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양당 후보 잇딴 ‘반페미니즘’ 행보
최대 캐스팅보터 ‘20대 여성’ 배제
李 “광기 페미니즘” 온라인 글 공유
尹 ‘성범죄 무고죄 처벌 신설’ 공약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 ⓒ여성신문·뉴시스
이재명(왼쪽)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 ⓒ여성신문·뉴시스

거대 양당 대선 후보들의 잇따른 ‘반페미니즘’ 행보에 여성 유권자들이 흔들리고 있다. ‘캐스팅보트’로 떠오른 청년 표심 잡기에 혈안이 된 후보들이 정작 ‘청년’의 절반인 2030 여성은 배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 큰 손실(실망)을 보기 전에 지지를 철회하는, 이른바 ‘손절’도 시작됐다. 이들은 “이재명·윤석열, 둘 다 싫다”며 제3의 선택지를 만지작 거리고 있다.

“뒷통수 맞은 느낌이다. 누굴 찍어야 할 지 모르겠다.”
민주당 지지자라고 밝힌 여성 A(29)씨의 말이다. A씨는 “5년 전엔 문재인 대통령을 찍었고, 이번 대선 경선에 국민 경선인단으로 참여했는데, 개혁 공약을 내놓기는커녕 ‘안티페미’ 게시글을 연이어 공유하는 이 후보 행보에 너무 놀랐다”고 말했다.

국민의힘을 지지해 온 여성 B(34)씨는 “청년 표가 아무리 중요하다고 해도, 대선 공약으로 성범죄 무고죄 처벌 강화를 내놓는 것은 너무 나간 것 같다”고 말했다. B씨는 “윤석열은 120시간 노동부터 건강한 페미니즘, 부정식품, 전두환 옹호 발언까지 논란을 자처한다”며 “이재명을 찍을 일은 없지만, 윤석열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했다.  

이재명 후보는 “광기의 페미니즘을 멈춘다고 약속해 달라. 그러면 지지하겠다”는 취지의 온라인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 게시글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공유했다. 앞서 “민주당이 페미니즘 정책으로 남성을 역차별했다”는 내용의 글을 선대위에 공유해 논란이 일자, “청년들의 절규를 전하고 싶었다”고 동문서답 해명을 내놓더니 이틀 뒤 같은 결의 글을 공유한 것이다. ‘안티페미니즘을 해도 된다’는 식의 신호를 보내고 청년 세대를 갈라치기 한다는 비판에는 묵묵 부답이다. 

윤석열 후보는 아예 남초 커뮤니티 발 주장을 공약으로 옮겨왔다. 성폭력특별법에 무고 조항 신설이 대표적이다. 가짜 성폭력 피해를 주장해 가해자로 몰리는 억울한 남성이 많다는 일부 남초 커뮤니티의 인식이 제 1 야당 대선 후보의 ‘양성평등 공약’으로 등장했다. 성폭력 피해자의 신고를 막고 2차 가해를 제도적으로 용인하는 공약이라는 비판이 이어졌다. 실제 성폭력 범죄에서 무고율은 미미하기 때문이다. 2019년 대검찰청과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조사 결과를 보면, 2017~2018년 검찰의 성폭력 사건 처리 인원수 7만1740명(중복 인원 제외) 중 무고로 기소된 비율은 0.78%(556명)다. 윤 후보는 “페미니즘도 건강한 페미니즘이어야지”, “페미니즘을 선거와 집권 연장에 유리하게 해선 안 된다” 등의 발언도 서슴치 않는다. 

두 후보 중 누가 당선되든 ‘여성가족부’는 사라진다. 부처 명칭을 성평등가족부나 양성평등가족부로 개편하고 기능도 바꾸겠다고 공약했기 때문이다. 이 후보는 “남성이라는 이유로 차별받는 건 옳지 않다”고 했고, 윤 후보는 “여가부가 남성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했다”는 변을 내놨다. ‘백래시(사회‧정치적 변화에 대해 나타나는 반발 심리·행동)’를 고스란히 공약으로 수용한 것이다.  

거대 양당의 후보가 청년 표심 잡기에 혈안이 된 것은 넉달 앞으로 다가온 내년 대선의 최대 ‘캐스팅보터’로 18~29세 795만명(유권자의 18%)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KBS가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실시한 조사(11월5~7일)에서도 ‘지지 후보를 바꿀 수 있다’는 응답은 31.7%였다. 하지만 20대의 64%, 30대의 56.9%가 ‘지지 후보를 바꿀 수 있다’고 답했다. MZ세대 표심이 아직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두 양강 후보가 간과하는 것은 이른바 ‘이대남’ 표심에 달려들고 있는 동안 20대 여성 표심은 멀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다수의 여성들이 자신의 목소리가 정치에서 배제된다는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 최근 리서치뷰가 시행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20대 여성 가운데 지지 후보가 없거나 모른다는 응답은 20대 남성에 비해 훨씬 높고 거대 양당 후보 이외의 후보를 선택한 비중도 높았다.  지난 4월 서울·부산시장 선거 때도 20대 표심이 결정적이었다 

간호사 김주희씨는 “정치권과 일부 언론은 ‘젠더 갈등’ 프레임을 씌워 남녀 갈등이 청년 문제의 근원인 것처럼 인식하도록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신지예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 대표는 “반페미니즘 정서가 강한 커뮤니티 이야기를 2030 청년 남성 전체를 대표하는 양 인정해주는 것은 정치가 대화나 상호협상보다 갈등을 심화시킨다는 측면에서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최근 정의당·국민의당 청년 당원 등과 함께 ‘대선 전환 추진위원회’를 결성했다. 이들은 “강요된 양자택일을 거부한다”며 제3의 후보자들이 단일화를 통해 거대 양당에 종속되지 않고 새 시대를 열기를 요구하고 있다.  

노서영 기본소득당 여성주의 의제조직 베이직페미 대표는 “우선 20대 여성들이 다른 세대와 성별 중 가장 높은 비율로 거대양당을 지지하지 않고 있는데, 이것은 왜 ‘현상’이 되지 않는지 의구심이 든다”며 “이것은 명확하게 20대 여성들이 정치에 보내는 메시지이고, 정치에 대한 마지막 믿음이자 불평등을 성찰하고 해소해나갈 수 있는 단초인데 여성, 특히 젊은 여성의 목소리는 아무리 내도 들어주지 않는다는 것이 실감나는 요즘”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국민의힘 후보가 자산, 부동산 불평등 문제를 건드리지 않고도 2030 남성들의 표를 얻는 가장 손쉬운 방법으로 여가부 폐지나 개편, 군가산점제 등을 내세워왔는데 이제는 민주당 후보도 여가부를 성평등가족부로 바꾸겠다고 얘기하고 차별금지법에 선을 긋고 페미니즘을 멀리하면 뽑아줄 수 있다는 남초 커뮤니티 글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있다”며 “두 후보 모두에게서 더 나은 세상을 기대할 수 없겠다는 확신이 들어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절망적이고 더는 이러한 정치를 용납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신경아 한림대 교수는 “지금 대선판에 호명되는 ‘20대 남성’은 일부의 극단적 목소리가 과잉대표된 것”이라며 “한국의 청년 남성들은 군대 문제에 분노하고, 생계부양자로서 부담을 훨씬 무겁게 느끼고 있다. 정치권은 이들이 가진 분노가 어디서 기인하는지 파악해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방식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신 교수는 대선 후보들이 반페미니즘 행보를 하는 사이 소외되는 청년 여성들은 ‘사회적 트라우마’를 겪을 수 있다고 진단했다. 신 교수는 “반페미니즘 글을 공유하고, 성범죄 무고죄 처벌을 강화하겠다는 두 후보의 메시지는 성평등을 외쳐온 20대 여성들에게는 우리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요구에 화답하는 사람이 없다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고, 결국 사회적인 트라우마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후보들이 20대 남성 표심을 얻겠다며, 젠더 적대를 계속 부추긴다면 장기적으로는 여성 유권자 뿐 아니라 온건한 지지자들도 결국 등을 돌릴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 언급된 여론조사의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