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룰루(크리스티네 셰퍼)의 손에 죽는 쇤 박사. 1995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공연.◀

“관능은… 온갖 존재와 사유의 핵심축이다.”

이렇게 말한 독일 작곡가 알반 베르크(1885∼1935)는 오페라 <룰루>를 통해 자신의 선언을 예술적으로 형상화했다. 프랑크 베데킨트가 쓴 희곡 <땅의 정령>과 <판도라의 상자>를 토대로 한 이 오페라는 요즘 여성들이 열광하는 '팜므 파탈(femme fatale)' 이야기. 대단한 성적 매력과 지적 능력으로 여러 남자를 유혹해 그들의 인생을 파멸에 이르게 하는 '요부'형의 여성을 뜻하는 조어다.

요즘은 팜므 파탈이 되고 싶어 의식적으로 노력한다는 얘기를 주변에서 많이 듣는데,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여성성에 대한 자부심을 갖는다는 면에서는 좋은 일이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여성이 새로운 형태의 왜곡된 권력욕에 지배되는 것 같아 씁쓸하기도 하다. 팜므 파탈이 운명적인 형태로 존재한다는 것은 사실 남성들의 피해의식 혹은 환상에 불과하다.

한편으로는 유혹 받고 싶어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삶을 망칠까봐 겁을 내는 나약한 남자들이 만들어낸 신화인 셈이다. 그러니 여성들의 입장에서는 팜므 파탈이라는 시류에 편승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조작된 환상을 깨려고 해야 하는 게 아닐까? 이 오페라의 여주인공 룰루는 남편이 있지만 출판사 편집장인 쇤 박사를 애인으로 두고 있으면서 또 자신을 모델로 그림을 그리는 화가를 적극적으로 유혹하는, 관능과 욕구의 화신이다.

어느 날 남편이 화가와 룰루의 관계를 자기 눈으로 확인하고 심장마비로 죽자 자유로운 몸이 된 룰루. 쇤 박사는 룰루와의 관계를 정리해 보려고 화가를 부추겨 룰루와 결혼하게 만들어 놓고, 정작 두 사람이 결혼하자 화가에게 룰루가 어떤 여자인가를 미주알고주알 털어놓는다. 그러자 룰루의 실체에 충격을 받은 화가는 절망에 빠져 자살한다. 쇤 박사의 소개로 무대에 진출하게 된 룰루는 쇤의 아들 알바와 사귀고, 연극을 벌여 쇤을 약혼녀와 갈라놓은 뒤 그와 결혼한다. 아들과 룰루의 관계를 알게 된 쇤은 룰루에게 자살을 종용하지만, 룰루는 그 총으로 쇤을 쏘아 죽인다.

재판을 받고 감옥에 들어간 룰루. 이번에는 룰루를 사랑하는 레즈비언 백작부인이 그녀를 탈출시켜 주고, 룰루는 쇤의 아들 알바와 결혼해 백작부인과 함께 파리로 간다.

체조선수 로드리고와 늙은 건달까지 합류해 한 가족이 된 이들은 룰루에게 몸을 팔게 해 살아가는데, 주식투자로 전 재산을 날린 알바는 손님과 싸움을 하다가 죽고 룰루와 백작부인은 희대의 살인마 '잭 더 리퍼'의 칼에 찔려 죽는다.

우울하고 어두운 결말이지만, '이것이 팜므 파탈의 최후'라는 투의 교훈극은 아니다. 어린아이처럼 자신의 욕구에 충실할 뿐 그런 자신으로 인한 다른 사람의 고통이나 죽음에 철저히 무관심한 룰루 역시 현실 속의 인물이라기보다는 남성들의 환상이 창조한 '인격을 배제한 인간형'이기 때문이다.

당시의 주식 투기와 관련해 첨예한 자본주의 비판도 담고 있는 이 오페라의 작곡가 베르크를 나치 정부는 '퇴폐 예술가'라고 낙인찍었고, 그래서 이 작품은 그가 세상을 떠난 뒤에야 스위스 취리히에서 초연될 수 있었다.

이용숙|음악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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