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 한 병을 들고 이 와인이 어떤 종류이며, 어디서 어떻게 만든 것인지, 그리고 고급인지 아닌지를 알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와인은 그 종류가 너무 많은데다 각각 생산지의 특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와인을 제대로 알려면 원료인 포도의 종류, 생산지의 토양과 기후 그리고 양조에 관한 기초지식을 바탕으로 하나 둘씩 경험을 쌓아 가야 한다.

와인의 맛과 특성에 영향을 주는 요인에는 여러 가지 있겠지만, 무엇보다 포도의 종류와 그 상태가 가장 중요하다. 와인 한 병을 만드는데 다른 원료가 일체 들어가지 않고 포도만 1kg이 넘는 양이 들어가므로, 와인이란 포도 그 자체가 변한 것뿐이다. 그러므로 와인은 포도의 품종에 따라 그 특성이 결정되며 같은 품종이라도 그 상태에 따라서 맛이 달라지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이와 같이 와인의 품질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포도는 생산지의 토양과 기후에 따라서 그 특성이 좌우되므로, 같은 품종의 포도라도 기후와 토양이 다르면 그 맛과 질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유럽의 고급 와인용 포도품종이 우리나라에서 잘 자라지 못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러니까 아무리 우수한 기술자를 초빙해 와인을 만들려고 해도 포도가 제대로 자라지 못하면 수준 이하의 제품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래서 프랑스 등 유럽의 포도밭은 옛날부터 등급이 정해져 있어, 수확되는 포도의 질과 상관없이 와인의 등급을 결정해버린다. 즉 포도 싹이 트기도 전에 와인의 등급이 결정되는 다소 모순 있는 제도이지만, 그만큼 포도의 생산지는 매우 중요한 요소다.

다음으로 관심을 두고 볼 것은 수확연도(vintage)이다. 해마다 날씨가 같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특히 포도는 기온과 강우량 그리고 일조시간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그 해의 일기조건이 포도의 품질을 좌우한다. 아무리 좋은 포도를 이름난 포도밭에서 재배하더라도 날씨가 나쁘면 좋은 와인을 만들 수 없다. 포도는 일조량이 풍부하고 강우량이 비교적 적어야 당도가 높고 신맛이 적어지며 색깔도 짙어진다. 물론 유명한 포도밭은 이러한 조건을 갖춘 곳이지만, 날씨란 변수가 많으므로 미식가들은 유명산지의 와인이라면 수확연도를 따져서 이를 선택한다.

최종적으로 좋은 포도가 생산되었으나 만드는 사람의 기술과 성의가 부족하면 좋은 와인이 나오지 않는다. 최고의 와인은 좋은 환경에서 판단과 노력 그리고 축적된 기술의 조합에서 나오므로, 최고의 와인을 만드는 것은 한 개의 예술작품을 만드는 것과 맞먹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와인 제조는 전문지식의 습득이나 활용보다는 오랜 경험과 기도하는 마음으로 빚는 정성스런 손길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서울 와인스쿨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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