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피해자 헌법소원에
검찰의 가해자 감금 혐의 불기소 처분취소 결정
“행동의 자유 구속하면 감금죄 성립 가능”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 ⓒ뉴시스·여성신문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 ⓒ뉴시스·여성신문

몸을 못 가누는 여성을 차에 태워 내리지 못하게 하고 추행한 50대 남성. 검찰은 이 남성에게 감금죄가 적용되지 않는다고 봤으나 헌법재판소에서 뒤집혔다.

헌재는 성폭력 피해자 A씨가 ‘가해자의 감금 혐의를 불기소한 검찰의 처분을 취소해달라’며 낸 헌법소원에서 재판관 전원 일치 의견으로 처분 취소 결정을 했다고 3일 밝혔다.

2020년 9월22일 당시 20대였던 피해자 A씨는 지인들과 술을 마시고 만취한 상태로 혼자 걸어가다가 새벽 4시30분께 한 식당 앞에서 잠시 정신을 잃었다. 운전 중이던 가해자 50대 B씨는 몸을 가누지 못하는 A씨를 발견해 조수석에 태웠고, 약 1.1㎞를 주행하는 사이 정신이 든 A씨가 놀라서 내리려 하자 강제추행했다. 두 사람은 처음 보는 사이였다. B씨는 행인의 신고로 차를 뒤따라간 경찰에 약 10분 만에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검찰은 지난해 10월 B씨에게 강제추행 혐의를 적용해 약식기소했다. 감금 혐의에 대해서는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혐의 없음’으로 불기소 처분했다. B씨가 A씨를 차에 태우는 과정에서 물리적인 강제력을 행사하지 않았다는 게 이유였다.

헌재는 B씨의 행위가 감금죄에 해당한다고 봤다. 2000년 대법원 판례를 인용해 “(검찰의 처분은) 사람 행동의 자유를 구속하는 수단과 방법에 아무런 제한을 두지 않는 감금죄의 법리를 오해한 것”이라며 “가해자가 만취한 피해자를 그 의사에 반해 차량에 탑승시켜 운행한 행위는 감금의 구성요건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또 피해자와 신고자의 진술, 폐쇄회로TV(CCTV) 영상 등을 근거로 ‘피해자가 스스로 조수석에 탔다’는 등 B씨의 주장의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B씨가 정신을 잃은 A씨를 온전히 자기 힘으로 차에 태우고 내리지 못하게 막은 점 등으로 보아 감금의 고의가 인정된다고 봤다. B씨는 A씨의 집 주소도 몰랐고, A씨의 집과 정반대 방향으로 운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헌재 결정에 따라 검찰의 감금 혐의 불기소 처분은 효력을 잃게 됐다. 검찰은 결정을 통지받는 즉시 주임검사를 지정해 다시 수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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