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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한숙희여성학자◀

“조용히 살라 했드만 상황이 뒷받침을 안 해주는구마잉.”

친한 후배의 단골 우스개 소리에 배꼽을 빼곤 했는데 이 말이 요즘은 나에게 절실하게 다가온다. 한동안 여성운동이 모든 남자를 적대시하고 방법론 또한 지나치게 공격적이라는 일부의 주장에 대해 나는 어는 정도 수긍하는 편이었다. 남자들 중에도 양성평등적 시각을 가진 이들이 늘어나고 운동의 목적이 평등인 만큼 방법 또한 평화적이면 좋겠다는 뜻에서였다. 여기에는 여성운동의 도덕적 우월성에 대한 믿음이 깔려 있었다.

남성리더의 반성 없는 사죄

그런데 지난해부터 내 생각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호주제 폐지 문제를 놓고 최소한의 상식수준조차 상실한 채 인격모독적 인신공격까지 하는 남자들은 같은 남자들로부터도 비난을 면치 못했으니 접어두기로 하자.

우리나라 기독교계에서 최고 자리에 있는 목사의 '기저귀 발언'(기저귀 차는 여자는 설교 단상에 설 수 없다)이나 국민의 대표라는 국회의원의 '주물럭 발언'(항의차 방문한 여성의원이 자리를 차지하고 버티는 것을 보고 주물러 달라는 거냐)은 그들이 속한 분야의 지배적인 분위기를 반영할 뿐 아니라 리더그룹을 남성들이 장악하는 우리 사회 전반에서 여성들이 어떤 존재로 자리매김하는지를 드러내는 것이었다.

기저귀 발언이나 주물럭 발언의 당사자들은 둘 다 그 이후 가시적인 어떤 책임도 지지 않았고 여전히 그 자리를 차고 앉아 있다. 아마 그들의 사과는 여성을 모독한 것에 대해서가 아니라 남성들의 암묵적인 여성의식을 누설함으로써 괜한 소란을 불러일으킨 것에 대해 동료들에게 하는 사과였을지도 모른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죄를 지은 사람이 진심으로 반성하고 어떤 벌이라고 달게 받겠다고 나올 때라야 적용가능한 명제이다. 두 사람의 사과는 자발성에 기초한 것이 아니었으며 여성들의 항의에 '어마 뜨거라' 놀란 남성들이 집단으로 만들어낸 입막음용 사과였다.

그렇게 우습게 아는 여자들 앞에 사과를 했으니 돌아서서 홧병이 났을지도 모를 일이다. 어쩌면 그 동안 봐줬더니 기고 만장한다고 앞으로 더 여성들을 옥죄야겠다는 결심을 했을 수도 있다. 울지 않는데 젖 주는 법 없고 투쟁하지 않고 주어지는 권리는 없다. 문제는 우리 여성들의 태도요 자세다. 사건 발생 직후에만 우루루 끓는 양은 냄비여서는 안 된다.

어흥 소리만 요란한 종이호랑이여서도 안 된다. 참된 반성에 기초하여 책임지는 모습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끈질기게 물고 늘어져 반드시 응징해야 한다.

가부장적 망언 반드시 응징

가부장적 토양이 생산해내는 문제성 발언들은 지금도 계속 쏟아져 나오고 있다. 감리교 신학대학에서는 여성 주체적 시각에서 기존의 가부장적 신학이론을 비판해온 여교수를 남편이 같은 대학교수라는 이유 아닌 이유를 들어 재임용에서 탈락시켰다.

여성을 개별화된 멤버로는 수용하되 조직의 핵심에 접근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는 태도에서 기인한 것이다. 가정법원에서 여성들이 차별과 불이익을 당해온 것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며 그 피해자가 한둘이 아니건만 '법원에서 남녀차별은 없다'는 글씨가 일간지에 대문짝만하게 실렸다.(그것도 여성의 이름으로 씌어졌으며 대법원에서 신문사에 게재압력을 넣었다고 한다)

조용히 살라고 했더니만 세상이 협조해주지 않음을 날마다 실감한다. 할 수 없이 접어둔 이름표를 꺼내 단다. '쌈순이'. 가부장제의 망언들이 날뛰는 한 이름표를 떼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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