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그램 성착취 ‘범죄단체’ 인정
‘레깅스 불법촬영’ 유죄도 좋은 판결 선정
최악의 ‘걸림돌’ 판결은
가습기살균제 사건 무죄 판결

변희수 하사의 전역처분취소송의 1심 선고가 열린 10월 7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앞에서 변희수 하사의 복직과 명예회복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가 '변희수 하사를 기억하며 차별과 혐오를 건너는 밤' 추모식을 진행했다. ⓒ홍수형 기자
변희수 하사의 전역처분취소송의 1심 선고가 열린 10월 7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앞에서 변희수 하사의 복직과 명예회복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가 '변희수 하사를 기억하며 차별과 혐오를 건너는 밤' 추모식을 진행했다. ⓒ홍수형 기자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이 올해 최고의 판결로 트랜스젠더 군인 고(故) 변희수 육군 하사를 강제전역 처분한 군의 결정이 부당하다고 본 판결을 선정했다. 최악의 판결로는 가습기 살균제 제조·판매 기업인 SK케미칼, 애경산업 등에 무죄를 선고한 1심 판결을 꼽았다.

민변은 6일 ‘한국인권보고대회’를 열고 인권 향상에 기여한 ‘디딤돌’ 판결, 반대로 부정적 영향을 미친 ‘걸림돌’ 판결 선정 결과를 발표했다.

변 하사 강제전역처분 취소 판결이 만장일치로 올해 최고의 ‘디딤돌’ 판결로 선정됐다. 대전지법 행정2부(오영표 부장판사)가 지난 10월 7일 내린 판결이다. 민변은 “이 판결은 군인이 복무 중 성확정수술을 받고 성별 정정을 했다는 사실만으로는 전역처분을 할 수 없음을 명확히 하고, 합리적 차별을 가장한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를 짚어냈다”고 설명했다.

이외에도 ▲조주빈 등이 텔레그램 채팅방에 기반해 조직적으로 활동한 것을 성착취 범죄단체로 인정하고 유죄 판결(대법원 2부 주심 이동원 대법관), ▲일본군‘위안부’에 대한 일본국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최초의 판결(서울중앙지법 민사34부 김정곤 부장판사), ▲‘자기 의사에 반해 성적 대상화되지 않을 자유’를 처음으로 인정하고, ‘성적 수치심’은 분노, 모욕감 등 다양한 피해감정을 포함한다며 ‘레깅스 불법촬영’ 유죄를 확정한 판결(대법원 주심 김선수 대법관) 등 여성 인권 향상에 기여한 판결이 ‘디딤돌’ 판결로 꼽혔다.

아울러 ▲난민의 가족결합권 범위를 확대한 법원 판결(김민혁군 아버지 난민인정 사건, 서울행정법원 행정5단독부 이새롬 판사), ▲종전 용역업체 소속근로자에게 새로운 용역업체로의 고용승계 기대권이 인정됨을 전제로, 새로운 용역업체의 합리적 이유 없는 고용승계 거부를 부당해고와 마찬가지라고 판단한 판결(대법원 제1부 주심 이흥구 대법관), ▲노인성 질병 장애인의 장애인 활동지원급여 신청자격제한 조항이 평등원칙에 위배된다는 헌법재판소 결정, ▲양육 상태의 변경을 가져오는 양육자 지정 및 외국인 배우자의 한국어 소통능력과 양육적합성에 관한 판결(대법원 가사2부 주심 민유숙 대법관), ▲검사의 보복기소를 인정해 원심의 공소기각판결을 확정한 판결(대법원 제1부 재판장 박정화 대법관),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에 대한 헌법재판소 위헌결정도 올해의 좋은 판결에 선정됐다.

인체에 유독한 원료 물질로 만들어진 가습기 살균제를 유통·판매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SK케미칼·애경 전 대표와 임직원들이 1심 무죄를 선고 받은 1월 12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조순미 씨가 선고 결과를 듣고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여성신문·뉴시스
인체에 유독한 원료 물질로 만들어진 가습기 살균제를 유통·판매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SK케미칼·애경 전 대표와 임직원들이 1심 무죄를 선고 받은 1월 12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조순미 씨가 선고 결과를 듣고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여성신문·뉴시스

최악의 ‘걸림돌’ 판결에는 가습기살균제 사건 관련 애경 무죄판결(서울중앙지법 형사23부 재판장 유영근 부장판사)을 선정했다.

민변은 “이 판결은 환경사건의 특성인 장기누적성, 광역성, 정보의 편중성, 이익과 손해의 일방성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안”인데도, “법원은 인과관계 입증에 있어 동식물실험 결과의 제한적 신뢰성과 한계가 있음에도 이에 대해 지나친 증거가치를 부여했다. 추론을 통한 사실인정과 과학적 해석방법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해 전문가 증인의 증언이 단정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배척함으로써 사법적 구제를 포기했다”고 비판했다. 또 “유해화학물질에 대한 기업의 사전배려, 사전예방원칙에 따른 주의의무를 경감시켜 향후 유사한 사안에 대한 면죄부를 제공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외에도 △헌법재판소의 임성근 전 부장판사 탄핵소추 각하결정, △인공지능 챗봇 ‘이루다’에 의한 인권침해와 차별 진정에 대한 국가인권위원회 각하결정, △세월호참사 당시 해경 책임자들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판결(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 양철한 부장판사),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전범기업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를 각하한 판결(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4부 김양호 부장판사) △업무와 재해 사이의 상당인과관계의 증명책임은 업무상의 재해를 주장하는 근로자 측에게 있다고 본 기존의 법리를 유지한 판결(대법원 전원합의체 주심 김재형 대법관), △장신대 부당징계처분에 대한 손해배상 의무를 인정하지 않은 판결(서울동부지방법원 민사16부 우관제 재판장), △신고리원전 5, 6호기 건설허가처분 취소 기각 판결(서울고법 행정10부 이원형 부장판사), △미비한 통역 등에도 불구하고 캄보디아구국당 난민신청자에 대한 출국 명령이 적법하다고 판단한 판결(서울고등법원 김시철 부장판사), △제주영리병원(녹지국제병원) 허가 취소처분이 정당하였다고 본 원심판결을 번복한 항소심 판결(광주고법 제주 행정1부 재판장 왕정옥 부장판사)가 ‘걸림돌’ 판결에 올랐다.

‘2021년 10대 디딤돌·걸림돌 판결 선정위원회’(위원장 이상희 민변 공익인권변론센터 소장)는 2020년 11월 1일부터 올해 10월31일까지 나온 판결·결정을 심사해 10대 디딤돌·걸림돌 판결을 선정했다. 사건의 특징, 기존 판례와의 견해 차이, 사회에 미친 영향, 인권 증진 기여도를 주요 심사 기준으로 삼았다. 선정위원으로는 유진아 활동가(장애여성공감), 임용현 활동가(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박은정 교수(인제대 법학과), 박정은 사무처장(참여연대), 윤애림 교수(서울대 법학연구소 책임연구원), 임지봉 교수(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전현진 기자(경향신문), 조수진 변호사(민변 사무총장), 안지희 변호사(민변 사무차장), 강문대 변호사(민변)가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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