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으로 본 한국여성인물사』 역사⸳여성⸳미래 펴냄

 

『문화유산으로 본 한국여성인물사』 역사⸳여성⸳미래 펴냄
『문화유산으로 본 한국여성인물사』 역사⸳여성⸳미래 펴냄

(사)역사⸳여성⸳미래는 두 번째 총서로 『문화유산으로 본 한국여성인물사』를 발간했다. 한국의 역사 속에서 여성이 남긴 문화유산은 어떤 것이 있을까. 여성사 연구자 13인과 (사)역사⸳여성⸳미래는 문화유산을 통해 한국 역사 속 여성인물들을 통해 그들의 삶을 생생히 풀어낸다. 

웅녀는 수렵문화와 농경문화의 접변시기에 수렵문화의 기반 위에 주체적으로 농경문화를 수용해 역동적이고 풍요로운 고조선의 기틀을 마련한 위치에 있음을 밝혀 주고 있다. 진흥왕의 어머니인 지소태후는 신라 국력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고, 불교의 토착화와 대중화를 이뤄 호국불교로 나아가는 기반을 마련했다. 백제의 무왕은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선화공주와의 낭만적인 설화가 있지만 새로운 유물의 발굴로 사택왕후라는 존재가 부각됐고, 이러한 왕비들은 왕의 사상적 지지자, 정치적 협력자, 경제적 지원자로서 왕권을 강화하는 역할을 했음을 밝혀 주고 있다. 선덕여왕은 국보 제290호인 통도사 대웅전을 비롯해 문화 창조의 리더십을 발휘했다.

또 고려시대 염경애의 묘지명을 통해 고려시대 남녀의 역할과 친족구조, 혼인과 상속, 제사풍속 등을 당대의 목소리로 생생하게 들려준다. 또한 몽골침입으로 내우외환의 어려운 시기를 살았던 원덕태후의 생애를 사적 제371호로 지정된 곤릉을 통해 알려주고 있다.

조선시대의 소혜왕후는 여성을 위한 교양서인 『내훈』을 집필해 왕실여성이 지향했던 이상적인 여성상을 제시했다. 여류문장가이고 서예가이며 화가인 설씨 부인은 보물 제728호 『설씨 부인 권선문(薛氏夫人 勸善文)』을 남겨 여성의 품격 높은 학식과 예술의 깊이를 보여준다. 그의 11대 자손이 신윤복(申潤福)이었고, 고령 신씨 가문에서는 그 화맥(畵脈)의 기원을 설씨 부인으로 설정하고 있음도 알려 준다. 남평 조씨는 직접 한글로 쓴 『병자일기(1636년 12월~1640년 8월)』를 통해서 조선시대 여성의 가정생활을 생생하게 들려준다. 영조의 둘째 딸인 화순옹주는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45호인 홍문(紅門)을 통해서 열녀풍속을 정착시키는데 일정한 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다. 이사주당은 세계사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는 『태교신기(胎敎新記)』를 남겼다. 이상적인 인간은 모태로부터 출발한다고 하여 여성의 존재가치를 높였고 가장 효과적인 예방의학인 태교는 미래에도 유의미한 분야임을 밝혀주고 있다.

대한제국 시기 한국 최초의 근대적 여성인권선언문인 ‘여권통문’을 발표하고 근대 최초의 여성단체인 ‘찬양회’를 조직한 선구적인 여성운동가들이 있었음을 알려주고 있다. 일제강점기에는 사적 제324호인 서대문형무소의 8호 여감방을 통서 여성 독립운동가들이 자발적이고 주체적인 여성의식을 지니고 죽음을 불사한 투쟁으로 쉬지 않고 저항한 끈기를 지니고 있었음을 밝힌다.

여성 문인이자 화가인 나혜석은 주체적인 여성의식을 가지고 ‘연애예찬’ 등을 써서 여성해방의 선구자적인 삶을 살았다. 그는 ‘이혼고백장’에서 당시의 가부장제(家父長制)의 모순을 비판했다. 최은희는 한국 최초의 민간신문 여성기자로서 주체적인 여성의식을 가지고 ‘여남평등’을 지향했다. 말년에는 재산을 기탁해 ‘우수 여기자상’을 제정함으로써 미래 여성언론인들의 사명감과 긍지를 독려했다. 

이 책의 장점은 시대별로 대표적인 여성인물을 선정해 고대부터 현대까지 시대를 관통하고 있다는 점이다. 문화유산을 통해 여성들이 이루어 낸 성과들을 살펴봄으로써 그들이 창조해 낸 구체적인 활동내용도 알 수 있다. 또 사료를 제시해 전문성을 높였고, 문화유산 관련 사진을 통해 현장감을 살렸다. 무엇보다 여성주의적 관점으로 인물들을 바라보고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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