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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가구인 정세진(36)씨는 최근 중고거래를 통해 식기세척기를 구매했다. SNS에 식기세척기 구입 인증샷을 올리자 지인이 ‘3대 이모님’을 모셔 왔냐고 댓글을 달아 당혹스러웠다. 정씨는 “‘이모님’이라는 글자에서 기분이 묘했다”며 “장난삼아 한 말이었을 텐데 전혀 유머 같지 않았다”고 말했다.

식기세척기·건조기·로봇청소기는 일명 ‘3대 이모님’으로 불린다. 가사도우미를 ‘이모님’이라 부르는 데서 생긴 말이다.

1인 가구인 정세진(36)씨는 최근 중고거래를 통해 식기세척기를 구매했다. SNS에 식기세척기 구매 인증샷을 올리자 지인이 ‘3대 이모님’을 모셔왔냐고 댓글을 달아 당혹스러웠다. 본인 제공.
정세진(36)씨는 최근 중고거래를 통해 식기세척기를 샀다. SNS에 식기세척기 구입 인증샷을 올리자 지인이 ‘3대 이모님’을 모셔왔냐고 댓글을 달아 당혹스러웠다고 말했다.  본인 제공.

‘이모님 가전’은 온라인 커뮤니티 뿐 아니라 언론 등에서도 자주 쓰인다. 인스타그램엔 식기세척기·건조기·로봇청소기의 사진과 함께 #3대이모님 #3대이모님완비 #3대이모님중한분 등의 해시태그가 100여개 이상 달렸다. 누리꾼들은 블로그 등에  “가사노동에서 해방되고 싶어 3대 이모님 다 모셨다”, “3대 이모님 들이니 삶의 질 높아진다”고 썼다. 언론에서도 <'3대 이모님’ 덕에 집안일 가뿐하네…>, <“3대 이모님 없이는 못 산다”> 등으로 헤드라인을 붙였다.

그러나  가전을 '이모님'으로 지칭하는 것은 다분히 성차별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가사노동은 여성의 몫이라는 고정관념을 대변 내지 확대재생산한다는 것이다. 누리꾼 S씨는 “여성에 대한 편견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호칭 같아 싫다”며 “차라리 가전 3신이나  3대 가전으로 불렀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누리꾼 O씨도 “식기세척기는 식기세척기, 음식물처리기는 음식물처리기라고 부르면 된다”며 “왜 이모님이라는 호칭을 쓰는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이런 말이 생긴 바탕엔 여성의 가사노동 실태가 있다. 여성가족부가 지난 9월 양성평등주간을 맞아 발표한 ‘20201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에 따르면 2019년 맞벌이가구의 여성 가사노동시간은 3시간7분으로 남성(54분)의 3.5배에 달했다. 남편 외벌이가구에선 여성(5시간41분)이 남성(53분)의 6.4배였다. 아내 외벌이가구조차도 여성(2시간36분)이 남성(1시간59분)의 1.3배 더 가사노동에 매달린 것으로 나타났다.

최영미 한국가사노동자협회 대표는 “1990년엔 전기밥솥도 가사노동을 줄여주는 ‘신(神)기’로 불렸다”며 “‘3대 이모님’이라는 말은 여성이 가사노동을 전담해야 한다는 전근대적 인식에서 나온 용어 같다”고 말했다. ‘이모님’이라는 호칭에 대해서는 “가사노동의 직업화가 더디다. 우리는 ‘가사관리사’라고 칭한다”며 “하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이모님’ 혹은 ‘할머님’ 으로 불리는 등 정확한 직업 명칭이 없다”고 얘기했다. 이모 나 아줌마 등으로 불리던 가사도우미의 호칭은 그러나 사회 인식 캠페인 등을  통해 점차 가사관리사로 바뀌고 있다.

'3대 이모님'이라는 용어도 3대 가전이나 가전 3신 등으로 바꿔 쓸 수 있다. 최 대표는 “3대 이모님이라는 용어 대신 3대 가전, 가전 3신 등 대체할 수 있는 단어는 많다”며 “여성·소비자 단체들과 함께 이같은 명칭 문제에 대해 논의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됐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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