 근거로 삼았던 종교, 철학, 예술 등의 준거틀이 없어지면서 이제는 대중들의 관심을 끄는 대중문화가 그 준거틀이 되고 있다. 그 텍스트가 수많은 독자들에게 넘겨져 무한히 증식하면서 다양한 의미 작용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라고 분석했다.

반면 원전을 지나친 우스개 거리로 삼고 이를 추종하거나 반복하는 측면은 문제로 지적된다. 김정란씨는 “패러디가 비판적인 방식으로 진행되지 않고 기존의 성차별, 계층 차별적인 시각을 재생산한다면 이는 문제다. 대중들이 가진 비판적 시각이 들어가 원전에 대한 창조적 해체와 재구성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임인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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